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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19세기 조선 천주교회의 공소와 공소전 개념

196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12-30

19세기 조선 천주교회의 공소와 공소전 개념



Ⅰ. 머리말

Ⅱ. 공소의 개념

Ⅲ. 공소와 교우촌

Ⅳ. 조선 천주교회의 공소 전통

Ⅴ. 공소의 역할과 공소전

Ⅵ. 맺음말 - 공소는 한국 천주교만의 특징인가?



<국문초록>

 

이 글의 기본 입장은 ‘기초 연구와 문제 제기’에 있다. 즉 ‘기초 연구’로서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소와 공소전에 대한 개념을 좀 더 명확히 하고자 했고, 공소와 교우촌이 한국 교회만의 특징이 아니라는 ‘문제 제기’를 했다. 본문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의 기록에 교우촌은 ‘chrétienté’, 공소는 ‘station’과 ‘Kong so’로 표기되어 있다. ‘Kong so’는 공소의 한글식 표기로 1839년 앵베르 주교의 기록에 처음 나온다. 그리고 이 세 가지 표현은 개항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고 의미도 거의 같았다.

 

둘째, ‘교우촌’은 신자들로 구성된 거주지이고, ‘공소’는 ‘교우촌’에 마련된 전례 공간’이다. 그리고 교우촌 내에 공소가 설치된다는 점에서, 교우촌 방문은 곧 공소 방문과 같은 의미가 되어 교우촌과 공소가 혼용되기도 했다. 교우촌과 공소의 혼용 현상은 개항 이후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결과 ‘모임 장소’라는 공소의 본래 의미는 점차 오늘날과 같이 ‘본당보다 작은 교회 단위’로 변화하였다.

 

셋째, 공소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의 거점’, ‘교회 조직의 연락 거점이자 교회 사업의 중심’, ‘예비 신자들의 의탁처’, ‘지역의 신앙 중심지’, ‘교회 재건의 토대’로서 역할하였다.

 

넷째, 공소를 치르기 위해 준비되는 공소전은 크게 경비(經費)와 사제에게 주는 예물전으로 나눌 수 있으며,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한 1836년 이후에 본격화된 듯하다. 그리고 1858년 이후에는 예물전의 소유권이 선교사에서 선교지로 옮겨지게 되었고, 1880년대 후반 이후에는 공소전이 학교와 애긍 사업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다섯째, 19세기에는 ‘공소전’이 사제에게 주는 예물전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20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공소에서 거둔 돈 전체, 즉 공소 경비와 사제에게 주는 예물전을 합친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섯째, 공소가 한국 교회만의 특징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중국에도 공소가 존재했으므로, 양국의 공소와 교우촌에 대한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

 

[학술지 교회사학 제27호, 2025년(수원교회사연구소 발행), 방상근(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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