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39: 103위 한국 순교 성인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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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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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 (39) 103위 한국 순교 성인 탄생
감격 속 103위 성인 시성…한국교회 순교 영성 세계에 증거하다
“한국 순교자 103위 성인 반열에… 한국의 순교자 103位를 聖人 명부에 올리노니, 世界 敎會가 공경키를 명하노라.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와 바오로 정하상 외 101명의 한국 순교자를 성인으로 판정하고 결정하여 성인들 명부에 올리노라. - 1984년 5월 6일 여의도에서 거행된 한국 순교 복자 시성식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을 선언함으로써 한국 순교 복자 103인은 드디어 성인으로 공식 선포됐다. 103위의 복자들은 자신들이 피 흘렸던 이 땅의 절두산과 새남터가 바라다보이는 여의도에서 성인으로 선포돼 죽음으로 지킨 신앙의 위대함을 온 세계 교회에 증거했다.”(가톨릭신문 1984년 5월 6일자 1면)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방한을 맞아 발행한 호외 5월 6일자 1면. 가톨릭신문 자료사진103위 성인의 탄생
한국교회는 1984년 ‘이 땅에 빛을’이라는 주제로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펼쳤습니다.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한국교회. 우리 신앙 선조들은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목숨을 바쳐 오롯이 신앙을 지켜냄으로써 이 땅에 하느님의 빛을 밝혔습니다. 그로부터 200년, 선교 3세기를 맞이하며 한국교회는 더욱 성숙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갖출 것을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그 도약의 시점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았습니다. 더욱이 교황은 5월 6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100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거행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대회에서 한국 순교자 103위를 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순교자의 후손인 한국교회 신자들은 이 역사적인 성인의 탄생을 환호하며 참된 하느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다짐했습니다.
이날 시성식에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비롯해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 등 국내외 성직자와 수도자, 신학생, 성인의 후예, 장애인, 교포 신자 등 100여만 명이 운집해 순교 선열들의 신앙을 본받아 진리의 증거자가 될 것을 약속했습니다.
김 추기경이 시성 청원과 함께 103위 시성 대상자들의 약전을 낭독한 후, “교황 성하의 이름으로 하느님과 성인의 도우심을 청한다”고 권고하자 모든 참석자는 무릎을 꿇고 ‘모든 성인의 호칭 기도’를 바쳤습니다.
이어 교황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베드로, 사도 바오로, 또 내게 맡겨진 권한으로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와 바오로 정하상 외 101명의 한국 순교자들을 성인으로 판정하고 결정하여 성인들 명부에 올리는 바이며, 세계교회 안에서 이분들을 다른 성인들과 함께 정성되이 공경하기를 명하는 바입니다”라며 시성을 선언했습니다.
-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103위 시성식에서 신자들이 성인 탄생을 환호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성인 탄생의 의미
이날 거행된 103위 순교 성인 시성식은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와 보편교회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자생적 신앙 공동체에 대한 세계교회의 높은 평가입니다. 대개 시성식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이러한 전례를 깨고 지역 교회인 한국 땅에서 시성식이 거행된 것은, 선교사에게 의존하지 않고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진리 탐구로 출발해 피로써 신앙을 증거한 한국 고유의 순교 영성을 보편교회가 높이 평가했음을 의미합니다.
둘째, 기적 심사 관면을 통해 성숙한 교회로 인정받았다는 점입니다. 시복시성 절차에서 가장 엄격하게 진행되는 과정이 기적 심사입니다. 시성 추진 대상자가 순교자인 경우에는 기적 심사가 면제될 수 있지만, 이 역시도 매우 엄격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한국의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들이 순교한 것이 확실함에 따라 기적 심사를 관면해 주었습니다. 이는 한국교회의 신앙적 성숙도를 인정한 파격적인 조치였습니다.
셋째, 미래 지향적인 신앙 쇄신의 촉구입니다. 성인의 탄생은 과거의 영광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현대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신앙 유산을 이어받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영적 쇄신의 출발점입니다. 즉, 103위 성인 탄생은 한국교회가 복음화의 새로운 세기를 열어나가는 거대한 영적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가톨릭신문은 1984년 5월 6일자 사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시성식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시성식의 열매는 교회와 더불어 모든 그리스도의 백성이 가난의 영성에 철저하고, 복음을 사는 가운데, 사회의 한복판에서 민중들과 함께 슬픔, 고뇌, 실의, 절망, 좌절을 같이하며 그들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삶을 더불어 살아감으로써 맺어질 것이다. ... 시성식의 감동적 감정에 사로잡혀 외부적 신심에만 몰두할 때 시성식의 열매와 아울러 그 역사적 의미는 자연히 잃고 말 것이다. 우리의 시대가 병든 시대일수록 103위 성인의 존재는 빛날 것이고 암흑의 사회에 희망의 빛을 비추는 그 빛을 우리는 볼 것이다.”(가톨릭신문 1984년 5월 6일자 4면)
-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103위 시성식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식에서 성인 선포를 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계속되는 시복시성 노력
103위 순교 성인의 탄생은 2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에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계기로 한국교회는 자신들이 순교자의 후손임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됐습니다.
103위 순교자는 1839년(기해박해)부터 1846년(병오박해) 사이에 순교한 79위와 1866년(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24위입니다. 이분들은 각각 1925년과 1968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되었고, 1984년 드디어 여의도 광장에서 성인으로 선포됐습니다.
하지만 103위 순교자에 앞서 신앙을 증거했던 초창기 선조들에 대한 시복시성이 당시 이뤄지지 못한 점은 과제로 남았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는 한국 최초의 박해인 신해박해(1791년)와 첫 대규모 박해인 신유박해(1801년) 등을 포함해 1888년까지 순교한 124위에 대한 시복을 추진했습니다. 마침내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광화문 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식이 거행되었으며, 현재 이분들의 시성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한국인 사제인 최양업 신부(토마스, 1821~1861)는 순교하지 않은, ‘땀의 순교자’로 불립니다. 최양업 신부는 이미 증거자로서 영웅적 덕행의 삶이 인정된 ‘가경자’로 선포됐고, 한국교회는 최양업 신부의 전구를 통한 기적이 인정되고 시복이 결정되도록 하기 위해 많은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근현대 신앙의 증인 81위, 베네딕도회 덕원 순교자 38위에 대한 시복 절차가 추진 중입니다. 아울러 초대 조선대목구장을 지낸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소(蘇) 주교(1792~1835)와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시대의 양심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스테파노, 1922~2009), 한국 순교복자 수도 가족을 창립한 방유룡 신부(레오, 1900~1986)에 대한 시복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26년 3월 1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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