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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4년 11월 22일 (금)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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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강우일 주교의 생명과 평화1-2: 생명의 못자리

1977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1-02

[강우일 주교의 생명과 평화] (1) 생명의 못자리 (상)


모든 생명체 먹여 살려온 식물에 무자비한 폭력 행사하는 인간

 

 

- 벌채된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에 선주민인 무라족 사람들이 서 있다. 우리 인간들은 인간과 모든 생명체를 먹여 살려온 풀과 나무에 아주 무자비하고 무례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제주도 서귀포에서 동쪽으로 조금 벗어난 곳에 효돈이라는 마을이 있다. 그곳에 사는 한 지인이 작은 식물원을 만들었는데 시간 되면 들러달라는 초대를 받아 지난 12월에 찾아갔다. 내비게이션으로 근처까지 가기는 갔는데 눈에 띄는 간판도 없어 주변을 헤매다가 전화 통화를 하고 겨우 찾았다. 이 식물원의 주인은 그리 부자도 아닌데 돈을 벌 생각이 아니라서 관광객을 많이 받지 않고 하루에 한정된 인원만 인터넷으로 예약받는다고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겨울이라 그런지 식물원인데도 꽃이라고는 한 송이도 피어있지 않았다. 나무들도 몇 그루 되지 않았고 들판의 나지막한 잡풀들이 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여러 종류 식물의 씨앗을 사방에서 구해 모종을 키우고 제대로 싹을 틔우면 마당에 옮겨심는다고 한다.

 

입구 쪽에 작은 카페가 있어 차 대접을 받았는데 카페 서쪽으로 크고 시원한 창문이 나 있었다. 전혀 특별할 것도 없이 풀만 무성한 정원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져 있었다. 창문 한쪽 꼭대기에는 멀리 눈 덮인 한라산 백록담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 광경이 하도 평화스러워 나도 모르게 궁둥이를 붙이고 한참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식물원을 만든 주인의 의도도 특별히 아름다운 꽃나무를 심어 구경꾼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로 가득 찬 현대인들이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머물고 쉬어가는 장소가 되었으면 하고 만들었단다.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께서 첫째 날 빛을 만드시고, 둘째 날 물과 하늘을 만드시고 셋째 날 나무와 풀을 만드셨다. 나무와 풀은 땅 위에 출현한 첫 번째 생명체들이다. 식물은 빛과 물만으로 자신의 생명을 자라게 하고 산소를 만들어 땅 위의 다른 많은 생명을 숨 쉬게 하고 자신을 먹이로 내준다. 수명을 다한 다음에는 흙 속에 파묻혀 땅을 비옥하게 하고 또 다음 세대의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거름이 된다. 식물은 모든 생명체의 못자리다. 인간들은 식물이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동물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겨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사고의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동물은 식물에 큰 은혜를 입고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삭막하던 대도시 한복판에도 나무를 여러 그루 심고 이들이 자라 숲을 이루면 새들이 와서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는다. 숲은 뜨거운 태양열을 막아주고 대지를 적당한 온도로 유지하고 수분을 저장해 준다. 숲은 그렇게 많은 은혜를 베풀면서도 자랑하지도 않고 자기주장도 하지 않는 겸손한 존재다. 그래서 사람은 숲을 바라보거나 숲속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평화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과학이 알려주는 진화의 역사에서도 식물이 먼저 생겨나고 다음에 동물이 등장한다. 식물군의 출현은 4억 년 전이라고 하는데 인류의 출현은 고작 35만 년 전이다. 지구라는 별에서 나무와 풀들은 까마득한 대선배이고 인간은 진화의 여정에서 제일 마지막에 출현한 막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지구생태계에 제일 뒤늦게 등장한 막내 인간이 맏형이자 대선배인 나무와 풀들을 너무 우습게 여긴다. 인간과 모든 생명체를 먹여 살려온 풀과 나무에 우리 인간들은 아주 무자비하고 무례한 폭력을 행사해 왔다. 현대인들은 대규모 공업단지, 공장형 농축산단지, 쇼핑센터, 관광 리조트, 골프장, 경기장, 공항, 물류단지 등을 건설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면적의 숲을 끊임없이 베어냈다. 자동차를 발명하고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후에는 자동차들이 다니는 도로로 산하를 메우고 한없이 확장하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방대한 삼림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다. 지구의 허파라고 일컬어지는 아마존 열대 우림지역에서는 지금도 엄청난 벌목과 방화가 자행되고 대규모 목장을 만들어 소들을 키우고 탄광과 수력발전소 건설을 위해 태고로부터 이어온 숲속의 생명체들을 멸종시키고 있다. 최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한 13살 아마존 선주민 소녀 타이사가 외쳤다. “선주민은 땅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인데 기온이 너무 많이 상승해 농작물의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어요.” 또 “가뭄으로 인해 아마존강과 호수들이 말라가고 있어요.” 그리고 “원래는 마을 주변 강에 물고기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물고기를 찾기 위해 4~5㎞가량을 한참 걸어야 해요.” 또 비선주민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숲을 태워 산불이 자주 나고 친구들이 호흡기 관련 질환에 많이 노출되어 자주 아프다고 한다.

 

내가 사는 제주에서도 나무와 숲이 점점 사라지는 모습에 내 가슴이 옥죄어 오고 숨이 막혀오는 답답함을 느낀다. 내가 제주에 와서 한 가지 이상하게 여겼던 것은 이 나라에서 제일 높은 한라산이 버티고 있는데 등산을 해보면 의외로 원시림 같은 울창한 숲이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점이다. 강수량도 제일 많고 날씨도 온화하여 나무들이 자라기에 좋은 조건인데 왜 아름드리 거목이 빽빽이 자리 잡은 울창한 숲이 없을까 하고 혼자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 제주교구 원로 신부님과의 대화에서 그 의문이 풀렸다. 1948년 4·3의 무장봉기가 일어난 후 군대와 경찰은 무장대를 토벌하기 위해 중산간 마을들을 차례로 포위하여 불태우고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해안가 마을로 강제 이주시켰다. 당시 어린 소년이었던 제주의 원로 신부님은 지금도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장면이 또렷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 장면은 무장대 토벌이 한창이던 시절 한라산 꼭대기까지 불을 질러 숲이 벌겋게 타오르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무장대와 그에 동조하는 도민들을 소탕하기 위해 군경은 초토화 작전을 감행하고 그들이 숨을 수 있는 곳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숲을 깡그리 태워버린 것이다.

 

 

강우일 주교는…

 

1974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1986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다. 2002년 제4대 제주교구장에 착좌했으며 이후 2020년까지 교구장직을 맡았다. 주교회의 의장,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상임위원 및 사회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과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가톨릭신문, 2024년 1월 1일, 강우일 베드로 주교(전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의 생명과 평화] (2) 생명의 못자리 (하)


반생태적 탐욕 벗어나야 후손들에게 보금자리 물려줄 수 있어

 

 

내가 제주에 와서 20년이 흘렀다. 현직에 있을 때나 은퇴한 후에나 내가 맛보는 가장 큰 기쁨과 휴식은 숲길을 걷는 일이다. 그런데 그동안 수십 년 된 나무들이 수없이 잘려 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속이 쓰리다. 내가 몇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큰 충격적 사건은 자태가 너무 아름답고 장엄한 소나무가 어느 날 갑자기 잎이 시들어 가더니 얼마 후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 일이다.

 

이 노송은 보기에 수명도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그 줄기가 옆으로 두어 번 휘어서 하늘로 뻗어 오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품격을 갖춘 국보급 보물이었다. 그런데 이 노송이 제주대학교로 들어가는 길과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중앙로가 교차하는 도로변에 서 있었고 중앙로 확장 공사로 인해 길 한복판에 놓이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노송을 교차로 한가운데 남겨둔 채로 도로 확장과 포장 공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노송의 잎이 누렇게 변색하더니 빠르게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누가 밤중에 독을 주입한 모양이었다.

 

신제주와 구제주를 잇는 편도 1차로의 구실잣밤나무 가로수 풍경. 강우일 주교 제공

 

 

처음에는 지역 언론에 노송이 말라 죽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그리고 그만이었다. 아무런 추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누가 봐도 분명히 도로공사 관계자들과 연관이 있는 사건이었다. 제주에서도 소나무 벌채는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이를 어길 시에는 형사 입건되어 엄한 벌을 받았다. 당시 도지사와 만날 기회가 있어 대화를 나누던 중 이 노송이 사라진 사건을 거론하며 당국에서 반드시 범인을 찾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후속 조처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백주에 도로 한복판의 국보급 소나무에 누군가가 독을 주입해 나무가 잘려 나갔는데, 아무런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넘어간 것이다. 우리나라 지도층의 생태 감수성이 얼마나 미개한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두 번째로 내가 충격받은 일은 내가 매일 숙소에서 교구청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중앙로에서 일어났다. 제주도정은 어느 날 제주에서 제일 통행량이 많은 중앙로에 버스전용차로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중앙로 한 구간에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가로수길이 100m도 훨씬 넘게 이어져 있었다. 가로수가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가장자리에만 있을 뿐 아니라 차도 가운데에 길게 서 있어 상하행선의 분리대 구실을 해주고 있었다.

 

이 가로수는 구실잣밤나무라고 하여 도토리보다 조금 납작한 열매가 열리는 참나뭇과인데 수령이 꽤나 오랜 듯 둥치가 상당히 굵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근처 주부들이 열매를 주우러 통행하는 자동차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나도 이곳을 지날 때마다 도심 한복판 고목들의 도열에 마음을 뺏겨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제주시에서 통행량이 제일 많은 도로에 이런 보물 같은 구실잣밤나무들이 용케도 생존해 주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행정당국이 버스전용차로제를 도입하면서 이 보물들이 또 사라져 버렸다. 버스전용차로가 생겨 버스의 통행속도가 몇 분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버스가 몇 분 더 빨리 달리는 것이 수십 년 자란 고목을 수십 그루 베어낼 만큼 중대한 일이었을까?

 

이뿐이 아니다. 제주시민이 제주시에서 동쪽 끝머리에 있는 성산포 쪽으로 이동할 때 여러 길로 갈 수 있으나 비교적 선호도가 높은 길이 중산간 지역을 달리는 ‘비자림로’다. 비자림로는 2002년 건설교통부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했다. 자치단체들이 추천한 전국 88개 도로 가운데 미관이 뛰어나 대통령상까지 받았다.

 

당시 건교부는 도로 및 환경전문가, 여행가, 사진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비자림로가 “천혜의 자연경관이 잘 보존됐고, 환경과의 조화, 편리성 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제주시와 성산포 사이를 오가려면 일주 도로나 다른 간선도로 이용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행정 당국은 2018년 굳이 2.9㎞의 아름다운 삼나무 2400여 그루를 베어내면서 비자림로를 두 배로 확장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환경단체 전문가들이 불과 며칠이라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조사해 보니 비자림로에는 천연기념물 팔색조, 멸종위기종 애기뿔쇠똥구리를 비롯해 법정보호종으로 지정된 다수 생물들이 확인되었다. 이 공사로 인한 자연 훼손과 생태계 파괴에 대한 비판과 항의가 전국에서 빗발치고 공사가 세 번이나 중단되었으나 행정당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다. 생태계에 대한 인간들의 무신경한 전횡과 폭력이 도에 넘친다.

 

그런데 최근 또 비슷한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에 제주 시내의 서쪽과 동쪽을 오가는 차량 통행이 많아 길이 좀 막힌다. 대부분 차량은 편도 차로가 둘 이상인 간선도로를 이용한다. 그러나 옛날부터 익숙하던 신제주와 구제주를 잇는 편도 1차로의 구도로를 이용하는 시민들도 여전히 적지 않아 출퇴근 시간에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이를 편도 2차로로 확장하려는 계획이 발표되자 논란이 적지 않다.

 

이 길에 수령 50년이 넘은 구실잣밤나무 75그루가 가로수로 늘어서 있다. 키가 10m를 넘고 여러 갈래로 뻗은 줄기가 길 양편에서 도로 가운데로 뻗어 숲 터널을 이룬다. 굵은 몸통에 새파란 이끼까지 끼어있어 오랜 세월을 버텨온 관록을 자랑하듯 장엄하게 버티고 서있다. 겨울이 되어 다른 나무들은 잎들이 색을 잃거나 떨어져 가지만 앙상하지만, 구실잣밤나무는 여전히 검푸른 잎을 가득 달고 하늘을 가리며 오가는 행인들의 마음을 푸근하고 엄숙하게 해준다. 45년 세월을 두고 한자리에 굳건히 서서 추위와 더위를 견디어 내고 줄지어 오가는 자동차들의 매연을 마셔가며 시민들에게 햇빛을 가려주는 그늘을 제공하고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준 75그루의 귀한 생명들을 출퇴근에 몇 분 더 빨리 가기 위해 모조리 베어버린다면 이는 인간 편의주의의 야만적 문명에 의한 것이다.

 

기후위기에서 오는 생태계 교란으로 지구상의 생명체 군이 급속도로 멸종되고 있다. 북극곰, 코끼리, 고래, 두루미와 같은 크고 아름다운 동물은 사람들 눈에 띄지만, 눈에 잘 안 들어오는 작은 곤충이나 절지동물은 이미 상당수 사라졌다. 곤충이 사라지면 이를 먹이로 살아가는 조류도 생존이 불가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축을 인간의 반려로 간주하고 그 식용을 법으로 금할 만큼 동물권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해진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생태계에 대한 우리 감수성을 이제는 집에서 키우는 몇 종의 동물에 한정하지 말고 나무와 풀로까지 확장해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도로를 확장해도 도로 면적이 확장된 만큼 현대인들은 자동차 대수를 또 늘려 새로운 도로가 다시 자동차로 꽉 막히게 만드는 것이 우리들의 끝없는 욕망의 속성이다. 생명의 못자리를 무차별 파괴하는 반생태적 폭력과 탐욕에서 벗어나야 우리 공동의 집을 지키고 후손들에게 아름답고 살기 좋은 보금자리를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 [가톨릭신문, 2024년 1월 7일, 강우일 베드로 주교(전 제주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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