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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가톨릭 교리: 부활을 알아보는 눈-사랑

722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6-01

[가톨릭 교리] 부활을 알아보는 눈-사랑

 

 

부활의 참된 의미와 내용

 

부활 시기를 잘 지내고 계신가요?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이자 핵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4,14) 그런데 부활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어떤 과정으로 부활하셨는지,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어떤 상태인지 등등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부활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직접적인 개입과 능력에 따른 것이기에 인간이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활’ 사건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고자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부활의 의미는 ‘다시 살아남’이지만, ‘소생’과는 다릅니다. 즉 심폐소생술을 통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사람을 다시 살려내는 것을 부활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부활은 ‘다시 살아남’ +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라자로나 과부의 아들 등은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 다시 살아났지만 결국 다시 죽었기에, 그들을 부활한 사람이라 하지 않습니다. 부활이란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것이 부활은 아닙니다. 전혀 다른 몸으로,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육신의 부활’, 새로운 몸으로의 부활을 이야기합니다. 

 

부활의 증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제자들의 ‘증언’입니다. 부활의 첫 증인인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해, 12사도,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루카 23장), 겐네사렛 호숫가(요한 21장) 등등 많이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가던 중 다마스커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게 체험했던 사도 바오로(사도 9장) 역시 중요한 증인입니다. 

 

부활의 두 번째 증거는 ‘빈 무덤’입니다. 무덤이 비었다는 것이 부활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이 충분한 증거가 될 수는 없지만, 부활하셨다면 무덤은 비었어야만 합니다. 빈 무덤 자체가 부활의 증거는 아니지만, 무덤이 비었어야 부활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 일어난 사건인가요?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 즉 실제로 일어난 사건일까요? 역사적 사건이란 시공간 안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마리아의 아들로 지상에 태어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건인가? 한편으로 그렇습니다. 실제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역사의 시공간을 초월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역사 안에서 일어난 역사를 뛰어넘는 사건’이라 규정합니다.

 

부활 사건은 첫째,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인간은 이성의 작용을 통해, 즉 감각적인 경험과 추론을 통해 인식하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부활은 인간이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사건입니다. 둘째, 부활 사건은 종말론적 계시사건입니다. ‘종말’이라는 단어의 뜻은 ‘끝, 마지막’인데, 신학적 의미는 ‘최후의 심판이 일어나는 때’를 의미합니다. 심판이란 믿지 않았고 막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단죄를 의미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른 사람에게는 구원 내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종말, 종말론 등의 단어를 예수 그리스도에 근거해 해석하면 구원, 구원론이라는 뜻이 됩니다. 부활 사건이 종말론적 계시사건이란 의미는 믿는 이들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사건, 믿는 이들에 대한 구원 약속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성모님의 승천 등은 신앙인들의 미래를 미리 보여준 사건입니다. 셋째, 부활 사건은 하느님의 능력과 주도권 그리고 구원 의지를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이를 구원하시겠다는 의지, 즉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는 구약과 신약 전체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이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분명해집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이고 유일한 구세주라는 사실이 부활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부활을 이해하는 방법 - 사랑

 

부활 사건과 관련해 신앙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활을 신학적으로 혹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생전 당신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신 후 그분이 부활하실 거라는 기대나 예측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후 모두가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주간 첫날 이른 아침에, 아직 어두울 때에”(요한 20,1)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무덤으로 찾아갔습니다. 예수님 시신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고, 제자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제자들이 빈 무덤을 확인한 후 다시 돌아갔는데, 마리아는 계속 무덤 근처에 머물렀습니다. 무덤 밖에 서서 울던 마리아 뒤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아마도 부활하신 육신은 다른 몸, 다른 음성, 다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 그녀는 잠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때까지도 못 알아보다가 어느 순간, 즉 예수님께서 평소 그녀를 부르셨던 것처럼 “마리아야!”하고 부르셨을 때 그때 비로소 예수님이심을 알아봅니다.

 

마리아는 왜 어두운 새벽에 예수님 무덤에 갔었고, 왜 무덤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왜 ‘마리아야!’라고 불렀을 때 비로소 예수님을 알아봤을까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랑’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사람이었기에, 죽음 이후에도 예수님 곁에 머물렀습니다. 마리아 역시 예수님을 많이 사랑했기에, 예수님의 외모와 음성은 달라졌지만 평소 그녀를 부르시던 모습을 기억하였고 그래서 부활하신 분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부활은 하느님 사랑의 힘이고, 사랑은 부활을 알아보는 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부활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 듯 보여도 사랑하는 사람은 믿을 수 있고, 희망할 수 있습니다. 믿음, 희망, 사랑은 항상 함께하는데, 그 중의 제일이 사랑이라고 하는 이유는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장 깊은 신비라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믿고 희망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콜로 3,14) 

 

[성모님의 군단, 2026년 5월호,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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