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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5년 12월 31일 (수)성탄 팔일 축제 제7일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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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의 샘: 마침과 시작을 함께... 기다림의 희망을

222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12-30

[영성의 샘] 마침과 시작을 함께... 기다림의 희망을

 

 

12월이 되면 언제나 마침과 시작을 동시에 체험합니다. 2025년 한 해를 정리하며 못 만났던 사람들,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정리하는 시기입니다. 또한 교회에서는 전례력으로 대림시기를 시작하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고,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며 새로운 것들을 계획하고 다짐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사제로서 먼저 시작을 바라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 어떤 일에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를 계획하여 봅니다. 어떤 일에는 더욱 집중하고, 어떤 일은 조금 내려놓자 다짐도 합니다. 그렇게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저는 자꾸 무엇을 ‘하기’만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일하기를 원하고, 놀기를 원하며, 사랑하기를 원하고,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하기 원하는 만큼 누군가에게 그렇게 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만약 그 일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그를 괴롭힙니다. 나도 이만큼 하니까 너도 이 정도는 해야 한다며 다그칩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 어쩌면 무엇을 ‘했는지’를 먼저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다그치지 않고 내가 먼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기다리며 준비할 뿐입니다. 우리는 먼저 내가 하지 못했던 일을 바라보아야만 잘 준비하고 잘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시작을 준비하면서 내가 살아왔던 지난 시간을 정리하여 봅니다. 희망을 바라보고 걸어왔던 우리의 순례의 여정을 다시 되돌아봅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지, 그 사랑을 얼마나 많이 표현하고 지켜왔는지, 또한 다른 이의 사랑을 욕심 없이 얼마나 잘 받아들였는지, 먼저 바라보는 것이 더 잘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합니다. 아직 오지 않는 시간을 위해, 아직 만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잘 준비하고 잘 기다려야 합니다. 지난 역경의 시간 속에서 나의 일과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얼마나 미안하고 감사한 일들이 많은지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잘 준비할 수 있고, 함께 그 시간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기다림의 희망 

 

우리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년 찾아오는 이 기다림의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며 올해의 순례를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좀 더 행복했으면 합니다. 하지만 기다림의 시간이 언제나 행복과 설렘으로 가득하지 않습니다. 같은 기다림의 시간이라도 무엇을 기다리느냐에 따라 그 기다림의 내용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소풍 전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의 기다림과 시험 전날 잠을 못 자고 공부하는 아이의 기다림은 다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과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은 다릅니다. 무엇을, 누구를, 어떤 상황을 기다리고 있느냐에 따라 기다리는 시간이 행복하고, 웃음이 배어 나오고, 기대되는 순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같은 예수님이라도 어떤 예수님을 기다리느냐에 따라 그 기다림의 시간은 달라집니다.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는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해산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4-7)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저희가 스승님께 청하는 대로 저희에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마르 10,35-38)  

 

같은 예수님이지만 완전히 다른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베들레헴에서 가장 힘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이십니다. 좋은 곳에서, 궁전 같은 화려하고 멋들어진 곳이 아닌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마구간에서, 말구유 위에 누운 예수님이십니다.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이십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전능하고 영광 가득한 모습의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줘야만 하는 예수님을 바랍니다. 더 많이 챙기고, 더 편안한 것을 바라는 희망 안에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다림을 하고 있습니까? 후자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기다린다면 지금의 기다림은 허황된 꿈이며, 우리의 여정은 절대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가난하게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은 연약한 아기한테서 하느님의 힘을, 보잘것없는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든 사람한테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고, 미워하는 사람과 죄짓는 사람에게서 하느님을 찾는 마음을 읽는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기다림의 시간에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경배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을 하느님을 대하듯 하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고, 잘남을 못남으로 감싸고, 미운 이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좋은 일을 하겠다, 사랑하겠다, 나누겠다, 마음만 먹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는 변화가 우리에게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구유에 누운 힘없는 아기를 보듬어 안을 때, 우리에게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그 기다림은 매번 설렘과 행복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시간, 우리의 기다림은 어떤 기다림일까요? 기쁨과 행복의 기다림인가요? 아니면 고통과 초조함의 기다림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매년 다가오는 성탄이기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그래서 아무 느낌 없는 기다림인가요? 가난한 구유에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나요? 아니면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크리스마스의 화려함 속에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나요? 어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지 잘 바라보아야만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가난하게 오신, 나의 가장 가난한 마음에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려 봅니다. 그리고 주위의 가장 가난한 이들을 안아 주려 합니다. 그 사람 안에서 하느님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12월호, 최종훈 토마스 신부(가톨릭목포성지 담당, 광주 S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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