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 시간 전례(성무일도) (3) 삶의 틈바구니에서 시간 전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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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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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시간 전례(성무일도) (3) 삶의 틈바구니에서 시간 전례를
시편 제목과 인용문
후렴에 이어 시편과 찬가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또 다른 장치는 시편의 제목입니다. 성무일도서에는 시편 제목이 시편 번호와 함께 빨간색 글씨로 인쇄되어 있는데, 성경 본문에는 나오지 않는 이 시편 제목들은 이제 곧 바치려는 시편의 주제와 분위기를 요약하여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제2주간 주일 아침기도의 첫째 시편을 봅시다. 성무일도서에는 시편 번호 117(118) 밑에 “구원받은 기쁨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의 제사 때 불렀던 시편입니다. 나중에는 파스카 예식의 일부가 되었으니, 예수님과 사도들도 최후의 만찬 때 이 시편을 낭송했을 것입니다.
이 시편의 주인공은 이스라엘과 그 주변 지역을 평정한 다윗 임금으로 보입니다.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히려 산전수전을 두루 겪은 쪽에 가깝습니다. 그는 승리와 영광을 맛보았고, 동시에 원수의 위협과 목전에 닥친 죽음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았습니다. 죄악과 간계에 물든 적도 있었으나, 마음을 찢는 회개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인물도 그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의 구절들은 다윗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되울립니다. “나는 정녕 죽지 않고 살리라”(17절). “주님께서 나를 그토록 벌하셨어도 죽음에 내버리지는 않으셨네”(18절). “당신께서 제게 응답하시고 제게 구원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21절).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22절). 시편의 이런 사연과 상황들이 “구원받은 기쁨의 노래”라는 간단한 제목 안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을 기도하려는 사람은 단순히 좋은 일을 맞이한 기쁨이 아니라 하느님께 굳게 의지했던 한 인물이 인생 역정 끝에 보게 된 구원의 기쁨을 노래할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빨간 글씨로 된 시편 번호와 제목 아래 있는 검은색 인용문은 신약 성경이나 교부들의 저서에서 뽑은 문장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편과 찬가의 이해를 돕는 세 번째 장치입니다. 이 인용문은 시편이나 찬가가 예수 그리스도 또는 그분의 복음과 맺는 연관성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제2주간 수요일 아침기도에서 우리는 한나의 찬가(1사무 2,1-10)를 바칩니다. 이 찬가는 오랫동안 아이를 얻지 못하던 한나가 아들 사무엘의 탄생으로 하느님께 받은 은혜를 기뻐하며 부른 노래입니다. 찬가 제목 아래에는 성모의 노래 ‘마니피캇’에서 뽑은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도다”(루카 1,52-53). 마리아의 노래와 한나의 찬가는 놀라우리만큼 닮았습니다. 이 짧은 인용문은 두 노래의 닮은 점뿐 아니라, 두 어머니의 삶과 믿음이 지닌 차이와 공통점을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같은 제2주간 수요일 아침기도에서 바치는 시편 97(96)에는 성 아타나시오의 해설이 붙어 있습니다. “이 시편은 세상의 구원과 주님께 대한 모든 민족들의 믿음을 나타내고 있다.” 대담한 주장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시편의 구절들을 보면 그의 말이 근거 없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께서 다스리시니 땅이여 춤을 추라, 하고많은 섬들도 기꺼워하라. … 하늘은 당신 정의를 두루 알리고 만백성은 그 영광을 우러러보도다.” 따라서 성 아타나시오에 기대어 이 시편을 바치면, 옛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의 교회뿐 아니라 더듬거리는 몸짓으로나마 옳고 선하고 아름다운 하느님의 선물들을 추구하는 세상 모든 민족들이 하느님을 제대로 아는 기쁨을 누리게 되리라는 희망 안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바치려는 분들께
가정과 직장이라는 세속의 과업을 짊어지고 사는 신자들은 하루 일곱 번은커녕 한 번의 시간경을 바칠 짬조차 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직장의 마감 시간, 우는 아이들, 고치고 다듬고 정리해야 하는 집안일, 급히 장을 봐야 하는 상황, 아이들의 각종 활동 보조 등으로 인해, 어쩌다 기도할 틈이 나도 기도에 필요한 힘마저 다 소진되어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우리 시야에서 아무 말 없이 펼쳐져 있는 성무일도서만큼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새해 아침 좋은 결심을 하듯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가는 삶의 뼈대를 다시 세우고자 벌떡 일어서듯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불현듯 시간 전례(성무일도)에 입문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이것저것 재지 말고 그냥 시작하면 됩니다. 다만 한번 하고 말 게 아니라면, 내일도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한 번에 조금씩 시도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초심자가 갑자기 “내일부터 아침기도, 낮기도, 저녁기도, 끝기도, 독서기도까지 전부 다 해보겠어!”라고 결심하면 십중팔구 실패를 맛볼 것입니다. 시간 전례(성무일도)는 긴 호흡으로 한 시간경 씩 천천히 늘려가는 편이 가장 좋습니다.
어떤 시간경을 바칠지 고민된다면, 하루 일과 안에서 자연스러운 틈을 찾아보십시오. 가족보다 일찍 일어나 조용한 시간을 즐기는 타입이라면 아침기도가 알맞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 활동 시간을 기다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 그 시간은 저녁기도를 바치기 아주 좋은 때입니다. 직장의 점심시간이나 휴식 시간을 조금 떼어 둘 수 있다면, 길어야 5분 남짓 걸리는 낮기도가 제격입니다. 요즘에는 음성이 지원되는 성무일도 앱이 있어 운전 중에 어느 시간경을 틀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핸들을 잡는 동안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기도 소리를 듣는 일은 전례 행위라기보다는 신심 행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매일 시편을 접하고 교회의 기도 지향에 마음을 합하는 최고의 방법이 된다면 마다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특히 입과 마음이 거칠어지기 쉬운 운전 중에는 아주 좋은 처방이지 싶습니다.
끝으로 드리고 싶은 응원의 말씀은 좋은 일은 잘 못 해도 하는 것 자체로 가치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바치는 습관의 핵심은 지속성에 있습니다. 평소 아침기도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었지만, 어느 날 도무지 시간이 없어서, 또는 마음이 너무 산란하거나 괴로워서 집중할 수가 없다면, 기도를 건너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가치 있는 일은, 설령 서투르게 하더라도 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없을 때 저녁기도를 단 몇 분 만에 빠르게 바치더라도 아예 기도를 건너뛰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렇게 바친 기도는 무의미하게 사라지지 않고 다음 기도를 위한 징검다리가 되어 줍니다. 징검다리의 돌 하나가 빠지면 먼 거리를 뛰어야 하듯이, 대충이라도 바친 그 기도가 없다면 다음에 기도를 시작할 때는 더 큰 힘이 필요한 법입니다. 작은 습관이라도 제대로 지키다 보면 생각과 마음을 목소리에 충분히 실을 수 있는 날은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3월호,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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