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포천 지역 천주교사 연구: 공소 관할 본당의 변천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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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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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지역 천주교사 연구
- 공소 관할 본당의 변천을 중심으로 -*
Ⅰ. 머리말
Ⅱ. ‘천주교 박해기’ 포천 지역 신앙공동체와 순교자들에 대한 검토
Ⅲ. 개항기~일제강점기 포천 지역 공소와 관할 본당 변천에 대한 정리
Ⅳ. 맺음말
<국문초록>
이 글은 포천 지역 천주교사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들을 바탕으로 ‘천주교 박해기’ 포천 지역 신앙공동체와 순교자들에 대해 검토하고 보완해야 할 부분을 살펴보았다. 또한, 개항기~일제강점기 포천 지역 공소와 관할 본당 변천 과정에 대해 1936년도까지 작성된 ‘교세통계표’와 ‘본당 공소별 현황’, 선교사제들의 서한과 교회 측 기록 등을 활용하여 잘못 알려진 내용을 수정하면서 정리했다.
포천 지역에서 제일 먼저 확인되는 공소는 ‘막은담이’인데, 1897~1898년도 원주본당 교세통계표에 나오며 1899~1900년도 원주본당 교세통계표에도 확인된다.
1900~1901년도 교세통계표에 의하면, 막은담이 공소는 원주본당에서 약현본당으로 편입되었다. 1903년 하반기에 막은담이 공소는 약현본당에서 개성본당으로 다시 편입되었다.
1904~1909년도까지 교세통계표가 누락되어 있어서 명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1908년 용문본당이 원주본당에서 분리·설정되면서 포천 지역을 관할한 것으로 보인다. 서파(1904~1909년 사이 설정, 1914년 폐지 추정), 화대리(1911년 설정), 고일(1911~1912년 설정)과 포천읍(1911~1912년 설정, 1924년 이후 폐지), 해룡(1914~1915년 설정), 오가리(1918~1919년 설정, 1932년 폐지 추정) 공소가 용문본당 관할 아래 설정되었다.
1924~1929년까지 교세통계표가 누락되었기 때문에 명확히 알 수 없지만, 1924년 평강본당이 설정되면서 포천 지역 공소들이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정교리[용화골]와 송우리[솔모루] 공소가 1924~1929년 사이에 설정되었다.
1931~1932년도에는 포천 지역 관할 본당이 평강본당에서 연천 신암리본당으로 바뀌었다. 포천 지역에서 평강본당이 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연천 신암리본당으로 관할권을 넘겼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1932~1933년도에 신암리본당이 폐지되면서 포천 지역 공소들이 다시 평강본당으로 편입되었다.
1933년 양주 덕정리본당이 설정되면서 거리가 가까운 포천 지역 공소들을 관할하게 되었다. 1935년도에는 구월[구울] 공소가 설정되었다.
덕정리본당은 1946년에 의정부로 이전하였고, 포천 지역 공소들은 의정부본당[현재 의정부2동본당(주교좌 의정부성당)] 관할에 속하게 되었다. 1956년 포천본당이 분리·설정되었고, 이후 포천 지역은 포천본당과 포천본당에서 분리된 본당들에 의해 관할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교세통계표와 본당 공소별 현황(1931년, 1932년, 1936년)을 비교해보면, 해당 연도의 통계표와 현황표의 작성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신자 수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공소 이름에서는 통계표와 현황표 사이에 차이가 두드러진다. 통계표가 공식적인 행정리(行政里)를 알파벳으로 표기했다면, 현황표에서는 공소[마을]의 고유 이름을 한글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행정리/공소 마을이 다른 경우를 들어보면, 용화골/정교리, 막은담리/신팔리, 솔모루/[상]송우리, 한나무골/화대리, 해룡/설운리, 검수정(금수정)/오가리가 있다. 이를 통해 교세통계표에서 나오지 않는 공소의 다른 이름[마을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 이 논문은 2024년 9월 8일에 개최된 제14회 강원교회사연구소 학술심포지엄 ‘춘천교구 서부지구의 신앙전파’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보완한 글이다.
[학술지 교회사학 제26호, 2025년(수원교회사연구소 발행), 이석원(수원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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