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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의신학ㅣ교부학
[교부] 교부들의 삶과 신앙: 회개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교부 테르툴리아누스

98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3-12

[교부들의 삶과 신앙] “회개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교부” 테르툴리아누스

 

 

지난 시간 우리는 아테네의 아테나고라스의 삶과 신앙을 묵상하며, 그리스도교의 부활 신앙이 결코 비이성적인 신화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하느님의 정의에 기초한 합리적 신앙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사순 시기를 맞아 2-3세기를 거쳐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활동하며 신앙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지녔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사순 시기는 교회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가? 신앙은 우리 삶의 중심인가, 아니면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가? 이러한 물음 앞에서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스스로 답을 찾으며 신앙의 본질을 향해 담대히 걸어갔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박해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사회적 불이익과 죽음의 위협을 동반하던 시기였기에, 그리스도교인이 된다는 것은 곧 죽음의 그림자 앞에 서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호교론』 50,13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Plures efficimur quotiens metimur a vobis; semen est sanguis Christianorum.” 이는 “우리는 당신들에 의해 베어질수록, 곧 죽임을 당할수록 더욱 많아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피는 씨앗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그는 박해가 결코 그리스도교를 무너 뜨리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참된 신앙은 안정과 편안함이 아니라, 삶 전체를 내어맡기는 결단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순 시기의 단식과 절제, 그리고 희생은 이러한 맥락 안에서 새롭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종교적 관습이나 문화적 소속감의 표현이 아닙니다. 사순의 본질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한 나의 신앙고백을 삶의 행위로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와 질서를 좇아 살아가던 삶에서 벗어나 복음의 질서로 방향을 전환하는 시간, 그것이 바로 사순입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참회에 관하여』에서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건넵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죽음 대신 선택될 때 생명입니다. 그러니 죄인이 된 그대여, 나와 같은 이여, 아니 오히려 나보다 [죄에 관해서는] 더 작은 이여, 난파자가 하나의 판자를 붙잡듯이 그렇게 회개를 붙들고, 그렇게 온 힘으로 껴안으십시오”(테르툴리아누스, 『참회에 관하여』 4,2). 그는 회개를 값싼 은총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회개는 단순한 감정적 후회가 아니라 신앙을 회복하는 실질적인 행위입니다. 눈물은 회개의 시작을 보여 줄 수 있지만, 그 이후에 일어나는 삶의 변화야말로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사순 시기의 고해성사 역시 단순한 종교적 의무로 전락할 때 값싼 은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고해성사는 세례로 시작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시 새롭게 하는 은총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고해소에서 죄를 나열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선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해야 합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회개를 공동체적 사건으로 이해했습니다. 죄는 개인의 문제에만 머무르지 않고 교회 전체에 상처를 남깁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회개는 개인의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교회 공동체를 정화하는 은총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정화는 교회를 거룩함을 향해 부름받은 공동체임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세상과 동일해질 때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다른 얼굴을 드러낼 때 비로소 거룩함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얼굴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경쟁과 효율, 성과와 이미지라는 기준에 익숙해져 세상의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순은 교회의 얼굴을 다시 맑게 하는 시간입니다. 겸손과 기도, 단식과 자선이라는 오래된 전통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도록 돕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삶과 신앙은 단순히 ‘엄격함’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없습니다. 그 이면에는 거룩함을 향한 치열한 갈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정체성은 외적인 조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진정성이 살아날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사순은 우리를 다시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로 초대합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2-3세기를 살았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는 듯합니다. 당신의 신앙은 삶을 건 결단입니까, 아니면 그저 반복되는 일상의 습관이 되어가고 있습니까? 기도 위에 세워진 회개와 침묵 속에서 봉헌되는 보이지 않는 희생은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복음화하는 씨앗이 됩니다. 그리고 그 씨앗이 자라 열매 맺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순의 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2026년 3월 8일(가해) 사순 제3주일 가톨릭마산 4-5면, 이승언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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