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행복의 길을 묻다25: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훈련이나 습성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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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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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행복의 길을 묻다] (25)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훈련이나 ‘습성’이 있을까?
씨앗에 불과한 잠재 능력… 결실 맺으려면 습성 획득해야
현대 사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즉각적이고 강렬한 보상이 주어지는 기쁨과 쾌락에 더욱 집착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는 더 맵고, 더 달고 심지어 이것이 합쳐진 ‘단짠’ 음식들이 대성공을 이루는 데에서도 나타난다. 또한 인생을 성찰하게 해주는 긴 영화나 강연보다는 순간의 관심을 사로잡는 숏폼이 인터넷 안에서 조회수를 집어삼킨다. 요즘 웬만한 궁금증은 AI에게 물으면 기다릴 필요 없이 즉각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랜 시간과 훈련을 요구하는 일들이 과연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이런 현상을 돌아보게 해주는 중요한 성찰이 「신학대전」의 일부인 ‘습성에 대한 논고들’(I-II, qq.49-54)에 등장한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논고를 인간의 행복과 긴밀하게 연결된 윤리적 덕과 악덕에 관한 논의를 준비하기 위해서 다룬다. 그의 성찰은 행복을 찾는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을까?
습성이란 무엇인가?
‘습성’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많은 이가 항상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따분한 활동을 떠올리게 된다. 이와 반대로 각 분야의 천재들은 끝없는 일상의 반복에서 생겨난 습성에서 벗어나 뜻밖의 특이한 행위로 세상을 놀라게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토마스는 ‘습성’을 다른 방식으로 규정한다. ‘습성’의 라틴어 ‘하비투스’(habitus)는 ‘소유하다’를 뜻하는 ‘하베레’(habere) 동사로부터 온 것으로서, “어떤 것이 잘 또는 나쁘게 준비를 갖추고 있는 하나의 상태”(I-II,49,2)를 의미한다. 이런 규정에서 토마스는 “습성은 더 지속적이고 더 오래 간다는 점에서 (일시적) 상태(dispositio)와 차이가 난다”고 봤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토마스에 따르면, 이런 습성은 능력(potentia)과 행위(actio)의 중간에 있는 어떤 것이다. 따라서 습성에 의해서 활성화된 능력은 추후 똑같은 행위들을 더 잘 수행할 수 있게 한다.
-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보여 주는 예술성은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수많은 훈련을 통해 획득한 ‘습성’이다. 인간을 본성적 목적으로 인도하는 선한 습성을 ‘덕’(virtus)이라고 부른다. 건반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성 체칠리아를 표현한 자크 블랑샤르의 <성 체칠리아>인간에게만 고유한 습성
현대인은 인간보다는 동물을 습성의 대표적인 사례로 생각하기 쉽다. 더욱이 인간의 행위를 규정하기 위해서 짐승의 행동이나 심지어 벌레 등의 작용을 관찰하는 연구는 이런 경향을 부추긴다. 그러나 토마스에 따르면, 인간은 엄밀하게 규정된 습성을 취득할 수 있지만, 동물들은 그렇지 못하다. 동물의 경우에, 감각적 욕구의 활동은 그 본성과 더불어 바로 주어졌고 이미 규정되어 있다. 동물들은 인간에 의해 훈련을 받을 경우에만, 어느 정도의 습성이 형성될 수 있을 뿐이다.(I-II,50,3)
이와는 대조적으로 습성의 피조물이라 불릴 만한 인간은 장차 발전될 거의 무한에 가까운 잠재 능력을 갖추고 태어난다. 그러나 그 능력들 자체는 다만 자라날 수 있는 씨앗들에 불과해서, 그것들이 결실을 풍부히 내기 위해서는 훈련을 통해 특별한 ‘습성’을 획득해야 한다. 따라서 토마스에게 습성이란 엄격한 의미에서 결코 육체적 구성이나 단순한 ‘동물적’ 본능이 아니라 오로지 영혼의 성질일 뿐이다.(I-II,50,1) 그래서 토마스는 영혼의 행위적 습성은 행위의 영적 원리들인 지성과 의지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얻게 되는 습성
토마스는 지성의 원리들을 손쉽게 파악하는 ‘자연적’ 습성들이나 인간의 역량을 넘어서는 최종 목적에 도달하는데 도움이 되는 ‘주입된’ 습성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I-II, 51,1&4) 그런데 여기서는 일단 인간의 행복을 위해 더 기본적인 ‘획득된’ 습성들에 집중하도록 하겠다.
일반적으로 습성은 행위의 반복을 통해 획득된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 안에 동일한 어떤 원초적 능력이 있다면, 각 개인이 획득한 습성은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요즘 세계를 놀라게 하는 조성진이나 임윤찬과 같은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보여주는 예술성은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수많은 훈련을 통해 획득한 ‘습성’이다. 습성은 실제로 힘들고 반복된 노력을 통해서 의도적으로 계발된 능력으로 접붙여진 가치처럼 본성에 뿌리를 내렸으므로 ‘두 번째 본성’이라 불린다.
습성이 시작될 때에는 빈틈없는 주의와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습성이 강해질수록 노력은 덜 필요하게 되고, 같은 행위를 더 쉽고 무난하게 완수할 수 있다. 그래서 토마스는 습성을 “행위의 원리”라고 부른다. 이런 경우, 습성은 전혀 자유에 반대되지 않는다. 획득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습성의 강화와 약화
습성은 보다 ‘증대’되거나 ‘위축’될 수 있다. 습성의 성장은 단지 양적인 반복 횟수에 달려 있지 않고, 행위의 질과 의도, 그리고 자유로운 선택의 깊이에 달려 있다. 습성은 모든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습성 자체보다 더 강하고 더 진지한 행위들에 의해서만 증가된다.(I-II,52,2) 따라서 운동선수들은 자신이 한계를 확장하는 더 강렬한 훈련을 통해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어떤 행위를 수행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어떤 특정 습성과 합치되게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습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기존의 습성이 파괴되기 위해서는 반대되는 행위를 할 필요도 없이, 단순한 게으름이나 나태함만으로 충분하다. 오랫동안 외국어를 쓰지 않으면 대부분을 망각하듯이, 단순히 습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습성을 매우 약화시키며 때로는 완전히 소멸시킨다. 계속해서 지성적으로 자기 자신보다 훨씬 하위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람은 급속하게 퇴보하게 된다.
그렇다면 습성은 도대체 행복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본성과 마찬가지로 습성은 우리의 행위들이 더 쉽게, 더 유쾌하게 흐르도록 만들어 주므로 모든 진보의 조건이다. 천재적인 사람이 그렇게 특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습성을 통하여 그의 본성적 능력들에 완전성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토마스가 말하는 습성의 강화와 약화는 신앙인의 일상을 향해 매우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떤 습성을 키우고 있는가?” 습성은 인간을 본성적 목적으로 인도하는지 아니면 그 목적에서 멀어지게 하는지에 따라 선하거나 악하다고 판단된다. 토마스는 이 선한 습성을 ‘덕’(virtus)이라고 부르고, 악한 습성을 ‘악덕’(vitium)이라 부른다. 자유의 결실인 습성은 덕의 경우에는 자유 자체를 강화하지만, 악덕의 경우에는 자유를 약화시킨다. 다음 호부터는 우선 자연적으로 획득된 덕들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가톨릭신문, 2026년 1월 1일, 박승찬 엘리야 교수(가톨릭대학교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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