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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4년 11월 23일 (토)연중 제33주간 토요일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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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유익한 심리학: 되돌아오는 악령(마태 12,43-45)과 선무당

116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3-12-26

[유익한 심리학] 되돌아오는 악령(마태 12,43-45)과 선무당

 

 

어떤 이들은 “사람이 스스로 법을 잘 지키고 선하게 살면 그만이지 무슨 하느님이 필요하냐?”라고 말한다. 그들은 실제로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면서 주변의 귀감이 되기도 한다. 얼핏 세상의 눈으로 보면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생각 속에는 커다란 모순이 숨어있다. 마치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다.

 

사람은 스스로 구원하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 한 자락 자신할 수 없으며 자신의 본능적 반응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다. 불안에 서 벗어날 수 없고 죽음의 공포 앞에서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또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간다고 세상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며 귀감이 되었던 사람들이 말년에 피폐해지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사람은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이 빠진다면 그것은 자칫 자아도취적 태도요, 자의적 관점에 그칠 수 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의 참된 모습을 비추어 주시는 참 존재이시다. 우리는 자의적 성실과 진실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비추어 깨닫게 된 성실과 진실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세상에 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의 현실인 한계성과 불완전성을 초월할 수 있는 길을 만나고 그 빛의 도움으로 어둠을 이겨내고 견디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 종교를 갖는다고 타박하며 자기 삶에 스스로 책임을 지라고 역설한다. 얼핏 보면 맞는 말처럼 보인다.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보이고 멋있어 보이지만 그 역시도 인간 의지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스스로 내면에서 남모르게 무너지고 있다. 인간은 자기가 한 맹세조차도 지탱하지 못하는 존재다.

 

이렇게 세상에는 세상이 주는 거짓 신념과 믿음, 허영과 허상 속에서 마치 그것이 참된 것인 양 굳게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이들이 도중에라도 거짓된 삶을 깨닫고 제 자리로 돌아오면 좋으련만, 지금까지 쌓아 올린 아성(牙城)을 허물지 못하여 모래 위에 지어진 성(城)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용기를 내지 못한다. 여태껏 살아온 자신의 삶을 부정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합리화하기 급급하다.

 

또 어떤 이는 용기를 내어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 삶이 허상의 거짓이었음을 깨닫고 참된 진리의 길을 야심 차게 시작했으나 이따금 닥쳐오는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이만하면 됐지? 이보다도 못한 사람이 많은데’ 하며 머물러버린다. 그러나 사람은 진리의 꼬리만 잡고 살 수 없다. 한계를 안고 불안정한 존재이지만 인간은 충만한 삶을 추구한다. 우리는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진리 안에서 자유를 얻을 때까지 멈출 수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현실의 시련과 고통에 굴복하여 머물게 되면 행복에 도달할 수 없는 이유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이 악한 세대도 그렇게 될 것이다.”(마태 12,43-45)

 

아무리 세상이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있다고 해도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없다. 다수의 군중이 비웃고 조롱한다 해도 진리는 진리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세 가지(유혹)를 모두 거부하셨다. 그것을 거부하는 데 있어 겪게 되는 모든 십자가(현실)를 기꺼이 참아 받으시며 견디셨다. 그래서 세상은 그분을 싫어하고 마지막 카드인 ‘죽음’을 내밀었지만 이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사람은 그렇게 사라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2023년 12월 24일(나해) 대림 제4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김정민 라자로 신부(아중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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