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령] 위령기도 해설6: 위령기도를 노래로 바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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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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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위령기도 해설 (6) 위령기도를 노래로 바치는 이유
1. 인간 생활과 종교 예식의 필수 요소인 음악
몇 가지 지식과 기술만으로 풍요로운 삶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학문과 기량뿐 아니라, 기예(技藝)도 다양하게 습득할 때 삶은 더욱 넉넉해집니다. 고대 중국의 예서인 「주례(周禮)」는 교육의 기본을 예(禮: 예법), 악(樂: 음악), 사(射: 활쏘기), 어(御: 말타기), 서(書: 글쓰기), 수(數: 수학) 등을 일컫는 육예(六藝)에 두었습니다. 「예기(禮記)」는 다른 요소들과 함께 음악을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소라고 가르쳤습니다.*
종교 예식에도 음악은 필수 요소입니다. 무당이 혼자 굿할 때는 무가(巫歌)만 부르지만, 큰굿에서는 무당의 노래뿐 아니라 악사의 반주와 춤까지 어우러집니다. 스님 혼자 목탁을 두들기며 독경(讀經)하기도 하지만, 큰 재(齋)에서는 찬불가, 악기 연주, 춤이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룹니다.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역시 노래, 악기 연주, 춤이 총체(總體)가 되어 죽은 왕의 넋과 산 이들이 만납니다. 이처럼 종교 예식에서 음악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가톨릭교회도 기도하거나 미사를 비롯한 전례를 거행할 때 노래로 주님을 찬미합니다.
2. 노래로 기도하는 것은 교회의 전통
굳건한 부활 신앙을 간직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천상 탄일(天上誕日)이라고 불렀습니다. 교부 시대에는 죽은 이를 위해 시편, 찬미가와 함께 후렴을 노래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가는 두 배의 기도입니다.”라고 할 만큼 음악이 기도와 전례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습니다.
8세기 이후부터 임종이 가까워지면 함께 모인 모든 이가 시편을 노래했으며, 임종하는 순간에는 성인호칭기도를 노래로 합송(合誦)했습니다. 운명하면 시신을 성당으로 운구해 안치한 다음 성무일도를 바치고 장례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편을 노래하면서 묘지로 행렬해 시신을 안장했습니다. 이처럼 노래로 위령기도를 바치는 것은 교회의 오랜 전통입니다.
3.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모여 “주님에 관한 기록을 읽고, 그분 죽음의 승리와 개선을 재현하는 성찬례를 거행하고, 동시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라.”고 가르쳤습니다(전례 헌장, 6 참조). 이와 함께 “온 교회의 음악 전통은 특히 말씀이 결부된 거룩한 노래로서 성대한 전례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성음악은 기도를 감미롭게 표현하거나, 한마음을 이루도록 북돋아 주거나, 거룩한 예식을 더욱 성대하고 풍요롭게 꾸며 준다.”(전례 헌장, 112 참조)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하거나 미사를 비롯한 전례를 거행할 때 할 수 있다면 노래로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와 함께 “예규의 규범과 규정에 따라 거룩한 신심행사들에서 그리고 바로 전례 행위 안에서 신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대중 성가를 적극 장려하여야 한다.”(전례 헌장, 118)라면서 교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노래로 기도할 수 있도록 쉬운 노래로 만들 것을 요청했습니다.
4. 누가 위령기도를 노래로 하는가?
우리 민족이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에 위령기도를 노래로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한민족이 노래를 즐긴다는 주장은 맞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위령기도도 노래로 해야 한다는 말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노래로 위령기도를 바치는 민족이 우리 외에는 없거나 극히 적어야만 그 주장이 맞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래로 위령기도를 바치는 것은 가톨릭교회의 오랜 전통이고, 그 전통을 중국이나 한국교회뿐 아니라 다른 나라 교회도 충실하게 따랐을 뿐입니다. 지역의 환경이나 정서에 맞게 위령기도의 세부(細部) 내용이나 순서를 적절히 선택하고 근본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개변(改變)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의 근본정신과 형식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지역교회는 없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될 것입니다.
5. 「상장 예식」은 우리 것
「상장 예식」은 우리나라 교회가 우리 민족의 관습과 정서가 밴 우리말과 가락으로 거행하게 하는 장례 예식서입니다. 그런데 「상장 예식」을 두고 전제하는 우리’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범위에 한국 땅, 한국인, 한국교회라는 묶음만 있습니까? 오늘의 「상장 예식」과 지난 시절 100년 이상 사용한 「텬쥬셩교례규」의 발생원인‧과정‧내용‧구성 등을 ‘우리’가 포함하는 범위를 기준으로 따져보면 최소한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나 ‘우리 민족’을 지칭할 때의 우리와 ‘우리 가톨릭교회’를 지칭할 때의 우리입니다. 「텬쥬셩교례규」와 「상장 예식」은 우리나라 교회가 우리 관습과 정서를 반영한 우리말과 가락으로 편찬한 예식서라는 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 교회에는 없고, 오직 우리나라 교회에만 있는 기도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대부분 보편교회가 편찬한 예식서의 기도들을 우리말로 번역했거나, 우리 환경에 맞게 덧붙이고 빼거나 약간 변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텬쥬셩교례규」는 Rituale Romanum(로마 예식서)을 한문으로 번역‧편찬한 「聖敎禮規(성교례규)」를 비롯한 중국교회의 기도서‧예식서 내용을 발췌하고, 우리나라의 관습을 고려해 한글로 엮은 것입니다. 「상장 예식」도 최민순 신부의 ‘받으시옵소서’를 제외하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간행한 Ordo Exequiarum(장례 예식서)을 번역하고, 우리나라의 장례 환경을 고려해 편찬한 장례 예식서입니다. 따라서 「텬쥬셩교례규」와 「상장 예식」을 두고 말하는 ‘우리’에는 ‘우리나라’ 또는 ‘우리 민족’의 ‘우리’와 ‘우리 가톨릭교회’의 ‘우리’가 결코 떨어질 수 없도록 함께 엮여 있습니다.
「상장 예식」은 분명히 우리 땅에서 우리나라 교회가 우리 관습과 정서가 밴 우리말과 가락으로 구현하는 우리의 장례 예식서입니다. 그러면서도 성경 말씀과 가톨릭교회 장례의 정신과 내용 그리고 형식 등에서 벗어나지 않은 우리 가톨릭교회의 장례 예식서라는 점에서도 분명히 우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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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禮)로써 그 백성의 뜻을 이끌고, 악(樂)으로써 그들의 소리를 조화롭게 하며, 정치로써 그 행동을 통일시키고, 형벌로써 그들의 간사함을 막는다. 예악형정(禮樂刑政)의 목적은 한 가지인데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하고 바른 정치를 실행하는 것이다(禮記, 樂記).
[성모님의 군단, 2025년 12월호, 박명진 시몬(서울대교구 연령회연합회 상장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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