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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의 샘: 마리아네 집

226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4-07

[영성의 샘] 마리아네 집

 

 

이탈리아 중부에는 인구 1만여 명 남짓한 작은 도시 ‘로레토(Loreto)’가 있다. 도시 규모는 소박하지만, 이곳은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순례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대표적인 성모 순례지다. 그 이유는 성모님께서 태어나고 자라셨으며,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들으셨던 나자렛의 집이 이곳에 옮겨져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자렛에 있어야 할 집이 어째서 이탈리아 로레토에 자리하게 되었는지, 또 과연 성모님의 집이 맞는지에 대한 물음은 오랜 세월 동안 역사적 자료와 학문적 연구를 통해 검증되어 왔다. 그 결과 이 집은 오래전부터 ‘성모님의 집’으로 공인되었고, 오늘날까지도 하느님 안에서 신앙의 깊이를 찾아 나서는 이들을 위한 기도의 자리가 되고 있다.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거룩한 집(Santa Casa)’이라 불리는 이 성모님의 집을 보호하고 순례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성당 건축을 시작하셨다. 15세기에 착공되어 1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완공된 대성당 한가운데, 성모님의 집은 조용히 놓여 있다. 

 

로마 유학 시절, 방학을 맞아 혼자서 로레토를 순례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여정을 떠올리면 마음 깊은 곳에서 설렘이 되살아난다. 성모님의 생애와 신앙을 관통하는 핵심, 곧 ‘피앗(Fiat)’이 울려 퍼진 현장을 직접 보게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겸손과 순명의 고백이 머물렀던 그 공간의 숨결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성모님의 집을 둘러싼 웅장한 대리석 조각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대리석 조각에 감탄해서가 아니라, 소박하고 낮은 자리를 좋아하신 ‘피앗의 성모님’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각의 화려함이 내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머뭇거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성모님의 집 안에 들어가 머물며 기도하던 시간은 말 그대로 은총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순례객이 많지 않은 고요함 속에서,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며 바친 묵주기도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이 글을 적으며 ‘성모님의 집’이라 표현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마리아네 집’이라는 표현이 더 친근하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나에게 ‘마리아네 집’은 두 가지 집을 의미한다. 하나는 로레토에 있는, ‘피앗’이 울려 퍼진 성모님의 집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고향 집이다. 

 

두 명의 누나 가운데 큰누나의 세례명이 마리아였기에, 우리 집은 동네에서 자연스레 ‘마리아네 집’으로 불렸다. 동네 분의 신자 여부와는 상관없었다. 부모님은 마리아 엄마, 마리아 아빠, 할머니는 마리아 할매, 우리는 마리아 동생이었다. 어린 시절 전화를 받으면 늘 들려오던 말, “여보세요, 거기 마리아네 집이지요?” 그때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하곤 했다. “네, 마리아네 집입니다.”

 

로레토 성모님의 집에 앉아 기도하며 10대 소녀 마리아와 그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가 하루하루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올렸을 그 시간을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의 마리아네 집이 겹쳐졌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가족이 함께 기도했던 집, 특히 매일 저녁 함께 바치던 묵주기도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힘이 된다. 그 어떤 말보다, 그 어떤 격려보다 깊은 위로로 남아 있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계산하기보다는 순명으로

 

나는 모든 레지오 단원의 가정 또한 ‘마리아네 집’이라 믿는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고백을 삶으로 살아내고자 생각하고, 기도하고, 활동하는 이들의 집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레지오 단원의 집은 마땅히 마리아네 집이라 불릴 수 있다.

 

물론 마리아네 집이 언제나 포근하고 평온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기치 못한 일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고,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 앞에서 흔들리는 시간도 있다. 성모님께서 맞이하신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 역시, 인간적으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커다란 시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모님은 받아들이셨다. ‘피앗!’(그대로 이루어지소서)  

 

이 사순시기, 다시 한번 ‘피앗’의 성모님처럼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간절히 하느님께 청해보자. 이해되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계산하기보다는 순명으로, 하느님의 뜻을 맞아들이는 용기를 청해보자. 은총의 사순시기, 하느님의 자비가 모든 마리아네 집에 조용히 머물기를 기도한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3월호, 김재형 베드로 신부(안동교구 홍보·전산 담당, 안동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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