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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극ㅣ영화ㅣ예술
K톨릭 - 뮤지컬: 소란한 시대에 남겨진 말씀

17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15:16

[K톨릭: 뮤지컬] 소란한 시대에 남겨진 말씀


뮤지컬 〈소란스러운 나의 서림에서〉, 연출 박한근 | 작·작사 김하진 | 작곡·음악감독 문혜성

 

 

뮤지컬 〈소란스러운 나의 서림에서〉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두 인물이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한 인물은 일제 강점기에 이름을 드러낼 수 없는 작가로 살아가며, 연애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자유를 기록합니다. 다른 한 인물은 1980년대, 거리의 폭력과 상실을 겪은 뒤 침묵 속에 머물러 있는 청년입니다. 이들은 직접 만나지 못합니다. 다만 한 권의 책 위에 남겨진 문장과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통해 서로의 오늘과 내일을 건너갑니다.

 

이 작품에서 음악은 신스팝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시대극에서 기대되는 어쿠스틱 사운드 대신, 전자음과 반복적인 리듬을 선택한 것은 단순한 장르적 실험이 아니었습니다. 신스팝의 소리는 특정 시대에 고정되지 않고, 과거와 미래의 경계를 넘나드는 성격이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이 신앙의 시간성과 깊이 맞닿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반복되는 비트와 선율은, 인물들이 던지는 질문들이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음을 음악적으로 드러냅니다. 그것은 마치 묵주기도처럼, 같은 기도를 되뇌며 하루를 건너가는 리듬과도 닮아 있습니다.

 

작품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인물들은 ‘결말’을 알게 됩니다. 실패로 기록된 역사, 사라진 이름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그럼에도 이야기는 묻습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옳았는가. 실패가 예정되어 있다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더 지혜로운 선택이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저는 신앙이 언제나 요구해 온 용기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성공을 보장받아서가 아니라, 옳다고 믿기에 끝내 걸어가는 용기입니다.

 

가톨릭 신앙은 언제나 부활을 말하지만, 동시에 성토요일의 침묵을 견디는 신앙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밤을 지나야만 부활의 아침에 이를 수 있습니다. 〈소란스러운 나의 서림에서〉 속 인물들이 끝내 서로를 완전히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말과 선택이 다음 시간을 향해 남겨진다는 사실은 바로 이 성토요일의 신앙을 떠올리게 합니다.

 

소란스러운 시대에도, 아니 오히려 소란스러운 시대이기에 우리는 다시 책을 펼치고 문장을 남깁니다. 오늘의 기도와 오늘의 선택이 누군가의 내일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그것이 이 작품이 제게 건넨 신앙의 초대였고, 지금 우리가 함께 나누고 싶은 한국 교회 신앙의 한 모습이라 믿습니다.

 

[2026년 2월 22일(가해) 사순 제1주일 서울주보 5면, 김한솔 데레사(뮤지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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