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음악 이야기: 성체 찬미가 연재 (1) 왜 우리는 800년 전의 노래를 부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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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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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 이야기 II] 성체 찬미가 연재 ① 왜 우리는 800년 전의 노래를 부르는가?
미사 중에, 혹은 장엄한 성체 강복의 순간에 우리는 낯설지만 오래된 노래를 듣습니다. 선율은 단순하고 가사는 어렵게 느껴지지만, 이 노래들은 수백 년, 길게는 천 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왜 교회는 이렇게 오래된 노래를 오늘도 부를까요?
이 노래들은 단순한 옛 음악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의 목소리로 고백하게 만든 신앙의 언어입니다.
성체 찬미가의 이야기는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263년, 이탈리아 볼세나(Bolsena)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한 사제 앞에서 성체가 피를 흘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황 우르바노 4세는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제정합니다. 그리고 이 축일을 위한 전례문과 찬미가 작성을 당대 최고의 신학자,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에게 맡깁니다.
논리와 이성의 신학자로 알려진 성 토마스는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놀랍도록 아름다운 시와 노래를 남깁니다. 그는 신학서를 쓰듯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노래로 고백했습니다.
성체 찬미가의 중심에는 ‘실제 존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성체는 예수님을 기억하기 위한 상징이 아니라,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현존하신다는 신앙입니다.
성 토마스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보고, 맛보고, 만져보아도 알 길 없고 다만 들음으로써 믿나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평범한 빵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귀만이 그 신비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이 믿음은 800년 전 중세 신자들의 것이면서 동시에 오늘 우리의 신앙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오늘도 이 오래된 노래를 부를까요?
첫째, 신앙은 단절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신자들과 같은 믿음으로 같은 주님을 만납니다.
둘째, 찬미가는 신학의 요약이기 때문입니다. 긴 설명보다 한 소절의 노래가 성체의 신비를 더 깊이 마음에 새겨줍니다.
셋째, 이 노래들은 예술로 승화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그레고리오 성가에서부터 위대한 작곡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성체 찬미가는 인류 예술사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남긴 다섯 곡의 대표적인 성체 찬미가와 시대를 넘어 불려 온 성체 노래들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는 오래된 악보를 다시 꺼내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을 새롭게 발견하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2026년 1월 18일(가해) 연중 제2주일(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대전주보 7면, 신혜순 데레사(연주학박사,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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