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 선교 여정과 선종, 유해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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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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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 선교 여정과 선종, 유해 이장*
Ⅰ. 머리말
Ⅱ. 페낭에서 서만자까지의 선교 여정
Ⅲ. 마가자 선종과 유해 이장
Ⅳ. 맺음말
<국문초록>
본고는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고, 그의 시복 추진 과정에서 반드시 확인되어야 할 선교 여정과 선종 이후의 유해 이장 과정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선교 여정은 셋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중국 산서 주교관까지의 여정(1832년 8월~1833년 10월), 두 번째는 산서 주교관에 체류하면서 사목하는 기간(1833년 10월~1834년 9월), 그리고 세 번째는 달단 여정과 하북성 서만자 교우촌(현 張家口市 崇禮區 西灣子鎭) 생활이다(1834년 9월~1835년 10월).
그 동안 브뤼기에르 주교가 한 달 이상 체류한 곳은, 마카오의 포교성성 극동 대표부, 복건성에 있는 도미니코회 디아즈 주교의 주교관(현 福安市 下白石鎭 丁頭村), 산서성에 있는 프란치스코회 살베티 주교의 주교관(현 太原市 晋中市 祁峴 九汲村)이었다. 아울러 본고에서 그 정확한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본 강남 숙소와 산동·직예 접경의 교우촌, 그리고 일찍이 확인된 서만자 교우촌이 여기에 해당한다.
1835년 10월 7일 서만자를 출발한 브뤼기에르 주교는 10월 19일 서부 달단 지역의 마가자(馬架子)에 도착했으며, 이튿날 선종하였다. 이처럼 주교의 마지막 목적지가 된 마가자는 지금의 내몽고자치구 적봉시 송산구 동산향(內蒙古自治區 赤峰市 松山區 東山鄕)으로, 모방 신부의 서한과 파리외방전교회의 선교 지도에 나오는 ‘펠리구’(Pielikeou, 別拉溝)와 같은 곳으로 확인되었다.
서만자에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선종 소식을 들은 모방 신부는 즉시 마가자로 가서 11월 21일에 장례 미사를 봉헌하고, 주교의 시신을 그곳에 안장하였다. 주교의 유해는 1세기가 흐른 뒤인 1931년 9월 24일 서울로 이장되었으며, 10월 15일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마가자에 있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원묘지 자리는 2004년 7월 6일 한 연구자의 노력에 의해 확인되었다. 게다가 2006년 1월에는 우연히 본래의 묘비가 발견되었다.
* 본 연구는 2023년 12월 2일에 개최(천주교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주최·주관)된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 추진 제1차 심포지엄’인 “브뤼기에르 소(蘇) 주교의 생애와 조선 선교 배경”에서 발표한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학술지 교회사학 제27호, 2025년(수원교회사연구소 발행), 차기진(양업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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