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 (24) 모자보건법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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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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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 (24) 모자보건법 제정 1960년대부터 시작된 낙태 허용 논란… 교회는 늘 ‘생명 파수꾼’이었다 “모자보건법을 반대 - 합법적인 낙태 수술의 범위를 확대하고 실질적인 강제 불임 수술의 근거를 마련해주는 모자보건법이 1월 30일 비상국무회의에서 통과되자, 교회 내에서는 이 법으로 인해 생겨날 인명 경시 풍조와 가치 질서의 전도, 도덕적 피폐, 모체의 건강 위험 등 갖가지 부작용을 크게 우려하면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가톨릭시보 1973년 2월 4일자 1면 중에서)  - ‘모자보건법을 반대’라는 제목으로 실린 가톨릭시보 1973년 2월4일자 1면.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모자보건법을 반대’라는 제목으로 실린 가톨릭시보 1973년 2월4일자 1면.  가톨릭신문 자료사진유신 체제 아래서 통과된 반생명적 악법 1973년 1월 30일, 유신 체제하 비상국무회의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종교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국 모자보건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국가가 강제로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이른바 가족계획 사업의 일환으로 제정한 이 법률은 이후 우리나라에서 낙태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만연하게 만든 주범으로 지목돼 왔습니다.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종교계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으나, 당시는 박정희 정권이 1972년 10월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한 직후였기 때문에 억압적인 국가 시책에 대한 반대 여론은 사실상 봉쇄됐습니다. 가톨릭시보는 관련 소식을 즉각 보도하며 이 반생명적인 법률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전문 14조와 부칙으로 구성된 이 법안은 제8조에서 인공임신중절(낙태)의 허용 한계를 ①본인 또는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②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③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④혈족 또는 인척 간의 임신, ⑤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해치는 경우 등으로 규정했다. 특히 이 규정에는 여론을 의식한 듯 종래의 중절 수술 허용 이유 중 ‘경제적인 이유’를 삭제했으나, 문제의 ‘경제적인 이유’가 제8조 제5항 ‘모체의 건강을 해치는 경우’에 은폐돼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가톨릭시보 1973년 2월 4일자 1면 중에서) 주교단의 즉각적 대응과 사목교서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즉시 사목교서를 발표하고, 2월 18일 주일미사 때 모든 신자 앞에서 이 교서를 낭독하도록 사목자들에게 지시했습니다. 또한 일부 조항의 삭제와 개정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대통령과 보건사회부 장관에게 발송했습니다. 가톨릭시보는 주교단의 교서 관련 소식을 2월 18일자에 보도하고 사목교서 전문을 2면에 게재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지난 1월 30일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통과된 ‘모자보건법’에 대해 ‘낙태 수술의 자유화는 생명 경시 풍조, 모체 건강의 파괴, 노동력 부족 등 국가적 내지 민족적 불행을 초래하는 독소를 내포하고 있다’며, 이의 삭제와 개정을 촉구하는 사목교서를 발표했다.”(가톨릭시보 1973년 2월 18일자 1면 중에서) 모자보건법에 대한 논의는 이미 1960년대초부터 시작됐습니다. 교회는 모자보건법 제정이 가져올 심각한 부작용을 우려하며 줄곧 반대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가톨릭시보는 1965년 11월 7일자에서, 보건사회부가 10월 24일 가족계획사업의 강력한 추진을 목적으로 형법상 낙태죄를 합법화하는 모자보건법을 마련해 법제처에 회부하기로 한 사실을 보도하고, “낙태는 살인죄”라며 강경하게 반대하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서울대교구장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은 1970년 6월 21일 사목교서를 발표해, 법제처에서 심의 중인 모자보건법에 대해 모든 신자가 적극 반대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주교단은 같은 해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열린 주교회의 임시총회에서 모자보건법 제정을 막기 위한 전국적 기구를 구성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김 추기경에게 일임했습니다.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3년 2월 7일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생명수호 미사를 봉헌하고 ‘생명31’ 운동 선포식을 거행했다. 가톨릭신문 자료 사진.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3년 2월 7일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생명수호 미사를 봉헌하고 ‘생명31’ 운동 선포식을 거행했다. 가톨릭신문 자료 사진.경제 개발 위한 인공적 산아 제한 10년 넘게 끈질기게 추진된 모자보건법은 우리 사회의 생명문화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독소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은밀하게 이루어지던 낙태를 합법화한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 한계)가 대표적입니다. 이 법은 낙태를 허용하는 조건을 지나치게 폭넓게 인정함으로써 사실상 낙태를 합법화한 악법이자,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훼손함으로써 우리나라에 ‘죽음의 문화’를 확산시킨 주범이었습니다. 정부가 이처럼 끈질기게 모자보건법 제정을 추진한 직접적인 이유는 산아 제한과 경제개발이었습니다. 모든 국가 정책을 경제개발에 맞추고 있던 정부는 전후 베이비붐으로 급격히 증가한 인구로 인해 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했고, 산아 제한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모자보건법을 통한 낙태 합법화였습니다. 강화도 심도직물 사태를 계기로 정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던 가톨릭교회는 생명 문제에 대해서도 한결같이 단호한 입장이었습니다. 비록 모자보건법 제정을 막지는 못했지만, 주교단은 이후에도 이 법의 폐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낙태 반대 운동의 확산과 사회 변화 모자보건법이 제정된 1970~1980년대는 사실상 국가 주도의 산아 제한과 인구 억제, 낙태 허용 정책이 강력하게 시행되던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낙태 반대 운동은 가톨릭교회와 일부 생명운동 단체들에 국한되었습니다. 1990년대 들어 인구 감소세가 뚜렷해지면서 1996년경부터 정부는 산아 제한 정책을 중단했습니다. 이에 맞춰 주교회의 산하에 ‘생명운동본부’가 설치돼 낙태 반대 및 생명 존중 캠페인이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반면 여성 단체들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며 법 개정 논의를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헌재 결정 이후 혼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출산율 급감으로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내세우기 시작했고, 종교계를 중심으로 생명 수호 캠페인이 강화되며 미혼모 지원 활동도 확산되었습니다. 동시에 여성계는 낙태죄 폐지 운동을 전개하면서 낙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심화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9년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의 낙태 논쟁에 중대한 분수령이 된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재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2020년 말까지 법 개정을 명령했습니다. 이에 따라 2021년 1월부터 낙태죄 조항의 법적 효력이 상실되었지만, 아직 새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아 법적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낙태를 무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개정 법률안이 잇달아 발의되면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25년 10월 26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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