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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2026년 제34차 세계 병자의 날 교황 담화문

136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1-28

레오 14세 교황 성하의 

제34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

(2026년 2월 11일)


사마리아인의 연민: 타인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사랑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제34차 세계 병자의 날을 2026년 2월 11일에 페루 치클라요에서 장엄하게 기념할 것입니다. 저는 이날을 맞아, 착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성찰하도록 다시 한번 권유하고자 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사랑의 아름다움과 연민의 사회적 차원을 재발견하는 데에 여전히 의미 있고 필수적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성찰을 통하여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이와 고통받는 모든 이, 특히 병자들을 향하여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감동적인 이야기(루카 10,25-37 참조)를 우리는 모두 익히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지 묻는 율법 교사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응답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던 어떤 사람이 강도들에게 습격당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한 사제와 레위인은 그를 지나쳤지만,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가엾이 여겨 상처를 싸매 주고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저의 선임자이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쓰신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 비추어 이 성경 구절을 성찰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회칙에 따르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 대한 연민과 자비는 개인의 노력으로만 축소되지 않고 관계들을 통하여 실현됩니다. 곧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들과 맺는 관계, 그들을 돌보는 이들과 맺는 관계,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과 맺는 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 만남의 선물: 친밀함과 존재를 내어 주는 기쁨

 

우리는 빠르고 즉각적이며 서두르는 문화 안에, 곧 ‘버림’과 무관심의 문화 안에 깊이 잠겨 살아갑니다. 이러한 문화는 우리가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 이웃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필요와 고통을 인식할 수 없도록 방해합니다. 그 비유에서 사마리아인은 상처 입은 사람을 보고 ‘지나가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주의 깊게, 바로 예수님의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마리아인은 인간적이고 연민 어린 친밀함으로 행동하게 된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멈추어 서고 다친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몸소 돌보아 줍니다. 심지어 그는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다친 사람을 위하여 씁니다. …… (무엇보다도) 자기 시간을 다친 사람에게 준 것입니다.”1)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저 누가 우리 이웃인지를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되어 주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2) 이에 관하여 우리는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다음과 같은 확신에 이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누가 이웃인지가 아니라, 누구에게 이웃이 되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자 하셨습니다. 실제로, 자유 의지로 다른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지는 아무도 참된 이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웃이 된 사람은 바로 자비를 베푼 사람이었습니다.3)

 

사랑은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다른 이를 만나러 나가는 것입니다. 이웃이 되는 것은 물리적, 사회적 근접성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로 한 결심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상처 입은 인류에게 가까이 다가가신 참으로 거룩한 사마리아인이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고통받는 이들의 이웃이 됩니다. 이는 그저 자선 행위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인격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표징입니다. 이는 단순히 필요의 충족을 넘어, 우리 자신이 선물의 일부가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형태의 애덕은 우리를 위하여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에서 반드시 자양분을 얻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한센병 환자들과의 만남을 언급하며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주님께서 몸소 저를 그들 가운데로 이끌어 주셨습니다.”5) 프란치스코 성인은 한센병 환자들을 통하여 사랑의 감미로운 기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만남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에서 흘러나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가져다주신 착한 사마리아인이심을 알아봅니다. 또한 우리가 상처 입은 형제자매에게 손을 내밀 때마다 그분을 현존하시게 합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상처를 낫게 해 주신 분보다 더 참된 이웃은 없으니, 그분을 주님으로 또 이웃으로 사랑합시다. 머리보다 자기 지체들과 더 가까운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이들 또한 사랑합시다. 몸의 일치를 위하여 다른 이의 가난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을 사랑합시다.”6) 친밀함과 존재, 그리고 주고받는 사랑을 통하여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러하였듯 주님을 만난 감미로움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2. 공동의 사명인 병자 돌봄

 

이어서 루카 성인은 사마리아인이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연민이란 우리가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이끄는 깊은 감정을 의미합니다. 이는 내면에서 솟아나 타인의 고통에 헌신적으로 응답하도록 이끄는 감정입니다. 이 비유에서 연민은 실천적 사랑의 본질적인 특징입니다. 연민은 이론적이지도 그저 감성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사마리아인은 가까이 다가가 상처를 치료해 주었고, 책임지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그가 자기 혼자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다친 사람을 보살펴 줄 여관 주인을 찾았습니다. 우리도 작은 개개인의 총합보다 강한 ‘우리’ 안으로 초대하고 그 안에서 함께 만나라고 부름받습니다.”7) 저는 페루에서 선교사와 주교로 활동하며, 사마리아인과 여관 주인의 마음으로 자비와 연민을 보여 주는 많은 이를 직접 보았습니다. 가족, 이웃, 의료 종사자, 보건 사목 관련자 그리고 다른 많은 이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가던 길을 멈추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를 보살피고 지원하며 동반합니다. 가진 것을 내어 줌으로써 그들은 연민에 사회적 차원을 부여합니다. 관계망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경험은 단순한 개인적 헌신을 넘어섭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교황 권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Dilexi Te)에서 병자 돌봄이 교회의 사명에서 “중요한 일부”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교회적 행위”(49항)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측면이 건강한 사회의 척도임을 설명하고자 치프리아노 성인의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끔찍하고 치명적으로 보이는 이 흑사병의 유행은 개개인의 의로움을 점검하고 인간의 마음을 시험합니다! 건강한 이들이 아픈 이들을 돕는지, 친척들이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주인들이 감염된 종들에게 연민을 보이는지, 의사들이 도움을 청하는 병자들을 버려두지 않는지, 이 흑사병이 알려 주는 것입니다.”8)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은 우리가 고유한 소명에 따라 모든 이의 고통에 주님의 연민을 전하는 한 몸의 지체임을 참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9) 더욱이 우리의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고통은 낯선 이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몸,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바로 그 몸을 이루는 지체들의 고통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의 선을 위하여 그 몸을 돌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고통은 그리스도 자신의 고통과 동일시되고,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봉헌될 때 구세주께서 모든 이의 일치를 위하여 바치신 기도의 성취를 앞당깁니다.10)

 

 

3. 언제나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 이끌려 우리 자신과 이웃을 만나기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루카 10,27). 이 이중의 계명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수위성과 그것이 인간 사랑과 관계의 모든 차원에 미치는 직접적인 결과를 인식합니다. “요한 사도가 증언한 대로 이웃 사랑은 하느님을 향한 우리 사랑의 진정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2.16).”11) 이 사랑은 그 대상이 하느님, 이웃, 자기 자신으로 각각 다르고 서로 구별되는 사랑으로 이해될 수 있더라도, 그 사랑을 근본적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12) 하느님 사랑의 수위성은, 인간의 행동이 자신의 이익이나 보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례적인 규범을 초월하여 참된 예배 안에서 표현되는 사랑의 드러남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웃을 섬기는 것은 행동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13)

 

이러한 관점은 우리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의 참된 의미도 이해하게 해 줍니다. 이는 우리의 자존감이나 존엄성의 기반을 성공, 경력, 지위, 집안 배경14)과 같은 세속적 고정관념에 두려는 온갖 시도를 버리고,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우리의 고유한 자리를 되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상호 관계 안에서 완전해집니다. 인간이 참다운 상호 관계를 이루며 살아갈수록 인간의 정체성은 더욱 완전해집니다.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그리고 하느님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1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인류가 입은 상처의 참된 치료제는 하느님 사랑에 뿌리내린 형제애에 기반한 삶의 방식입니다.”16) 환대와 용기와 헌신과 지지의 정신 그리고 하느님과의 일치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둔 이 형제애의 정신, 곧 ‘사마리아인’의 정신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에 언제나 반영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거룩한 사랑으로 불타오를 때, 우리는 고통받는 모든 이, 특히 아픈 이들과 노인들과 시련을 겪는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내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 중에서 연민과 경청과 위로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를 도와주시기를 청하며 병자의 치유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기도드립시다. 질병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하여 가정에서 바쳐 온 이 오랜 기도로 성모님의 전구를 청합시다.

 

우리의 기쁨이신 성모님, 

저를 떠나지 마시고,

저를 외면하지 마소서.

어디에서나 저와 함께하시고

저를 홀로 버려두지 마소서.

성모님께서는 참어머니이시며

언제나 저를 지켜 주시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저에게

복을 내리시도록 빌어 주소서.

 

모든 병자와 그 가족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의료 종사자와 보건 사목 관련자들, 특히 세계 병자의 날에 참여하는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저의 교황 강복을 보냅니다.

 

바티칸에서

2026년 1월 13일


레오 14세 교황

 

1) 프란치스코,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 2020.10.3.,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1(제1판), 63항.

2) 「모든 형제들」, 80-82항 참조.

3) 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Sermones), 171, 2, 179/A, 7 참조.

4) 베네딕토 16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2005.12.2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6(제1판), 34항;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구원에 이르는 고통」(Salvifici Doloris), 1984.2.1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7(제3판), 28항 참조.

5)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유언」(The Testament), 2, 『프란치스코 전집』(Fonti Francescane), 110.

6) 성 암브로시오, 『루카 복음 해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VII, 84.

7) 「모든 형제들」, 78항.

8) 성 치프리아노, 「죽음에 관하여」(De Mortalitate), 16.

9) 「구원에 이르는 고통」, 24항 참조.

10) 「구원에 이르는 고통」, 31항 참조.

11) 레오 14세, 교황 권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Dilexi Te), 2025.10.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6(제1판), 26항.

12)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26항 참조.

13) 「모든 형제들」, 79항 참조.

14) 「모든 형제들」, 101항 참조.

15) 베네딕토 16세, 회칙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 2009.6.29.,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9(제1판), 53항.

16) 프란치스코, 제33차 메주고리예 국제 젊은이 축제 참가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2022.7.16., 메주고리예, 2022.8.1-6.

 

<원문: Message of the Holy Father for the 34th World Day of the Sick, “The compassion of the Samaritan: loving by bearing another’s pain”, 2026.1.13., 이탈리아어도 참조>

 

영어: https://www.vatican.va/content/leo-xiv/en/messages/sick/documents/20260113-messaggio-giornata-malato.html

 

이탈리아어: https://www.vatican.va/content/leo-xiv/it/messages/sick/documents/20260113-messaggio-giornata-malat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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