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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세계교회 지성에게 묻다: 파올로 베난티 신부

657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7-01

[세계교회 지성에게 묻다] 파올로 베난티 신부


AI 등 첨단 기술 대할 땐 우선 질문해 봅니다 "여기에 사람을 향한 사랑이 있는가?"

 

 

기술, 특별히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우리의 일상은 더욱 편리해졌고, 선택과 판단에도 알고리즘이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AI가 내 선택을 대신해도 괜찮을까? AI를 편리하게 쓰면서도 인간다운 판단을 지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파올로 베난티(Paolo Benanti) 신부는 이러한 물음을 공학과 윤리신학의 접점에서 연구해 온 프란치스코 TOR(Third Order Regular·제3회 정규회) 소속 사제이자 윤리신학자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윤리신학을 가르치며, 생명윤리와 신경윤리, AI 윤리, 인간 향상 기술, 디지털 사회의 인간학적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교황청 생명학술원 정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유엔 AI 고위급 자문기구 위원과 이탈리아 정부 산하 정보 분야 AI 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가톨릭신문은 창간 100주년 기획 ‘세계교회 지성에게 묻다’ 세 번째 인물로 베난티 신부를 만났다. AI 시대의 생명윤리와 교회의 과제를 짚은 그는 AI와 첨단 기술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 사람을 향한 사랑이 있는가?”

 

- AI와 윤리신학의 권위자인 파올로 베난티 신부는 AI와 첨단 기술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여기에 사람을 향한 사랑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침반을 제시한다. 이승훈 기자

 

 

Q. 공학을 공부한 뒤 윤리신학자의 길을 걸으며 첨단기술 시대의 인간 존엄 문제를 다뤄 왔다. 기술의 문제가 곧 인간 존엄의 문제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공학은 모든 설계 안에 가치 선택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어떤 시스템을 만들 때 우리는 누가 그것을 쓸지, 어느 정도 위험을 받아들일지, 무엇을 생략할 수 있을지 결정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계산이 아니라 도덕적 결정이다. 그러나 공학만으로는 “이 기술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기여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 생명공학과 정보기술(IT)을 연구하면서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술에는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의 서열이 담긴다. 윤리신학은 그 함의를 말할 언어를 줬다. 기술은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의 문제이기도 하다. 모든 기술 선택은 결국 “인간은 누구이며, 무엇이 보호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

 

Q. 프란치스코 영성이 기술문명을 바라보는 시각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A.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물질세계를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물질세계가 지닌 가난함, 초월적 존재에 의존하는 성격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았다. 프란치스코 영성의 가난은 피조물이 선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사물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올바르게 ‘사용’할 대상임을 가르친다. 또 「찬미받으소서」가 말하듯 피조물과 맺는 보편적 형제애는 사랑 없는 효율성과 사람과의 관계가 결여된 기술 지배의 유혹을 거부하게 한다. 사람을 최적화해야 할 데이터 묶음으로 여기는 알고리즘을 볼 때마다 프란치스코회 전통은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 사람을 향한 사랑이 있는가?” 그 대답이 ‘아니오’라면, 이미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 것이다.

 

Q. AI가 인간의 판단과 선택에 개입하는 시대, 생명윤리는 무엇을 새롭게 물어야 하나?

 

A. 오랫동안 생명윤리는 생명의 시작과 끝을 중심으로 논의됐다. 그러나 뇌과학과 인지 생명공학에 이어 AI는 이 범위를 더 넓히고 있다. 인공적 주체성, 임상 판단의 알고리즘화, 환자 의료 데이터의 주권, 디지털·약물적 인지 향상 같은 문제가 등장했다. 더 근본적인 질문도 있다. 우리의 이름과 역사를 모르는 시스템이 중요한 선택을 미리 짜 놓는 환경을 살아가게 된다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것이다. 미래의 생명윤리는 생물학적 생명만이 아니라, 데이터와 알고리즘 속에서 드러나고 판단되는 ‘디지털 인격’의 생명윤리이기도 해야 한다.

 

- 파올로 베난티 신부가 2024년 미국 워싱턴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열린 행사 중 브래드 스미스 마이크로소프트 부회장 겸 사장과 윤리와 인공지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OSV

 

 

Q. 회칙 「고귀한 인류」는 AI 시대의 어떤 ‘새로운 사태’를 바라보고 있나.

 

A. 레오 13세가 산업혁명 속 노동 문제를 마주했을 때, 그것은 전례 없는 복음적 식별을 요구하는 ‘새로운 사태’였다. 오늘 레오 14세는 AI가 바꾸는 노동, 지식, 관계, 공적 판단, 정체성의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오늘의 ‘새로운 사태’는 아무도 온전히 책임지지 않는 결정 시스템, 소수에게 집중되는 컴퓨팅 권력, 인간 사고를 흉내 내는 콘텐츠의 대량 생산, 전 지구적 정보 조작 가능성이다. 회칙은 이를 두려움이나 무비판적 열광이 아니라 ‘차분한 지혜’로 식별하라고 초대한다. 참된 진보는 결코 기술 발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Q. 「고귀한 인류」는 ‘바벨탑’과 ‘예루살렘 성벽 재건’으로 AI 시대를 식별한다. 기술문명이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길로 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A. ‘바벨탑’은 하느님과 관계 맺지 않고 한계를 인정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힘만으로 하늘에 닿으려는 절대적 자급자족의 상징이다. 결과는 혼돈과 분열이었다. 반대로 느헤미야 시대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기도하고 일하며 함께 식별한 공동체의 작업이었다. 같은 AI도 감시에 쓰일 수도, 치료에 쓰일 수도 있다. 권력을 한곳에 모을 수도, 나눌 수도 있다. 차이는 기술 자체보다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의 의도와 제도에 있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편에 서려면, 민주적 참여와 투명성 그리고 다수를 희생시켜 소수만 이롭게 하는 개발에 “아니오”라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Q. 알고리즘 설계와 기술 활용의 초기 단계부터 윤리적 기준을 반영하는 ‘알고레틱스’를 강조해 왔다. 알고레틱스가 실제 제도와 개발 과정에 반영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A. 윤리는 완성된 기술에 나중에 붙이는 인증서가 아니다. 알고리즘 설계의 처음부터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교육이다. 엔지니어, 디자이너, 경영자, 입법자가 장식용 윤리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윤리 문화를 배워야 한다. 둘째는 규제다. 선의에만 맡길 수 없으므로 법과 제도가 올바른 선택을 유리하게 만들어야 한다. 셋째는 시민사회와 교회 문화다. 기술 시스템에 비판적 질문을 던질 줄 모르는 사회는 취약하다. 교회는 인간과 공동선에 대한 전통을 바탕으로 “누가, 누구의 이름으로 결정했는가”를 묻도록 사람들을 교육해야 한다.

 

- 베난티 신부가 2024년 6월 21일 바티칸에서 열린 윤리적 인공지능 개발 관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CNS

 

 

Q. 오늘날 많은 사람은 AI를 빠른 답을 주는 도구로 받아들이지만, 때로는 거의 ‘모든 것을 아는 조언자’처럼 의존하기도 한다. 신앙인이 AI를 쓰면서도 식별의 힘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가톨릭 영성 전통은 오래전부터 식별을 가르쳐 왔다. 영의 움직임을 구별하고, 편리한 것과 선한 것을 혼동하지 않으며, 즉각적 유혹 앞에서 내적 자유를 지키는 법이다. 이 실천은 오늘날 놀라울 정도로 시의적절하다. 침묵할 줄 알고 기도할 줄 알며 자신의 즉각적인 반응을 맹신하지 않도록 훈련된 신앙인은 이미 AI를 비판적으로 대할 뿌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실천 면에서는 기술을 내 생각을 돕는 도구로 써야지, 기술이 먼저 질문을 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기다리고 의심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연결을 끊는 ‘디지털 단식’을 현대적 고신극기(苦身克己)로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

 

Q. 한국교회가 기술 변화에 응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A. 한국교회의 역사는 독특하다. 외국인 선교사가 아니라, 책을 통해 신앙을 접하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달된 독서와 사상을 통해 평신도들이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였다. 신앙을 섬기는 지성을 통한 복음화의 역사다. 이 원초적 소명은 지금 한국교회에 잘 맞는다. 한국교회는 기술 전환의 시대에 ‘지적·영적 식별 공동체’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다. 위험을 비난하거나 기회를 찬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첫걸음은 본당, 가톨릭대학, 가정 안에서 신앙과 지성을 함께 발휘해 지금의 변화를 깊이 읽어내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Q. AI 시대 가톨릭 언론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A. 자동 생성 콘텐츠와 허위 정보, 성찰보다 감정 반응을 보상하는 알고리즘의 시대에 가톨릭 언론은 특별한 소명을 지닌다. 진리를 판매할 상품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봉사로 추구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느림의 용기’다. 완전히 이해하기 전에는 발행하지 않고, 틀렸을 때는 바로잡으며, 불편한 관점에도 목소리를 부여해야 한다. 또한 ‘바이라인의 용기’, 즉 ‘이름을 거는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기사와 분석에는 책임 있는 저자가 있어야 한다. 익명 콘텐츠와 AI 대필의 시대에 이는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선언이다. 시대의 압박에 저항하는 가톨릭 언론은 단순히 하나의 직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공동선을 수호하고 있는 것이다.

 

- 2024년 바티칸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 공방(Fabbrica di San Pietro),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등과 함께 성 베드로 대성당의 새 디지털 플랫폼 구축에 참여한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파올로 베난티 신부(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CNS

 

 

Q.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앞둔 청년들에게 조언한다면.

 

A. 디지털 기술과 함께 자란 청년들이 인간성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유혹과 선물이 공존하는 환경 속에서 인간성을 발견하도록 초대받았을 뿐이다.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시급하다. “화면은 당신을 사랑할 수 없다.” 연결이 곧 친교는 아니다. 맞춤형 콘텐츠를 보여주는 알고리즘은 당신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해줄 뿐,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2027 서울 WYD는 매우 강력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전 세계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살과 피를 지닌 인간으로서 직접 만나 빵과 기도를 나누며, 타인의 얼굴이 결코 어떤 화면으로도 대체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현존의 경험은 그 자체로 이미 강력한 복음 선포다.

 

Q. 2027년 창간 100주년을 맞는 가톨릭신문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한국교회는 인권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전부터 인간 존엄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기억을 DNA에 품고 있다. 그 기억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위한 예언자적 자산이다. AI 시대에 모든 인간은 어떤 카테고리로도 환원될 수 없고, 이웃의 얼굴은 어떤 데이터로도 다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은 그 자체로 저항이자 희망이다. 한국 가톨릭 저널리즘의 한 세기는 교회가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어떻게 시대와 대화해 왔는지 보여주는 놀라운 증거다. 가톨릭신문이 앞으로도 맑고 용기 있으며 신실한 목소리를 계속 내기를 기도한다.

 

[가톨릭신문, 2026년 6월 28일,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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