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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성경] 성경 다시 보기: 믿는다는 것은 은총입니다

914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1-11

[성경 다시 보기] 믿는다는 것은 은총입니다

 

 

1. 얼마 전에 아는 지인이 어느 성당에서 세례를 받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당일 그 세례식에 참여하러 갔습니다. 그분은 연세가 80 중반이고, 옛날에는 수의사로 활동하셨고 지금도 가정형편이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자녀들도 다 잘 되어있어, 뭐 별로 아쉬운 것이 없는데, 그 연세에 새삼스럽게 신앙을 갖고자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어쨌든 그분 친구분의 권면이 한몫하였고, 그분께 시집온 부인이 예전에는 신자였는데, 시가가 불교 집안이라 냉담을 했답니다. 그분이 예비자 교리에 나가자 그 부인도 같이 “예비자 교리반”에 빠지지 않고 나가서 그분이 영세하는데, 적극 협조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문득 제가 평소에 가졌던 의문은, 어떻게 그분이 신앙을 갖기로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분 자신의 결단인가? 아니면 주변의 권유 때문인가? 또는 하느님의 섭리인가?

 

2. 이런 생각이 들자, 또 다른 영세자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저의 초등학교 동기동창이라 어릴 때부터 잘 아는 사이입니다. 그가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강한 스트레스를 받자 건강에 문제가 생겨 큰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친구가 나에게 문득 찾아와서, “황 신부, 내가 세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노?”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법을 알려주었더니, 소속된 본당에서 혼자 영세하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의사가 가망이 없다고 퇴원하라 했는데, 그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서, “레지오” 단장을 하고 주일미사 때는 “복사”도 빠짐없이 하고 있습니다. 병이 믿음의 계기가 된 것일까? 그것도 하느님의 섭리일까?

 

3. 또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신자는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가 하는 저의 질문에, “저는요, 어느 날 길을 가는데, ‘당신을 초대합니다.’라는 예비신자를 모집하는 현수막을 보고 스스로 성당을 찾아가서 신자가 되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는 그냥 두어도, 언젠가는 제 발로 신앙을 찾을 테니까, 그때까지 하느님께서 기다려 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4. 한 할머니는 대단한 불자였습니다. “반야심경”도 줄줄이 외우십니다. 이분이 가톨릭으로 개종했습니다. 이유는 자녀들이 모두 가톨릭 신자가 되었으니, “제삿밥이라도 얻어먹으려면, 자신이 종교를 바꾸는 게 더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5. 우리 집안은 4대째 신자입니다. 제 선친이 살아계실 때, 몇 번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 만일 아버지께서 신자 집안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스스로 가톨릭 신자가 되었겠습니까? 그렇게 물으면, 아버지는 “아닐 것이다.” 하십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나, 나 같은 사람은 하느님께서 미리 가톨릭 집안에 심어놓지 않으면, 제 발로 스스로 신앙을 가지지 않을 것이니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은 하게 됩니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발간된 “개창 가톨릭 성가”에 1번으로 나오는 “나는 믿나이다.”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가사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택하여 성회 안에 부르시니, 진심 감사하나이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스스로 결정하여 믿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나를 신앙으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그 부르심이 여러 가지 방법이나, 시기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거기에는 분명히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까 “믿음은 은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10에도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여기서 “믿어”라는 동사는 문법적으로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입니다. 즉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는 것” 또는 “믿어지도록 하는 것”으로, 나 자신의 결단 외에, 보이지 않는 내 바깥의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고 하겠습니다.

 

[2026년 1월 11일(가해) 주님 세례 축일 가톨릭마산 8면, 황봉철 베드로 신부(성서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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