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칼럼: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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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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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님을 추모하며
10여 년 전 즈음, 신학교에서 개최된 어느 학술회 때의 기억입니다. 신학생 스태프로 참여한 저는 교정 입구에서 VIP(귀빈)로 분류된 참가자들의 차량을 VIP들만을 위한 주차 시설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행사 전날에, VIP 참가자 중 한 명인 유경촌 주교님에 대한 주의 사항이 공지되었습니다. 개인 운전기사가 배치된 차량으로 방문하는 보통의 VIP들과 달리 유경촌 주교님은 20년이 넘은 빨간색 소형 자동차를 직접 몰고 오실 예정이니, 혹시라도 차량 상태만 보고서 VIP가 아닐 것으로 예단하여 입구에서 막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행사 당일, 주교님은 누구도 대동하지 않은 채 홀로 짐가방을 들고 걸어서 교정을 방문하셨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언덕길을 오르시면서도 미소를 머금은 반가운 얼굴로 신학생들과 인사를 나누시던 주교님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제 마음 한 켠에 깊숙이 박혀 있습니다.
2019년 4월 15일 저녁에 광화문 광장에서 봉헌된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 미사에서 뵈었던 티모테오 주교님의 모습도 기억에 남습니다. 제대가 놓인 단상은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 중 극히 일부의 인원만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좁았습니다. 그럼에도 미사가 봉헌되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의자가 억지로 추가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미사가 끝나고 단상에서 멀리 떨어진 광장 구석에서 홀로 제의를 정리하고 계시는 주교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고개를 숙인 채 제의를 정리하시는 주교님의 모습에서 오롯이 미사에만 집중하며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아 하는 의지를 감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유경촌 주교님의 저서 《21세기 신앙인에게》는 이같은 주교님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황청 문헌 중 노동, 경제, 환경, 전쟁 문제 등에 집중한 사회 교리 문헌들을 모아서 작금의 한국 사회의 처지에 맞게 해설한 내용은, 평소 주교님께서 노동자들을 비롯한 우리 시대의 어려운 이웃들을 자주 찾아갔던 모습과 맞물려서, 사태를 향한 간절함과 절박함이 강조되어 다가옵니다. 또 남북 분단의 현실을 생태 문제와 맞물려 분석한 내용은 미래 세대를 향한 주교님의 애틋함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그렇게 21세기 신앙인들을 향한 주교님의 당부는 주교님께서 몸소 보인 삶의 태도를 보증해 주고, 또 주교님의 검소하고 겸손했던 삶의 태도는 당신이 쓴 글에 진정성을 더해 줍니다.
주교님의 빈자리가 꽤 오래도록 눈에 밟힐 것 같습니다.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님을 추모하며, 우리 교회가 주교님의 빈자리를 채워나갈 방도를 치열하게 고민하길 희망합니다.
[2025년 9월 14일(다해)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국내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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