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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상징 속 성인 읽기: 성인의 삶과 상징 (4) 성녀 안나와 성 안사노

253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5-06

[상징 속 성인 읽기] 성인의 삶과 상징 (4)

 

 

문, 붉은색 또는 녹색 옷: 성녀 안나

 

성녀 안나는 성 요아킴의 아내이자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며 예수님의 외할머니다.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가족이며 어린 시절과 교육 그리고 요셉과의 약혼 등 마리아와 관련된 이야기는 교회 초기부터 전해 내려왔다. 그리고 성녀 안나에 대한 신심은 일찍이 6세기에 동방에서 시작되었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안나와 요아킴을 ‘하느님의 선조’라 일컬었다. 이 신심이 차츰 서방 교회에도 전해졌다. 서방 교회의 성녀 안나 공경을 묘사한 8세기의 그림이 이 점을 말해준다. 그렇지만 13세기 이전까지는 프랑스 남부를 제외한 유럽 지역에서 성녀 안나를 공경한 흔적을 보기가 어렵다.

 

그리고 중세기를 거치면서 서방 교회에서도 성녀 안나를 바다와 관련되는 수호성인으로, 이를테면 폭풍우에 시달리는 선원들과 어부들이 보호를 기원할 때 기억하며 의지하는 성인으로 기리기 시작했다. 차츰 성녀 안나에 대한 신심이 확산하면서 15세기에는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1854년에는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앞당겨서 마리아의 몸과 영혼을 존재하는 첫 순간부터 온전하며 죄에 물들지 않도록 보존하셨다는 믿음의 내용이 가톨릭교회의 교의로 선포되었다.

 

이때부터 교회는 성녀 안나를 여러 계층과 분야와 지역의 수호성인으로 폭넓게 공경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성녀 안나는 미혼 여성과 임신을 원하는 여성, 주부와 일하는 여성, 할머니와 어머니와 교육자의 수호성인, 말을 타는 사람과 캐비닛을 만드는 사람과 광부의 수호성인, 그리고 여러 나라와 지역과 도시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이 성녀가 광부의 수호성인이 된 것은 마리아와 예수님이 은과 금에 비유되던 중세기에 성녀의 자궁이 이러한 귀금속들을 채굴될 때까지 품었던 자리로 여겨진 데서 유래한다. 한편, 성녀 안나는 특이하게 이슬람교의 경전인 쿠란에서도 영성이 뛰어난 여성이자 마리아의 어머니로서 칭송된다.

 

 

- 성가족 3대(좌) 황금문 앞 성녀 안나와 성 요아킴의 만남

 

 

교회 미술에는 성녀 안나와 성 요아킴이 예루살렘의 황금문에서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있는데, 이는 성녀 안나가 마리아를 잉태한 시기와 관련된다. 이에 문은 성녀 안나를 표상하는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성녀 안나는 흔히 사랑과 생명을 상징하는 붉은색 또는 녹색 옷을 입은 할머니로 묘사된다. 후대의 사람들은 아기 예수님을 그린 그림에는 종종 등장하던 안나가 장성하신 예수님을 그린 그림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예수님이 장성하시기 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동방 정교회에는 성녀 안나와 요아킴을 기리는 축일이 여럿인데, 가톨릭교회는 7월 26일 하루만 축일로 지낸다.

 

- 시에나 흑백기를 든 성 안사노

 

 

시에나 흑백기를 든 청년: 성 안사노

 

교회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 안사노는 3세기 말에 로마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어린 안사노를 보모의 손에 맡겨 양육했는데, 보모였던 막시마(나중에 순교하고 시성되었음)는 은밀하게 그를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으로 키웠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그리스도교를 탄압하던 4세기 초에 19세 청년 안사노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공공연하게 밝혔다. 그러고는 로마 북쪽의 토스카나 지역에서 복음을 선포했다. 이에 분노한 그의 아버지는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했고, 심지어 아들을 당국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그는 막시마와 함께 체포되었고, 매질 고문을 당했다. 모진 매질에 막시마는 숨을 거두었고, 안사노는 매질 뒤에 기름이 끓는 솥에 던져지는 형벌을 받고도 죽지 않아 죄수로서 시에나로 압송되었다(또는 감옥에 갇혔다가 어렵사리 빠져나와서 시에나로 갔다고 한다).

 

안사노는 시에나에서도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도록 이끌었다. 그러다가 끝내 황제의 명에 따라 참수형을 당했다. 그러한 그를 사람들은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한 요한 세례자에 빗대어 ‘시에나의 세례자’라고 일컬었다. 또한 복음을 널리 선포한 이들을 가리키는 호칭에 빗대어 ‘시에나의 사도’라고도 불렀다. 중세기의 화가 두치오가 그린 시에나 대성당의 제단화 ‘마에스타(Maestà)’에는 그가 시에나의 네 수호성인 중 한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로마 황제에게는 눈엣가시 같았던 성 안사노가 오늘날까지도 공경을 받는 시에나의 수호성인이 된 것이다.

 

한편, 그가 갇혀 있었던 감옥에서는 그로부터 1천여 년이 지난 뒤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15세기에 그 감옥의 벽에 그려져 있던 성모자상이 실제로 살아서 움직인 것이다. 이 기적을 기념하여 그 감옥 터에는 성당(산타 마리아 델레 카르체리 대성당)이 세워졌다.

 

19세에 순교한 성 안사노를 교회 미술에서는 수염을 기르지 않은 청년으로 묘사한다. 대개는 이 청년이 시에나의 흑백기(시에나의 상징색인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깃발)를 손에 들거나 기름이 끓는 솥에 던져지거나 참수를 당하는 모습, 또는 수많은 사람을 세례로 이끈 사실과 관련해서 세례수 용기를 손에 든 모습이다. 또한 초기의 여느 순교자들과 마찬가지로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든 모습도 있는데, 죽음을 통한 영적 승리를 나타내는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든 것은 그가 순교자임을 나타낸다. 

 

 

- 시에나 대성당의 제단화 ‘마에스타’(왼쪽 앞에 무릎 꿇은 청년이  성 안사노)

 

 

작은 십자가나 성경책을 든 모습도 있는데, 이는 신앙에 대한 그의 헌신과 복음 선포자로서 그의 면모를 나타낸다. 드물게는 자신의 심장, 허파, 간 등의 장기를 손에 든 모습이 있는데, 이는 그가 겪은 잔혹한 고문과 순교를 나타낸다. 이와 관련해서 성 안사노는 또한 가슴 질환을 앓는 이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성 안사노의 축일은 그가 순교한 12월 1일이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4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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