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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교부들의 삶과 신앙: 이성으로 신앙을 변호한 철학자 아테네의 아테나고라스가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

98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2-08

[교부들의 삶과 신앙] 이성으로 신앙을 변호한 철학자 “아테네의 아테나고라스”가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

 

 

지난 시간 우리는 아테네의 아리스티데스가 황제에게 보낸 『변증서』 안에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가치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며 이웃에게 선함을 베푸는 존재가 되는 것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설명하였습니다. 오늘은 같은 아테네 출신으로, 당대 황제에게 그리스도교를 변론하기 위해 힘썼던 평신도 철학자 출신의 교부 아테나고라스를 함께 만나고자 합니다.

 

2세기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위험한 낙인이었습니다. 국가의 신들을 섬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신론자라 불렸고, 비밀 집회를 한다는 미명 아래 음란한 의식, 영아 살해, 심지어 식인 풍습까지 뒤집어쓴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박해는 단지 칼과 불의 문제가 아니라, 왜곡된 여론과 몰이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한 철학자가 황제에게 공개편지를 보냅니다. “우리를 공정하게 심문해 주십시오.” 그가 바로 아테네의 아테나고라스입니다.

 

아테나고라스는 본래 아테네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지식인이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는 그리스도교를 비판하려다가 복음서와 사도들의 글을 접하며 신앙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이후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서 교리 교육을 맡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사제도, 주교도 아니었습니다. 평신도 철학자가 제국의 최고 권력자 앞에서 신앙을 변호한 것입니다. 아테나고라스는 설교로 교리를 전하기보다, 이성적 설득으로 오해를 풀고자 하였습니다. 초기 변증가들 가운데서도 그는 특히 그리스도인의 삶과 윤리를 근거로 신앙의 진실성을 밝히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의 대표작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변명』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그의 아들 콤모두스에게 보내는 공개 탄원서입니다. 그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씌워진 세 가지 혐의를 조목조목 반박합니다. 먼저 무신론이라는 비난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신을 부정하는 이들이 아니라 참 하느님을 이성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임을 역설합니다. 또한 음란과 근친상간의 혐의에 대해서는, 결혼의 불가해소성과 정결한 삶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의 엄격한 도덕관을 소개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아 살해와 식인 풍습의 비난에 대해, 생명을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윤리가 그리스도인의 분명한 표지임을 강조합니다. 이 모든 논증은 감정적 항변이 아니라, 법정의 변론처럼 냉철하고 논리적입니다. 아테나고라스는 신앙이 맹목이 아니라, 이성과 양심 앞에서 설득될 수 있는 진리임을 보여 준 교부였습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하여』에서 아테나고라스는 당대 철학자들의 조롱 섞인 질문에 답합니다. “죽음과 부패로 인해 해체되는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동일한 육신의 부활을 말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그는 말합니다.

 

“모든 존재는 각자의 본성에 상응하는 지속을 가진다. 그러므로 완전히 썩지 않으며 본래부터 불멸인 존재들의 지속은, 더 낮은 차원의 존재들과 같은 방식일 수 없다. 더 높은 실재를 더 낮은 것과 같은 차원에 놓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에게서 처음부터 균일하고 변함없는 지속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높은 존재들은 창조주의 뜻에 따라 처음부터 불멸의 지속을 누리지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영혼의 차원에서는 변함없는 지속을 지니되, 몸의 차원에서는 변화를 거쳐서야 불멸성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곧 부활의 의미와 목적이다”(『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하여』 16).

 

인간은 영혼만의 존재가 아니라 몸과 영혼의 통일체이기에, 인간의 최종 목적 또한 두 차원이 다시 결합된 상태 안에서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썩어 없어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향한 과정의 하나일 뿐입니다. 부활로 다시 시작되는 삶은 이전의 삶과 단절된 다른 삶이 아니라, 여전히 같은 하나의 삶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영혼은 그것을 담을 수 있는 지극히 고유한 육체성과 만날때 그 의미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 존재의 최종 목적은 존재의 영원성을 품고 있는 인간의 영혼이 깃들어야 할 공간이며, 하느님께서 직접 빚어 만들어 주신 육신의 부활을 통해서 완전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아테나고라스에게 그리스도교의 부활 신앙은 비이성적 신화가 아니라, 인간 존엄과 하느님의 정의에 기초한 합리적 신앙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비슷한 오해를 마주합니다. “종교는 비이성적이며, 신앙은 사적인 위안일 뿐이다.” 그러나 2세기 아테네의 철학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신앙은 삶으로 증명되고, 이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칼이 아니라 논증으로, 폭력이 아니라 설득으로, 그는 교회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신앙을 세상 앞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아테나고라스의 유산은 신앙을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세상과 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적절한 언어를 찾으려는 우리의 노력 안에 살아 있습니다.

 

[2026년 2월 8일(가해) 연중 제5주일 가톨릭마산 4-5면, 이승언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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