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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51: 세기말, 시한부 종말론과 휴거 신드롬

202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6-10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 (51) 세기말, 시한부 종말론과 휴거 신드롬


종교 빙자 사기극이 남긴 상흔… 기성 교회 ‘자성’ 목소리 높아져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다. 10월 28일 자정 서울 마포구 성산동 다미선교회 총본부와 부산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의 선교회 지부에서는 1000여 명에서부터 적게는 수십 명에 이르는 신자들이 예배에 나와 ‘휴거’를 기다렸으며, 이들 주위에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 병력이 파견돼 동태를 파악하는 등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휴거가 무위로 끝난 10월 29일 현재 이를 지켜본 신자들과 시민들은 허탈감에 빠진 일부 맹신도들에 의한 집단자살, 혹은 시한부 종말론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의 보복성 폭력과 같은 비상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모태는 사실상 기성 교회라는 자성의 목소리와 이들을 다시 교회의 품 안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방법을 연구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교회 내에서 높게 일고 있다.”(가톨릭신문 1992년 11월 1일자 1면)

 

시한부 종말론을 선전전하는 유인물. 일부 유인물은 천주교 신자들을 주요 목표 대상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휴거는 없었다

 

세기말을 앞둔 1992년 10월 28일 밤, 다미선교회 산하 전국 173개 교회에는 흰옷을 입고 가슴에 ‘휴거’ 신분증을 단 8000여 명의 신도들이 예수의 공중 재림을 기다리며 광신적인 통성 기도를 소리 높여 바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휴거(携擧, the rapture)’란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 시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고, 살아있는 성도들은 육체의 변화를 받아 공중으로 들어 올려지는 종말적 사건을 가리킵니다. 미국 복음주의 계열의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 종말론에서 발전한 개념으로, 천주교 정통 교리와는 거리가 멉니다.

 

다미선교회 총본부 앞은 취재진과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방송사들은 내부 집회 실황을 전국에 생중계했습니다. 신도들은 “주님을 의심하지 말자”며 자정이 지나기 직전까지 영적 도취감 속에서 춤을 추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시계가 자정을 알려도 예수의 재림과 신도들이 하늘로 들어 올려지는 초자연적 휴거 현상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무거운 적막이 감돌았고, 곧이어 분노와 허탈함이 교차하는 아수라장이 펼쳐졌습니다. 일부 신도들은 찬송가 책을 단상에 내던지며 ‘사기’라고 절규했고, 부산과 대구 등지에서는 격분한 신도들이 목사의 멱살을 잡고 거칠게 항의하며 기물을 파손했습니다.

 

교회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신도들의 가족은 “그대로 받아줄 테니 안심하고 나오라”며 오열 속에서 휴거를 기다리던 신도들을 설득했습니다. 집단 투신이나 동반 자살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다행히 벌어지지 않았고, 대부분은 경찰과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허탈한 표정으로 귀가했습니다.

 

 

되풀이되는 시한부 종말론의 폐해

 

1992년 우리 사회를 뒤흔든 시한부 종말론과 휴거 소동은 종교적 일탈을 넘어 세기말적 사회 불안과 기성 종교의 취약성이 결합돼 폭발한 복합적 병리 현상이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고조된 극단적 종말 사상은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지구 멸망 예언 등 세속적 종말관과 결합하면서 급속히 확산됐습니다. 대중의 불안 심리를 파고든 이 신드롬은 급격한 현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빈곤층과 영적 갈증을 느끼던 기성 교회 신자들을 흡수하며 우리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이 사태의 정점에는 다미선교회를 설립한 이장림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주장한 휴거설은 자의적 왜곡을 일삼는 신학과 소위 ‘직통계시’의 결합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극단적으로 왜곡해 1999년을 종말의 해로 규정하고, 7년 대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성도들의 공중 휴거가 일어나야 하므로 1992년 10월 28일이 바로 그 시점이라고 선전했습니다.

 

휴거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다미선교회·다베라선교회·갈릴리선교회 등 80여 개 종말론 집단에 속한 약 2만 명의 신도들은 일상을 포기한 채 집단적 광신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가정을 팽개치고 기도원에 들어가거나, 전 재산을 헌납했습니다. 일부 집단에서는 통제와 복종 강요 과정에서 폭행과 인권 침해도 빚어졌습니다.

 

사태가 사회 병리 현상으로 비화하자 공권력이 개입했습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강력부는 이장림을 사기 및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수사했습니다. 수사 결과, 그는 신도들에게 1992년 10월 28일에 세상이 끝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자신은 1993년이 만기인 환매조건부채권(RP) 등에 거액을 투자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결국 이장림의 행태는 종교 사기극에 불과했습니다.

 

 

천주교회까지 침투한 종말론

 

개신교 이단 신흥 종단의 시한부 종말론은 기성 교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시 개신교 주류 교회들은 다미선교회의 극단적 행동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오히려 그 말세적인 분위기에 편승하거나 동조하는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한국 개신교계 전체의 대사회적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개신교 신흥 종단에서 일어난 이 광풍은 천주교회에까지 불어왔습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천주교 신자들을 주요 포교 대상으로 설정하고 공격적이고 지능적인 선교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가톨릭신문 1992년 7월 5일자 ‘시한부 종말론, 천주교회 안에 침투’ 기사에 따르면, 종말론자들은 이른 새벽 영남 지방(부산, 대구 등)의 천주교 교우 가정만을 골라 가톨릭 신자들의 무지와 각성을 촉구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며 전국적인 영적 혼란을 획책했습니다.

 

 

종말론의 모태는 기성 교회

 

가톨릭신문은 ‘92년 종말설의 실상’, ‘시한부 종말론의 허구’ 등의 기획 연재를 통해 신자들이 종말론의 허구성과 폐해를 분명히 인식하도록 촉구했습니다. 특히 10월 25일자에는 4개월에 걸친 기획 기사를 마무리하면서 전문가 특별 좌담을 마련했습니다.

 

좌담에서는 특히 종말론자들의 대부분이 이미 기성 교회를 다니던 신도들이며, 그들이 중산층 중심의 게토화된 교회 안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 시한부 종말론의 원인 중 하나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즉, “기성 교회에서의 영적 보상의 불평등한 분배 구조가 이들을 교회에서 떠나게 만들고, 세상의 종말과 천년왕국의 임박을 알리는 시한부 종말론을 발생시키게 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시한부 종말론의 모태는 기성 교회라는 지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가톨릭신문은 11월 1일자 사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교회와 신앙 공동체의 근본적인 대처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첫째, 어머니답게 어떤 처지의 자녀라도 차별 없이 품에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정확한 교리 지식과 신앙인으로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일에 소홀해 허위 종말론이 출현하고 추종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면 우리도 그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가톨릭신문, 2026년 6월 7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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