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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초대교회 사람들: 손경윤, 손경욱 형제

200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4-15

[초대교회 사람들] 손경윤, 손경욱 형제

 

 

신유박해 당시 각각 참수형과 유배형에 처해진 손경윤, 손경욱 형제의 본명은 제르바시오와 프로타시오입니다. 제르바시오와 프로타시오 두 성인은 《성년광익(聖年廣益)》에 6월 19일의 주보 성인으로 전기가 올라 있습니다. 밀라노의 순교자 부부 성 비탈리스(Vitalis)와 성녀 발레리아(Valeria)의 쌍둥이 아들로, 서기 96년에 신앙을 지켜 순교하였습니다. 두 성인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전 재산을 썼고, 자신들은 아주 작은 집에 살면서 10년간 주를 섬기고 묵상하며 살다가, 끝에 납을 매단 혹독한 채찍질 끝에 참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손경윤, 손경욱 형제는 1790년에 최필공을 통해 입교하여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혹시 형제가 부유한데다 쌍둥이여서 이 세례명을 받았던 걸까요? 아니면 그들의 생일이 6월 19일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필 치명 순교자 형제의 이름을 두 사람에게 나란히 지어준 것이 눈길을 끕니다.

 

손경윤 형제는 1791년 진산 사건 직후 자수했다가 배교를 다짐하고 석방되었습니다. 1796년 주문모 신부 실포 사건 때도 형조에 붙잡혀 들어가 독한 형벌을 당하고 배교의 뜻을 둘러대어 다시 석방되었습니다. 두 번 다 어머니와 아내 및 자식까지 잡혀간 사실에 놀라 자수한 것입니다.

 

손경윤의 집은 안국동에 있었고, 그는 엄청나게 큰 집을 한 채 사서 술집을 운영했습니다. 바깥채는 술 손님으로 늘 시끌벅적했는데, 그 소란스러움을 이용해서 안채에서 몰래 교우들을 모아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아우 손경욱도 지금의 서대문구 현저동 모화관(慕華館) 인근에 큰 약국을 열어, 교회의 한 거점이 되었습니다. 《사학징의》에는 황일광이 정동의 술 파는 집 행랑채에서 땔감을 팔며 살았다는 진술이 보입니다. 당시 술집이나 약국으로 위장해서 교회의 본거지로 삼는 것은 이른바 도심 속 교회의 허허실실 작전이었던 셈입니다.

 

1801년 신유박해 당시 회장으로 활동했던 손경윤은 41세 때인 1801년 12월 26일에 서소문 밖에서 이경도, 김계완, 홍익만 등과 함께 참수형에 처해져서 이름값을 했습니다. 아우 손경욱 프로타시오는 12월에 유배형에 처해져서 울산으로 끌려 갔습니다. 그의 뒷 소식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들 형제는 황사영과 특별히 가까웠기에 더욱 끔찍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들 형제가 1791년과 1796년에 거듭 배교했던 것은 죽음이 두려워서이기 보다는 가족을 지키고 교회 안에서 해야 할 역할이 컸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술집과 약국을 거점 삼아 교리 교육과 포교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고, 자신의 재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교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다블뤼 주교는 《조선순교사비망기》에서 손경윤에 대해 “회장직에 임명되면서 그는 아주 성실하게 자신의 직분에 전념하였고, 사람들은 아직도 그의 열성과 헌신에 대해서 말을 할 정도이다.”라고 썼습니다. 제르바시오와 프로타시오 형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2026년 4월 12일(가해)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서울주보 7면,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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