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교자] 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 느리지만 신중하게 더디지만 조화롭게, 창립 선조 권철신 암브로시오
-
2487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1-18
-
[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 느리지만 신중하게 더디지만 조화롭게
창립 선조 권철신 암브로시오(1736~1801)
예비신자 교리를 시작할 무렵이면 기대감과 동시에 긴장감이 다릅니다. 소위 ‘가방끈이 긴’ 예비신자가 던지는 질문들이 살아있고 또 날카롭기 때문입니다. 준비를 잘하고 성심성의껏 인도하지만,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감사하게도 교리반의 ‘요주의 인물’들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어느 순간 믿음의 사람이 되어 기도하고 봉사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믿음을 심어주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일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부활의 미명이 밝아오는 아침, 제자단의 첫째와 막내가 빈 무덤을 향해 달려갑니다. 요한은 먼저 나아갔으나, 나이가 많았던 베드로는 한참 뒤처지고 맙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자리를 향해 달려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는 저마다 믿음에 이르는 속도가 같지 않음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이벽의 가르침을 듣고 즉시 따랐던 동생 권일신과는 달리, 양근 권씨 가문의 맏형이었던 권철신에게는 신앙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성호학파를 이어갈 총아로 평가받으며, 출세에는 본디 관심조차 두지 않고 오로지 진리 탐구를 위해 살기로 결심한 권철신은 매사에 신중했습니다. 동생이 찬찬히 살펴보라고 권한 천주학 서적들은 성리학적 세계관의 지붕 틈 사이로 진리의 하늘을 어렴풋이 보여주었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고 살피고 연구하고 사색합니다.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천주학을 연구했고, 그 실천적 수행을 위해 1779년에는 천진암에서 강학을 열고 주도했던 그였지만, 그의 학문적 탐구와 성취가 곧바로 믿음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1784년 9월 한양 수표교 근처 이벽의 집에서 이루어진 조선 최초의 세례식에 동생 권일신만 자리하였고, 형은 한 달이 지난 뒤에야 세례를 받았습니다. 동생은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형은 발부터 차근차근 몸을 담습니다.
1791년 신해박해 때 달릴 길을 달린 동생 권일신을 순교의 월계관도 먼저 받게 됩니다. 10년이 지난 1801년 신유박해에 이르러 형 권철신은 다섯 번의 문초와 형벌 끝에 순교의 영광을 받게 됩니다. 동생이 서둘러 달려간 자리를, 형은 우직하게 지켜와 어느덧 교회공동체의 기둥이자 스승이 되어 있었습니다.
권철신이 선택한 세례명은 서방교회 4대 교부 중인 한 분인 ‘암브로시오’ 성인이었습니다. 주보성인을 닮은 그의 내면에서는 모든 것을 건 달리기, 곧 지성과 신앙의 달리기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지녔던 민첩한 지성은 결승선에 이르기 위해 걸음이 느린 신앙을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신앙 없는 지성만으로는 결코 목적지에 들어갈 수 없음을 ‘알기 위해 믿고, 믿기 위해 아는’ 더디지만 조화로운 길만이 승리의 월계관을 받는 길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느님의 종 권철신 암브로시오
때로는 믿음이 더디고,
때로는 배움이 더딘 저희를 도와주시어
눈먼 신앙에는 이성의 빛을,
길을 잃은 지성에는 믿음의 빛을 보여주소서.
[2026년 1월 18일(가해) 연중 제2주일(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수원주보 4면, 백정현 요셉 신부(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총무)]
-
추천 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