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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성경] 성경 입문17: 그리스도교의 성경

969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6-16

[성경 입문] (17) 그리스도교의 성경

 

 

초대 그리스도교는 희랍어 문화권에서 성장합니다. 정치적으로 지중해 연안은 로마제국의 방대한 영토에 속해 있었지만, 문화적으로는 이전의 패권국가였던 그리스의 문화권에 속한 영토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로마 제국의 대부분의 땅에서 통용되는 공용어는 그리스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국의 법률, 행정과 군대 등에서는 라틴어가 주류 언어였지만, 문학과 학술서 등 학문적 영역에서 여전히 그리스어로 기록된 서적이 널리 유통되었고, 4-5세기에 동로마로 분열되는 지역에서는 일상생활 언어가 그리스어였기 때문에 라틴어보다 그리스어의 영향력이 더 컸던 것입니다. 따라서 초기 그리스도교의 성경과 교부들의 문헌은 대부분 그리스어로 작성되었습니다. 구약성경 역시 그리스어 번역인 「칠십인역」 성경이 공식 성경이었으며,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구약의 원어 성경인 히브리어 성경이 아닌 칠십인역 성경을 인용합니다.

 

사도교회는 유다인들의 공동체로 시작되었지만, 이미 2세기에 접어들면서 유다인보다, 이방계 유다인(본토의 아람어보다 그리스어에 더 익숙했던 이들)과 비 유다인의 비중이 훨씬 높아진 교회의 주요 언어는 자연스럽게 그리스어가 됩니다. 로마 제국이 양분된 뒤, 라틴 교회, 곧 (서)로마 교회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리스어의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4세기 다마수스 교황의 재임시절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합니다. 제국의 일치를 도모하고 분열을 막아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후 제국은 동서방으로 완전히 분리되고 맙니다. 다마수스 교황의 요청으로 예로니모 성인에 의해 완성되는 라틴어 번역 성경은 ‘대중적인’ 성경이라는 뜻으로 ‘베르시오 불가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는 그리스어를 모르는 일반 대중들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판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방 교회, 곧 라틴 교회에서는 불가타 성경이 공식 전례 성경으로 자리를 잡게 되어 오랫동안 유럽의 그리스도교의 공식 성경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라틴교회 이외의 모든 교회에서 그리스어가 자연스럽게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개별 교회들은 그 지역의 민족적, 언어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과 전례의 공식 언어들은 그 지역의 신자들에게 훨씬 친숙한 모국어로 자리 잡습니다. 따라서 성경 역시 더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됩니다.

 

그리스-아나톨리아의 그리스어 말고도 로마 교회의 라틴어,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성장하는 이집트 지역의 콥트어, 안티오키아 인근 아람-시리아 지역의 시리아어, 서로마 지역의 라틴어 등이 주요한 교회의 언어였으며, 그 외에도 에티오피아나 아르메니아, 칼데아 지역에서도 이러한 지역화는 빠르게 진행됩니다. 성경의 초기 번역본들은 박해 시기를 견뎌낸 교회가 보존하고 전승한 성경의 초기 모습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비평 자료입니다. 때때로 필사 과정에서 생겨난 사소한 오류와 차이들이 번역 성경들의 대본이었던 초기 형태의 본문들을 재구성하여 비교 검토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보다 원문에 가까운 형태들을 유추해 볼 수도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유명한 정의를 남겼습니다. 이는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일 뿐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언어의 영향하에 있음을 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의 번역은 신앙과 신학의 변화와 발전, 다양성에 근본적이고도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서로 다른 언어가 소통의 벽이 될 수도 있지만, 자기만의 언어를 고집하며 갇힌 태도를 넘어서기만 한다면, 더욱 풍요로운 하느님을 만나고 이해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2026년 6월 14일(가해) 연중 제11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이정석 라파엘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겸 성글라라수도원 전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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