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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전례력 돋보기: 성 요한 23세, 과도기 교황에서 세계 공의회의 교황으로 - 10월 11일 성 요한 23세 교황기념일

254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10-30

[전례력 돋보기] 성 요한 23세, 과도기 교황에서 세계 공의회의 교황으로


10월 11일 성 요한 23세 교황기념일

 

 

2014년 4월 27일, 가톨릭 교회에 두 분의 새로운 성인이 탄생했습니다. 바로 우리 시대의 성인, 성 요한 23세 교황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입니다. 공교롭게도 두 분은 20세기 후반이라는 같은 시기에 세상을 향해 열린 교회라는 같은 신념을 보여 주었습니다. 두 분의 인연은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2000년 9월 3일, 성 요한 23세를 시복하면서 이어졌고, 마침내 두 분은 같은 날에 시성이 됐고, 또 같은 달에 축일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번 호는 10월의 두 분 성인 교황 중 성 요한 23세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성 요한 23세는 1958년 10월 28일, 77세의 나이에 교황에 선출되었습니다. 새 교황으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였기에 추기경단에서는 공공연하게 ‘과도기 교황’이라며, 다음 교황을 거론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5년도 안되는 짧은 재위 기간에 성 요한 23세는 교회 내의 개혁과 종교 간의 대화,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한 커다란 업적을 남겼습니다.

 

1881년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Bergamo) 지역의 작은 도시, 소토 일 몬테(Sotto il Monte)에서 가난하지만 신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나 훗날 성 요한 23세 교황이 된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Angelo Giuseppe Roncalli)는 어릴 적부터 작은 마을의 본당 신부를 꿈꿨다고 합니다. 1904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제1차 세계대전 때 군종 신부로 활동하며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후 교황청의 외교관으로 불가리아와 터키(현 튀르키예)에서 활동했고, 특히 터키 교황 사절 시절에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살던 많은 유대인들이 터키로 탈출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1944년 프랑스의 교황 대사로 임명된 뒤에도 불가리아로 탈출한 헝가리의 유대인들을 위해 불가리아 국왕을 설득해 수많은 유대인들을 대학살의 재앙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이후 1953년 추기경으로 서임되고 베네치아의 총대주교로 재임하는 동안 누구나 찾을 수 있도록 주교관을 개방했고, 베네치아의 좁은 골목길을 산책하며 곤돌라 사공들을 비롯한 시민들과 방언으로 대화하는 등 격식을 허문 겸손하고 소탈한 추기경으로 큰 인기와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직접 전쟁을 겪고, 불가리아와 터키 등의 동방 교회뿐 아니라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명망이 높았으며, 사목자로서 소박하고 격식 없는 성품의 론칼리 추기경은 이제 마지막 자신의 소임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77세의 론칼리 추기경의 교황 선출은 늦은 나이인 듯 여겨졌지만, 결국 이는 교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오랜 기간, 그리고 다양한 경험으로 성 요한 23세를 준비시킨 성령의 섭리이기도 했습니다.

 

1958년 11월 2일 요한 23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좌에 오른 론칼리 추기경이 세계 공의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기대한 인물은 찾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저 조용히 넘어갈 것 같았던 교황직이 시작되자마자 성 요한 23세는 최초의 아프리카와 일본 출신 추기경을 임명하는 등 ‘유럽 교회’가 아닌 ‘세계 교회’를 표방했고, 교황청에만 머무는 교황이 아니라 로마의 병원과 교도소들을 방문하며 예수님의 자비하심과 희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59년 1월 25일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에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저녁기도를 주례한 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최를 선언했습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교회가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 내적으로 쇄신되고 현대화 되어야 할 필요성을 직시했으며, 또 교회가 세상 안에서 짊어져야 할 역할을 깨닫고, 동방 교회와 유대인, 그리고 다른 교파와 화해의 열매를 맺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성 요한 23세는 공의회 폐막을 보지 못하고, 1963년 6월 3일 위암으로 지상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성 요한 23세의 혜안으로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 교의, 사목, 교회 일치의 분야 등에서 교회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놀라운 변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이러한 그분의 업적을 기려 성 요한 23세의 축일은 사망한 날짜가 아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일인 10월 11일로 정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망 직전에 공포한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1963년 4월 11일)) 회칙은 가톨릭 신자가 아닌 전 세계의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 향한 것으로 유명하며, 당시 냉전 체제와 핵전쟁의 위험이 드리운 세계에 인권 존중과 평화를 역설해 커다란 울림을 주었습니다. 

 

2014년 4월 27일, ‘착한 교황(Papa buono)’이라고 불린 성 요한 23세를 시성한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소탈하고 격식이 없으며 세상에 열린 모습에서 성 요한 23세를 많이 닮았습니다. 함께 시성 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역시 성 요한 23세 교황의 활동과 신념을 그대로 계승했지요. 시성식 미사에는 세상과 교회의 변화를 위해 자신의 임무가 끝났음을 직시하고 교황좌에서 내려오는 큰 결단을 내렸던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함께했습니다. 20세기와 21세기가 만나고 지상 교회의 교황들과 천상 교회의 성인 교황들이 함께 통교한 이날의 시성식은 한자리에 모인 네 분의 교황을 통해 교회를 이끄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우리 눈으로 생생하게 그려 볼 수 있었던 참으로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월간 빛, 2024년 10월호, 소형섭 아우구스티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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