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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 - 그리스도의 몸과 아멘 사이

11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2-20

[영화칼럼]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 - 2019년 감독 ‘얀 코마사’


‘그리스도의 몸’과 ‘아멘’ 사이

 

 

신부들의 복장인 클러지 셔츠를 입고 거리를 걷다 보면 간혹 생면부지인 교우에게 인사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또한 불특정 다수가 운집한 공간에서는 복장을 보고 저를 신부로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됩니다. 이처럼 인사를 받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다른 이들의 시선이 신경 쓰일 때 저는 로만 칼라를 뺀 채 클러지 셔츠를 입어 저의 신원을 가립니다. 반대로 신부의 신원이 드러나야 하는 장소에서는 잽싸게 로만 칼라를 채웁니다.

 

폴란드 출신인 얀 코마사 감독의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은, 신부의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복장이 품은 의미를 개인의 편의에 따라 달리 활용했던 저의 부끄러운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소년원에 복역 중인 스무 살의 다니엘(바르토시 비엘레니아 분)을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출소를 앞둔 다니엘은 평소 따랐던 토마시 신부(루카시 심라트 분)에게 출소 후 신학교에 입학하고 싶다는 뜻을 전합니다. 하지만 토마시 신부는 다니엘이 전과자 신분이어서 신학교 입학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짚어주며 목공소에서 일할 것을 추천합니다. 출소한 다니엘은 토마시 신부가 주선한 목공소로 향하던 중에 한 마을 성당의 주임신부를 대신해 얼떨결에 신부 역할을 맡게 됩니다. 소년원에서 훔친 클러지 셔츠를 입고서 아슬아슬하게 신부 행세를 이어간 다니엘은, 열정적인 사목과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로 마을 사람들과 성당 신자들에게 신뢰를 받게 됩니다. 한편 마을은 일 년 전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생긴 상처 때문에 반목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였는데, 다니엘은 기존의 성직자들이 보인 모습과는 다른 방식으로 마을 사람들의 치유와 화해를 위해 나섭니다.

 

영화 속 다니엘의 모습은 ‘성(聖)과 속(俗)’ 같은 이분법적인 구분이 지닌 모호함을 꼬집습니다. 다니엘의 몸을 휘감은 문신과 다니엘이 신부를 사칭하는 데 사용되는 클러지 셔츠는 묘한 대조를 이루며,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비판적으로 묘사합니다. 한편 마을이 겪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극명하게 갈린 상황을 해결하려는 다니엘의 모습은, 마치 다니엘 자신이 이전에 지었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한 모습처럼 다가옵니다. 이제 다니엘은 가짜 신부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진짜 신부처럼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문신을 한 신부님>의 원제는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하는 ‘Corpus Christi’입니다. 성과 속, 선과 악 등을 단순화하여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는 태도는 ‘그리스도의 몸’ 뒤에 이어질 ‘아멘’이라는 고백을 기계적인 응답처럼 만들어버립니다. 세상 모든 이를 위하여 당신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시선으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과 ‘아멘’ 사이에 놓인 빈 공간을 더욱 묵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더불어 ‘그리스도의 몸’과 ‘아멘’ 사이를 깊은 성찰과 고민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024년 2월 18일(나해) 사순 제1주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행당동성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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