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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초대교회 사람들: 북경 메신저 김유산

199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3-12

[초대교회 사람들] 북경 메신저 김유산

 

 

연말마다 북경으로 떠나는 연행사 행차 속에는 으레 북경 교회로 갈 밀서를 전달하는 신자가 숨어 있었습니다. 이들이 북경 주교에게 서신을 전달하고 다시 답장을 받아오는 과정은 거의 첩보 영화 수준입니다.

 

김유산(金有山, 1761-1801)은 1798년과 1799년에 주문모 신부의 편지를 들고 북경에 갔습니다. 북경에 도착한 그는 관광하는 척 성당을 찾아가 편지를 전달하였습니다. 1799년에 그는 다시 북경으로 편지를 들고 떠납니다. 천안 감옥에 갇혀 있던 이존창은 김유산에게 현금 15냥과 올이 가는 흰색 백세목과 겨울옷 한 벌을 푸른 보자기에 싸주면서 옷 속에 전달할 편지가 있으니 천주당 신부에게 잘 전해줄 것을 당부합니다. 편지는 비단에 싸서 가슴과 등 사이에 넣어 꿰매져 있었습니다. 그는 역졸을 돈으로 매수해서 서장관의 마부 구실을 얻어 사행 속에 스며 들었습니다.

 

북경에 도착한 김유산이 혼자 천주당 앞에서 안쪽을 기웃대자 문지기가 그를 내쫓았습니다. 김유산은 다급하게 손을 가슴에 대고 성호를 그었고, 또 입고 있던 겨울옷을 가리키며 문질렀지요. 조선 신자가 접선할 때 쓰는 약속이었던 겁니다. 놀란 문지기가 태도를 바꾸자, 그는 편지가 든 옷을 벗어 문지기에게 건넵니다. 김유산은 출발 3일 전에 다시 찾아가 그 옷을 되돌려 받았습니다. 그 옷 속에 북경 주교의 답장이 들어 있었지요.

 

이들은 편지 외에 세례 받을 때 쓰는 성유(聖油)와 성물 및 상본들도 가져왔습니다. 성유는 침엽수인 발삼나무 열매에서 짜낸 기름인데, 주교만이 이 기름을 축성할 수 있었고, 1년 밖에는 쓸 수 없었기 때문에 1796년부터 1800년까지 매년 사행 때마다 반드시 가져왔습니다. 《사학징의》 속 유관검의 공초에 나옵니다.

 

신유박해가 있고 10년 뒤인 1811년에는 이여진 요한이 10년만에 처음으로 북경에 편지를 들고 갑니다. 북경에 도착한 그는 중국 당국에 의해 폐쇄된 성당 앞에서 망연자실하였습니다. 실로 주교와 접촉할 길이 막막하였습니다. 이때 문득 그는 담배가 선교사를 통해 중국에 수입되었다는 사실과, 초기 천주교인들이 담배장사를 했다는 사실을 떠올려, 담배 가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부적이 붙어있지 않는 담배 가게 하나를 발견하고, 마침내 그 집 주인이 천주교 신자임을 확인하였습니다. 그에게 자신의 방문 목적을 알리며 주교에게 데려다 줄 것을 부탁해서, 극적으로 조선 교회와 연락이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전달한 편지가 바로 그 유명한 신미년 백서입니다

 

이렇듯 위험을 무릅쓰고 북경과 한양 사이에 편지가 극적으로 오갔고, 성유와 성물 및 상본까지 오갔습니다. 이 물건들은 수백 명의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숨겨 국경 검문소를 지나올 때 그들의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뛰었겠지요. 그 성유로 세례를 받았고, 상본 한 장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주교의 편지를 들고 그들은 끝없는 절망의 세월 속에서도 목자 잃은 양 떼의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김유산은 결국 붙잡혀 신유박해 때 참혹하게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2026년 3월 8일(가해) 사순 제3주일 서울주보 7면,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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