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 문학과 그리스도교 영성11: 햄릿 - 불확실성과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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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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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그리스도교 영성] (11) 「햄릿」 : 불확실성과 섭리
‘죽느냐 사느냐’ 삶의 갈등 내려놓고 마주한 ‘하느님의 섭리’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햄릿」에서 주인공이 아버지의 복수를 자꾸 미루게 되는 이유가 그의 나약함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사실은 복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정황과 복수의 윤리적 측면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을 찾지 못한 햄릿은 복수를 계속 지연시킨다.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고조시키는 불확실성은 비극의 중요한 역동성이다.
드라마는 햄릿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은 동생인 클로디어스에게 암살당했다고 알려주면서 시작된다. 당시 영국은 헨리 8세의 종교개혁 이후 성공회를 국교로 삼고 있었다. 개신교는 연옥 교리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연옥의 불 속에 갇혀’ 지내고 있는 유령은 가톨릭 신앙을 암시한다. 마틴 루터가 공부하였던 위텐버그로 유학을 다녀온 햄릿은 신교도 시각에서 이 유령의 진실성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주인공은 놀랍게도 개신교의 가르침을 넘어서는 반응도 보인다. “그대가 그렇게 의심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그대를 햄릿으로, 왕으로, 아버지로, 덴마크 왕으로 부르겠다.”
마침내 유령과의 대화를 마치고, 호레이쇼가 왔을 때, 이렇게 말한다. “호레이쇼, 천지간에는 자네의 학문으로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있다네.” 아버지의 죽음과 유령에 대하여 주인공은 구교의 가르침과 신교의 가르침 사이에서 불확실성을 겪게 된다.
선왕의 죽음에 뭔가 수상쩍은 면이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유령의 존재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계속해서 질문하고, 분석하고, 의심할수록 불확실성의 고통은 더해간다. 그 유명한 ‘죽느냐 사느냐’의 독백이 주인공의 자살에 대한 충동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이 자살과 죽음에 대한 영역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즉, 고통스러운 현실 안에서도 죽지 못하는 이유는, ‘죽음 이후에 겪을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 어떤 나그네도 돌아오지 못한 곳, 그 미지의 나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또한 주인공은 복수 자체에 대한 윤리적 정당성의 불확실성과도 맞닥뜨리게 된다. 경당에서 홀로 기도하고 있는 클로디어스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지만, 칼을 거둔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동안 죽게 되면 ‘천국에 갈’ 것이기 때문이다. 앵글로색슨 문화의 전통적이며 정당한 복수와 자비를 강조하는 그리스도교 사이에서 윤리적 모호성은 복수를 지연시킨다.
중세 시대 전통적 복수극은 안정되게 확립된 도덕 질서가 있었다. 복수의 명분과 정의는 명확하였다. 가족의 복수라는 상황에서, 질문과 의심은 필요 없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그러한 명확성을 붕괴시키고 있다.
제5막 1장에서 햄릿은 묘지를 거닐다가 무덤을 파고 있던 인부들이 던진 해골 하나를 발견한다. 해골의 주인은 그가 어릴 때 궁정에서 일하던 광대 요릭이다. 자신이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키스했던 그 입술이 달렸었던’ 자리를 쳐다보며 ‘구역질이 날 것 같다’고 말한다. ‘천 번도 넘게’ 자신을 ‘등에 태워주었던’ 요릭의 해골 앞에서 주인공은 깨달음을 얻는다.
“호레이쇼, 아는가? 알렉산더 대왕도 무덤 속에선 이 꼴일까? 우리가 죽어 흙이 되면 무슨 천한 용도에 쓰일지 상상 좀 해봐! 알렉산더 대왕의 고귀한 흙을 추적해 보면 술통 마개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겠나?” 주인공은 모든 사람은 죽어서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여러 작가가 언급한 “죽음은 위대한 평등자다”라는 말처럼, 아름다움도, 지식도, 권력도, 재산도, 모두 궁극적으로 동일한 물질적 종말을 맞이한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한스 홀바인의 명작 <대사들>이라는 그림은 인간의 위대한 업적을 묘사한다. 과학기술, 음악, 화려한 의상, 다양한 학문을 지닌, 유학을 다녀온 르네상스 인물인 햄릿도 인간의 “이성은 고결하고 그 능력은 무궁무진하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홀바인의 그림 한구석에는 굴절된 해골의 이미지가 숨겨져 있다.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다.
중세 시대 신 중심에서 벗어나 인본주의를 추구했던 르네상스의 또 다른 정신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성찰이었다. 재의 수요일에 드리는 기도처럼, 결국 모든 것은 먼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성과 싸우며, 요릭의 해골을 보며 죽음의 냉엄한 진리를 대면한 주인공은 허무주의나 체념주의에 빠지지 않고, 신의 섭리에 의탁한다.
죽음의 통찰이 자신을 괴롭히던 불확실성을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여전히 복수에 대한 불확실성이 주인공을 사로잡고 있다. 그 유령(가톨릭 신앙)이 진실일까? 복수는 정당화(그리스도교의 자비) 될 수 있을까? 혹시라도 나 자신이 지옥 불에 떨어지지는 않을까? 계속되는 질문과 의심은 햄릿의 행동을 마비시켰다.
하지만, 인간이 죽음의 진리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우리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흔한 참새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태10,29 참조)는 성경 말씀처럼, 햄릿도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데에도 특별한 섭리가 있는 법’이라고 엄숙히 말한다.
신의 섭리에 맡긴다는 것은, 삶의 통제권을 신에게 드리는 것이다. 햄릿이 불확실성으로 고통받았던 핵심적인 이유는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유령을 만난 후부터 자신의 행동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의 주도권을 상실한 것이다. 비록 여전히 불확실성은 남아있지만, 주도권을 신에게 넘김으로써, 불확실성이라는 불안의 감옥으로부터 해방된다.
가브리엘 천사의 소식을 듣고 마리아는 ‘몹시 놀라고 두려워’하며, ‘곰곰이 생각’하고 질문한다.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이를 갖는다는 말인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자신의 목숨을 잃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서 가족은 죄인이라고 낙인찍힐 것이다.
천사의 설명이 자신의 목숨과 가족의 명예가 위태로울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Let it be)를 바랍니다”라며 하느님의 뜻에 순명한다.
우리의 삶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면서 불확실성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느님 뜻대로 될 것이니, 그냥 그대로 두면 된다는 체념적 수동의 삶이 아니다. 비록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결과를 통제할 수 없지만, 신의 섭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삶의 행위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레어티스와의 결투가 위험할 수 있으니 피하라’는 호레이쇼의 충고에 햄릿은 멈추지 않는다. 확실성이 없이는 행동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불확실성의 문제에 빠져들지 않고, 적극적으로 삶의 행위에 나선다. 이제 햄릿에게 ‘순리를 따르는’ 것은 바로 때가 왔을 때,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마음을 준비해’ 두는 것이다.
마리아도 천사의 소식에 순명한 후, 그냥 수동적으로 머무르지 않았다. 제일 먼저 ‘서둘러’ 산악 지방으로 올라가 엘리사벳을 만난다. ‘마리아의 노래’를 통해 적극적으로 하느님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예수의 탄생, 성전에서 예수를 잃어버린 사건, 카나의 혼인잔치, 십자가 아래서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등에서 미래의 불확실성이라는 감옥에 갇히지 않고, 적극적인 헌신, 식별, 용기의 삶을 드러낸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가톨릭신문, 2026년 5월 31일, 김치헌 바오로 신부(예수회 · 서강대학교 영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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