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칼럼: 영화 어떤 영웅 - 좋은 사람 되기 vs 나쁘지 않은 사람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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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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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어떤 영웅’ - 2023년 감독 ‘아쉬가르 파르하디’
좋은 사람 되기 vs 나쁘지 않은 사람 되기
‘선(善)의 반대는 악(惡)이 아니라 독선(獨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선한 의지를 가지고 펼친 행동이라도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거나, 자신을 선한 존재로 드러내기 위한 목적에 몰두한다면 그 선행은 악보다 더 지독한 독선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목표는 자칫 잘못하면 ‘좋음’이라는 함정에 빠져 독선의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이란의 거장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영화 <어떤 영웅>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지닌 함정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교도소에 수감된 라힘(아미르 자디디 분)이 귀휴를 얻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합니다. 라힘은 일부나마 돈을 갚고 채권자에게 석방을 요청하려 합니다. 라힘의 애인 파르크혼데(사하르 골두스트 분)가 우연히 은행에서 주인 없는 핸드백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많은 양의 금화가 들어 있었으나 금값이 떨어져 기대만큼 돈을 구하지 못하게 되고, 또 채권자는 빚의 일부만을 변제하는 것으로 라힘을 석방시켜줄 생각이 없습니다. 결국 라힘은 계획을 포기하고 뒤늦게나마 핸드백을 주인에게 찾아주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핸드백의 주인이 나타나면서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제 라힘은 타인을 도운 선한 사람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고 영웅으로까지 추앙을 받습니다. 이를 계기로 라힘이 채무에서 벗어나 더 이상 수감 생활을 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려는 공식적인 후원 단체까지 마련됩니다. 그러나 그의 평판이 높아질수록 주변의 의심 또한 깊어집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라힘은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사소한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로 이어집니다.
극 중 라힘이 겪는 딜레마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을 동일시했을 때 맞게 되는 실존적인 혼돈을 상징하듯 다가옵니다. 영화는 주인공 라힘을,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무책임한 거짓말을 일삼는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로 그립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인물로도 드러납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영웅 대접에 현혹되었던 라힘은 결국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추락한 명예를 되찾기 위해 분투하며, 좋은 사람의 모습을 유지하려 애쓰던 모습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집니다. 이처럼 영화 <어떤 영웅>은 좋은 사람으로 대표되는 ‘영웅’이 아닌 영웅을 만들어내는 ‘어떤’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줍니다. 어쩌면 우리가 자주 바치는 주님의 기도가 ‘저희를 선하게 하소서.’가 아닌, ‘악에서 구하소서.’로 맺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 보입니다.
[2024년 1월 21일(나해)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행당동성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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