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 성경 다시 보기: 하늘나라와 하느님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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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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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다시 보기] “하늘나라”와 “하느님의 나라”
“하늘나라”는 마태오에만 나옵니다(34번). 창세기 1,1절에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들 מימשׁה과 땅을 זראה 창조하셨다. 하늘은 복수로 땅은 단수로 표현됩니다. 마태오에서도 늘 하늘은 복수입니다. 그 하늘들의 그 나라(η βασιλεια των ουρανων -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2코린 12,2 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여기서도 하늘이 여러 층으로 보입니다. 하늘을 복수로 말하는 것은 유다이즘의 관습적인 표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태오에서도 “하느님의 나라”라는 표현이 4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12,28; 19,24; 21,31.43). 마태오의 “하늘나라”나 다른 복음서의 “하느님의 나라”가 같은 뜻을 지닌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마태오 11,11에서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그러나 루카 7,28에서는 하늘나라 대신 하느님의 나라라고 하니 말입니다.
아마도 마태오에서는 하늘이라는 표현으로 하느님을 드러낸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말에도 하늘이 알고 땅도 안다. 하늘이 무섭지도 않나? 여기서 하늘이란 하느님을 땅은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신)을 직접 언급하기보다는 그분을 상징하는 다른 표현인 하늘을 언급하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하늘나라”와 “하느님의 나라”가 같은 뜻이라면,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늘나라가 우리가 죽어서 가야 할, 소위 말하는 천당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에게 와야 할, 현세에서 우리가 무엇을 이루어야 할 장소인지를 말입니다.
우선 주님의 기도를 볼까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마태 6,10) 무슨 뜻입니까? 하느님이 다스리는, 하느님의 뜻이 우리에 의해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나라가 이 땅에 오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태오 5,19를 살펴보아도 그렇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계명들을 스스로 지키고 가르치는 이가 큰 사람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즉 계명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것을 알고 실천, 실행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현세에서 우리가 할 일들입니다. 하늘나라를 비유하는 대목들도(마태오 13장; 마르코 4장; 루카 8장) 이런 관점에서 살펴볼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무엇인지, 그 개념을 파악하는데, 관심을 두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느냐 아니하느냐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마태오의 최후 심판 대목(마태 25,31-46)도 그렇습니다. 즉 형제들에게 해 준 것이 하느님께 해 준 것이라는 실천을 말합니다(40절), 주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은 이들은 영원한 징벌로 떠나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떠나갈 것입니다(45절 이하).
그러니까 신약에서 말하는 하늘나라(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느냐 않느냐에 중점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마태오 11,11(루카 7,28 참조)의 세례자 요한의 평가는, 주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 그것으로 그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가장 큰 사람일지는 몰라도, 그것을 알고 그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하늘나라에서는 더 중요하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죽어서 천당 간다는 그 표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 우도에게 하신 말씀을 상기할 수 있겠습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이 단어는 희랍어로 “파라데이소스”(παραδεισος), 히브리어의 “파르데스”(סדרפ)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우리가 아는 “파라다이스”인데, 이 말은 신약에서 3번 나옵니다(루카 24,43; 2코린 12,4; 묵시 2,7).
[2026년 4월 12일(가해)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가톨릭마산 11면, 황봉철 베드로 신부(성서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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