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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상징 속 성인 읽기: 성인의 삶과 상징 (5)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254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6-01

[상징 속 성인 읽기] 성인의 삶과 상징 (5)

 

 

- 백합과 펼쳐진 성경을 든 성 안토니오. 책 위에는 작은 크기의 아기 예수님이 계시다.

 

 

백합, 성경, 아기 예수님: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1195-1226년)는 포르투갈 리스본의 귀족 가문에서 신앙심 깊은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고, 15살 되는 해에 집 근처에 있는 아우구스티노 참사 수도회에 입회했다. 그리고 찾아오는 친구와 친척들을 피해 한적한 수도원에서 공부와 기도 생활에 전념한 끝에 24세 때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품을 받은 이듬해 벽두에 그는 아프리카의 모로코에서 순교한 작은형제회 소속 수도자 5명의 유해가 포르투갈로 운구되어 온 것을 보았다. 그 순간 그는 자신도 순교자가 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혔다. 그해에 작은형제회에 입회했고, ‘수도자의 아버지’인 성 대 안토니오의 이름을 따서 수도명으로 정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선교를 자원했고, 무어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로코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모로코에 도착한 직후 심하게 병을 앓게 되었다. 그래서 귀국길에 올랐는데, 바다에서 심한 폭풍우를 만나 잠시 시칠리아섬에 머물게 되었다. 그곳에서 어느 정도 건강을 추스른 안토니오는 아시시에서 열린 작은형제회 총회에 참석한 뒤, 포르투갈로 돌아와서 영적 수련에 더욱 몰두하고자 한적한 은수처로 갔다.

 

은수처에서 기도하며 학문 연구에 정진하던 어느 날, 안토니오는 그 지역에서 열린 사제 서품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미사에서 강론할 사제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동행한 관구장의 요청으로 그가 강론하게 되었다. 그는 해박한 성경과 신학 지식을 바탕으로 한 열정적인 강론으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그 뒤 그는 카타리파 이단이 날뛰던 이탈리아 북부와 알비파 이단이 기승을 부리던 프랑스 남부에서 설교하라는 소임을 받았고,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불같이 뜨겁고 설득력 있는 그의 설교에 청중은 매료되었고, 그리하여 많은 이단자들이 회개했다. 작은형제회 설립자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그때까지 해박한 성경과 신학 지식이 가난한 삶을 추구하는 수도회 정신에는 도리어 걸림돌이 되지나 않을까 싶어 경계하며 거리를 두었었다. 그러나 안토니오가 소임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것을 보고는 생각을 바꾸게 되었고, 안토니오를 작은형제회의 첫 번째 신학 교수로 임명했다.

 

성 프란치스코가 1226년에 선종한 뒤, 안토니오는 그때까지 활동하던 프랑스를 떠나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이듬해에 한 관구의 관구장 대리로 선출되었는데, 설교에 더욱 전념하기 위해 3년 뒤에 그 직분을 사임하고 파도바 수도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파도바에서 그는 많은 사람을 개종시키거나 회개시켰고, 사람들이 안고 있던 어려운 일과 문제들을 해결해 주고 또한 놀라운 기적도 많이 행했다. 가난한 이들과 도저히 빚을 갚을 길 없는 채무자들을 도와주었고, 옥에 갇힌 사람들을 풀려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과도한 활동과 설교로 그는 기력이 약해졌다. 그리하여 1231년에 잠시 요양하기 위해 파도바 근처의 한 은수처로 갔으나 병세는 위중해져만 갔다. 어쩔 수 없이 파도바로 돌아가던 그는 6월 13일 잠시 들른 한 클라라 수녀원에서 선종했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선종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1232년에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1946년에는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교회 학자’로 선언되었고, ‘복음적 박사’라는 호칭도 받았다.

 

성 안토니오는 빼어난 설교 역량과 수많은 기적 이야기로 유명하다. 이단자들에게 외면당했을 때 그는 사람 없는 강어귀에 가서 설교했고, 그러자 물고기들이 몰려들어 경청했다.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믿지 않는 한 이단자가 도발했을 때, 그 이단자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흘을 굶긴 노새 앞에 이단자는 싱싱한 풀을 내놓았고 성인은 성체를 보여주었는데, 노새는 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성체 앞에 무릎을 꿇어 경배했다.

 

- 물고기를 향해 설교하는 성 안토니오(좌) 성 안토니오와 성체에 경배하는 노새(우)

 

 

그런가 하면 17세기부터는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성 안토니오에게 기도하면 신속하게 찾을 수 있다는 속설이 생겨났다. 이는 한 수련자가 성인이 아끼던 시편 모음집을 집어 간 일에서 유래한다. 성인에게는 소중히 여기던 필사본 시편 모음집이 있었다. 그 책에는 수도자들을 가르칠 때 사용하기 위해 갖가지 주해며 메모를 기록해 둔 터였다. 그런데 그 수련자가 수도원을 떠나면서 아무런 말도 없이 이 책을 가져간 것이다. 성인은 다만 하루빨리 이 책을 되찾게 되기를 기도했다. 그러자 그 수련자가 잘못을 뉘우쳐 이 책을 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시 수도회로 돌아와 살게 되었다.

 

한편, 교회 미술에서 성 안토니오를 그림으로 표현할 때, 작은형제회 출신 성인들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안토니오를 다른 성인들과 구별되게 나타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안토니오를 나타내는 상징물은 풍성한 편이다. 먼저 성인의 정결한 생애를 나타내는 흰 백합이 있다. 그리고 강의 어귀에서 물고기들에게 설교했다는 전설과 관련된 물고기가 있다. 또한 성인이 들고 있는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노새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 안토니오를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은 성인이 펼쳐 놓은 책(성경)과 이 책을 읽으며 묵상하는데 나타나셔서 품에 안기신 아기 예수님이다. 이는 한 사람이 성인을 방문했을 때 목격했다는 광경에서 유래한다. 성 안토니오가 성경을 읽으며 깊은 묵상에 빠져 있는데, 아기 예수님이 찾아오셔서는 성인의 품에 살포시 안겨 계시더라는 것이다. 여기서 책은 성인의 해박한 성경과 신학 지식을 가리키고, 아기 예수님은 그분과 성인 사이의 각별한 사랑과 친분, 그리고 그에 걸맞은 성인의 품성을 나타낸다. 그런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그림에서 아기 예수님의 비중이 점점 커졌다. 화가들이 처음에는 책 위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책의 삽화인 듯 작게 그렸는데, 차츰 예수님을 책보다 더 크게, 나중에는 책을 아예 없애고 예수님만이 성인의 품에 안기신 장면을 그리는 방향으로 바뀌어 온 것이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5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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