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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6년 2월 5일 (목)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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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세계의 성모 성지: 영국 에일즈포드(성모 발현 성지) - 스카풀라의 카르멜산 성모

249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2-04

[세계의 성모 성지] 영국 에일즈포드(성모 발현 성지)


스카풀라의 카르멜산 성모

 

 

 

-  에일즈포드 수도원의 전경, 성모 경당(중앙의 검은 아치 부분)과 성 요셉 경당(좌측), 합창단 경당(우측)

 

스카풀라(Scapula)는 7세기 초 베네딕토회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로, 수도사들이 수도복 위에 어깨에서 앞뒤로 길게 늘어뜨려 입는 긴 천을 가리켰다. 이후 이 ‘수도자용 스카풀라’는 널리 퍼져 현재 많은 가톨릭 수도회의 수도사와 수녀들이 착용하는 수도복의 일부가 되었다.

 

카르멜산 수도회의 수녀가 입고 있는 ‘수도자용 스카폴라’

 

 

1) 성모님의 발현

 

1150년부터 팔레스티나의 카르멜산에는 예언자 엘리야를 따르는 은수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카르멜산은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 450명과 맞서 하느님의 현존과 능력을 드러냈던 성스러운 산으로 열왕기상 18장에 그 이야기가 전해진다. 카르멜산 은수자들은 엘리야의 동굴 근처에 살면서 자신들을 ‘엘리야의 후예’, 그리고 하느님께 헌신한 성모님의 봉사자로 여기며 은수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1187년 이슬람의 술탄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십자군이 철수하면서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전역의 가톨릭 성지가 이슬람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 카르멜산의 은수자들은 이슬람 세력의 끊임없는 박해를 받았으며, 추방되거나 살해당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카르멜산 공동체는 생존을 위해 카르멜산을 버리고 안전한 서유럽의 여러 나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그중 한 무리가 영국 귀족의 후원을 받아 영국 에일즈포드로 가서 대략 1242년경에 수도원을 세우고 서유럽의 전통을 받아들여 카르멜산 수도회가 되었다. 그 당시 에일즈포드 카르멜산 수도원의 첫 번째 수도원장이었던 시몬 스톡(1165~1265년)은 수도회가 서유럽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여러 대내외적 어려움에 봉착하자 성모님께 의지하며 “당신의 수도회를 보호해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전승에 의하면, 이런 기도에 응답하여 1251년 7월 18일, ‘카르멜산의 성모님’으로 불리는 성모님이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채 스카풀라를 들고 시몬 스톡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수도회를 위해 이 스카풀라를 받아라. 이는 내가 너와 카르멜산의 자녀들을 위해 주는 특별한 은총의 징표이다. 누구든지 이 스카풀라를 죽는 순간까지 착용하는 사람은 영원한 불의 고통을 겪지 않을 특권을 누릴 것이며, 죽은 후 첫 번째 토요일에 내 도움을 받아 하늘나라에 이를 것이다. 이는 구원의 표시이며,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방패가 될 뿐 아니라, 평화와 보호를 약속해 줄 것이다.”

 

 

- 시몬 스톡에게 스카풀라를 주시는 성모님(카르멜산회 수도사를 위한 경당 제단 벽) (좌), 일반 신자들이 착용하는 ‘신심용 스카폴라’(우)

 

 

이후 카르멜산회의 수도사들이 갈색 스카풀라를 착용하며 성모 신심을 실천하게 되자 에일즈포드에서의 안정적인 정착이 이루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소식을 알게 된 일반 신자들도 성모님의 보호와 은총에 직접 참여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이에 14~15세기 무렵부터 카르멜산 수도회의 신자 회원(수도회의 제3회원이나 신심 회원)을 위해 스카풀라의 원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작고 간소한 형태의 작은 스카풀라가 만들어졌다. 이 작은 ‘신심용 스카풀라’는 두 개의 갈색 천 조각을 두 개의 끈으로 연결하여 몸의 앞뒤, 가슴과 등을 덮도록 제작되었다. 이후 일반 가톨릭 신자들이 ‘신심용 스카풀라’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2) 에일즈포드 성모 발현 성지

 

1534년, 영국의 헨리 8세 국왕은 캐서린 왕비와의 결혼 무효를 승인받지 못하자 가톨릭과 결별하고, 성공회를 영국의 국교로 선포하였다. 이때부터 영국의 가톨릭교회는 박해를 받았으며 결국 1538년, 에일즈포드 카르멜산 수도회가 해산되면서 수도원은 폐쇄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829년 영국에서 가톨릭 해방법이 통과되고, 1850년 교황 비오 9세가 영국 내에 정식 가톨릭 교구 제도 복원을 선포하자 300년 만에 영국 가톨릭교회는 다시 회복되었으며, 카르멜산 수도회도 영국 에일즈포드 수도원의 복원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 초부터 영국의 한 귀족 가문이 수도원 부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1930년경 화재로 건물 등이 파괴되면서 유지 관리가 어려워지자 400년 가까이 사유지였던 수도원 부지가 1949년 저렴하게 매물로 나왔다. 카르멜산 수도회는 즉시 부지를 매입했으며, 카르멜산 수사들은 에일즈포드로 돌아와 1958년부터 본격적으로 수도원 복원에 착수하였다. 수도회는 부지를 정리하고 새로운 경당을 세워 수도원을 재건한 뒤 1965년에 다시 봉헌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성모 경당과 성모상

 

 

수도원은 외떨어진 마을의 외곽에 위치하여 부지가 매우 넓다. 이 넓은 부지 안에는 잘 정돈된 정원과 함께 소박하고 단순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성지는 크게 미사와 기도를 위한 경당이 집중 배치된 공간, 순례자 숙소와 회관, 식당이 있는 순례자들을 위한 공간, 토론과 세미나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분된다.

 

 

- 유물 경당의 제단(좌) 독특한 모양의 성 시몬 스톡의 유물함(우)

 

 

성지의 중앙부에는 성모 경당이 위치하며 다른 모든 경당은 이 성모 경당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성모 경당의 바로 옆에는 성 안나 경당이 있으며, 복도를 따라 성 요셉 경당, 유해 경당, 합창단 경당이 연결되어 있다. 성모 경당 제대에는 두 손을 들고 계신 성모상이 모셔져 있으며, 전면부가 개방되어 야외 미사의 제대로도 활용된다.

 

- 성모 발현지에 위치한 발현 기념비

 

 

유해 경당의 제대에는 성 스몬 스톡의 두개골이 보관된 유물함이 있으며, 좌우에는 순교자 경당과 카르멜산 수도사를 위한 경당이 배치되어 있다. 성 요셉 경당의 뒤쪽 정원에는 묵주기도의 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묵주기도를 마치는 지점에 시몬 스톡에게 스카풀라를 주는 성모님의 발현 기념비가 있다. 바로 이곳이 성모님이 발현하신 장소로, 매년 7월 16일 스카풀라의 성모 축일에는 이곳에서 특별 미사와 스카풀라 착용 예식이 거행된다.

 

한편 1322년 성모님이 교황 요한 22세의 꿈에서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의 카르멜산 수도회 회원들과 스카풀라를 착용하는 이들이 죄로 인해 연옥에 머무르게 되더라도 내가 그들을 토요일에 구해내어 하늘로 데려가겠다.”

 

이 내용은 교황이 교서 형태로 반포하였으며, 해당 문서는 ‘토요 특전’(Sabbatum Privilege)이라고 전해진다. ‘토요 특전’이라는 이름은 토요일(즉 안식일, Sabbatum)에 성모님이 연옥 영혼을 구원하신다는 전승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전통을 통해 ‘신심용 스카풀라’를 착용하는 신자들에게 특별한 구원이 약속된다는 신앙이 형성되었고, 스카풀라가 널리 확산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황 비오 12세(재위 1939~1958년)와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년)는 ‘신심용 스카풀라’를 착용하는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다.

 

“스카풀라는 미신적 부적이 아니라, 성모님의 보호와 중재를 신뢰하며, 카르멜산회 정신(기도, 정결, 봉헌)의 삶을 살겠다는 신앙의 표징이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1월호, 최하경 대건안드레아(서울대교구 도곡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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