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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47: 1989년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201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5-06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 (47) 1989년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시대 아픔 껴안은 평화의 빛, 성체 안에 일치와 나눔 서약하다

 

 

“성찬례 통해 성체 신비 생활화 다짐, 교황 두 번째 訪韓, 미사 주례 - 구원의 성사인 성찬례를 통해 나눔과 일치의 신비를 드러내는 역사적인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의 핵심 행사인 장엄미사가 대회 마지막 날인 10월 8일 오전 10시30분 여의도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주례하고 각국에서 온 주교단과 사제단이 공동으로 집전한 가운데 성대하게 봉헌됐다.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주제로 지난 10월 4일 개막과 함께 기도회, 학술 심포지엄, 젊은이 성찬제 등 각종 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진 이번 성체대회에서 피날레를 장식한 이날 장엄미사에는 전 세계 108개국에서 온 200여 명의 주교단 및 2000여 명의 사제단과 65만 명의 국내외 신자들이 참례, 성체 안에 하나 되어 그리스도를 찬미하고 성체 신비의 생활화를 다짐했다.”(가톨릭신문 1989년 10월 15일자 1면)

 

- 1989년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는 분단 조국의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의 참 평화’를 향한 염원을 드러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10월 8일 주례한 여의도 광장 폐막미사 전경.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1989년 10월 8일,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 있었던 드넓은 광장에는 65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인파가 운집했습니다. 이날 오전 10시30분, 가톨릭의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폐막미사가 거행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날 미사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4년에 이어 두 번째로 방한해 주례했습니다.

 

지금은 여의도공원으로 조성된 이 여의도광장은 원래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아스팔트 활주로가 있던 비행장이었습니다. 이후 박정희 정권 당시인 1971년 ‘5·16 광장’이라는 이름의 비상활주로 광장으로서 대대적인 군사 및 국가 행사 공간이 됐습니다. 그리고 김영삼 문민정부에서 군사정권 잔재 청산과 환경친화적 도시개발 계획이 추진돼 1999년 여의도공원으로 조성됐습니다.

 

여의도광장 시절, 광장은 7만2000평, 도로 면적을 포함하면 총 12만 평에 달했습니다. 이론적으로 최대 수용 인원은 약 70만 명이며, 현실적으로는 50만 명 수준이 한계였습니다. 그러니까 무려 65만 명이 한자리에 모인 이날 행사가 얼마나 큰 규모를 기록했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이처럼 역사적 공간 위에서 열린 대회는, 단순한 종교 행사를 넘어 당시 한국 사회의 시대적 전환과 깊이 맞물려 있었습니다. 아직은 동양의 작은 나라였던 한국, 선교지역의 미미한 교세를 가진 작은 지역교회에서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가장 큰 국제행사가 열린 것은 시대적 요청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1980년대 한국은 가장 역동적이고 고통스러운 전환기였습니다. 1970년대 고도성장 뒤에는 노동, 빈곤, 인권 유린, 군사 독재 등 첩첩이 쌓인 부조리와 불의한 사회 상황이 있었고, 이는 1980년대 들어 전 사회적인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아픔에 깊숙이 참여해 교회 울타리 안에 안주하지 않고, 민주화와 인권 수호의 보루로서 복음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양심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1987년 6월 항쟁을 통한 정치적 민주화의 달성은 한국 사회가 권위주의를 극복하고 시민 사회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분수령이 됐고, 그 한가운데에 천주교회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서울 세계성체대회는 단순한 신앙 행사가 아니라, 민주화 이후 사회적 치유와 통합을 향한 교회의 응답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세계성체대회는 1881년 프랑스 릴에서 시작, 4년마다 전 세계를 순회하며 개최됩니다. 이 대회의 본질은 성체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그 신비로운 일치를 통해 인류의 화해와 평화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특히 1960년 독일 뮌헨 대회 이후 세계성체대회는 교회의 담장을 넘어 인류 전체를 향한 보편적 의미가 강화됐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분단국가인 한국의 특수성과 민주화 이행기라는 시대적 요청, 그리고 신흥 성장 국가인 한국이 아시아 선교의 거점이 되리라는 기대가 맞물려 서울이 개최지로 선정됐던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입장에서, 정치적 민주화의 성취는 세계성체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과제를 던져주었습니다. 첫째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 참여적 에너지를 신앙과 영성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었고, 둘째는 급격한 사회 변동 속에서 소외된 이들을 포용하는 복음적 실천력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울 세계성체대회의 주제인 그리스도의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와 용서가 전제된 복음적 평화였고, 이는 민주화 이후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려는 교회의 사목적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 가톨릭신문 1989년 10월 15일자 7면.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평화, 감사, 회심과 일치를 향한 염원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주제로 열린 세계성체대회는 평화와 감사, 회심과 일치를 향한 한국민들의 염원을 가득 담아 성대하게 개최됐습니다.

 

대회는 평화의 사도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축일인 10월 4일 전야제 평화의 날을 시작으로, 5일 감사의 날에는 제찬과 성찬 심포지엄이 개최됐습니다. 6일 회심의 날에는 세계 평화와 교회를 주제로 한 강연회와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본 한반도의 평화 심포지엄 및 젠 베르데의 공연 ‘깨어나라’가 열렸으며, 이어 참회 예절과 철야기도회가 이어졌습니다.

 

7일 일치의 날에는 성공회 성당에서 각 교파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리스도교 일치 기도회가 개최됐고, 한반도의 분단 지점이 보이는 도라산에서는 ‘하나 되게 하소서’를 주제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평화 통일 기원미사가 봉헌됐습니다. 이날 오후 서울에 도착한 교황은 서울대교구 논현동성당에서 ‘엠마우스 성시간’을 주재한 뒤 ‘젊은이 성찬제’에 참석했습니다.

 

대회 마지막 날인 8일 축제의 날에는 교황이 직접 주례하는 장엄미사가 여의도광장에서 성대하게 봉헌됐습니다. 교황은 이날 강론 서두에서 “한국교회 103위 순교성인 시성식을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한 지 5년 만에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의 폐막미사를 거행할 수 있게 된 은총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전한 뒤, “성도들의 일치는 그리스도 안에 가장 깊은 근원이 있으며 성찬례 안에 가장 충만한 성사적 표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1989년 서울 세계성체대회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한마음한몸운동’의 제도적 정착입니다. 이 운동은 성체대회의 정신을 '생활 실천'으로 구체화했는데, 초기에는 헌미헌금운동을 중심으로 시작됐으나, 점차 생명 나눔, 환경 보존, 국제 원조 등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 지금도 왕성하게 나눔운동과 생명운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는 비록 5일간의 짧은 기간 개최된 대회였지만, 한반도의 비극적 분단의 현실 속에서, 인종과 민족을 초월해 참 평화를 원하는 모든 이의 마음을 모아,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하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가톨릭신문, 2026년 5월 3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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