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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성사] 신앙교리: 성체에 대한 공경 (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성체공경

30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6-12

[공부합시다! 신앙교리] 성체에 대한 공경 (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성체공경

 

 

성체 신비에 관한 훈령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1967년에 발표된 ‘성체 신비에 관한 훈령’은 성체성사를 구원을 위한 ‘은총의 보고(寶庫)’로 제시하면서, 신자들에게 일상생활 중에 성체성사의 정신을 실천해야 하다고 권고하였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산 신앙으로 영성체를 하기만 한다면, 성사적이며 영신적으로 주의 성체와 성혈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성령의 은혜는 생명수같이 각 사람에게 충만히 흘러내린다.(요한 7, 37-39 참조) 그러나 이 성사가 지표(指標)하는 그리스도와의 영적 일치는 성체를 이루는 순간에만 도모할 것이 아니라, 신자 생활 전체에서 계속되어야 할 것이며, 신도들은 받은 은혜를 끊임없이 신앙으로 관상(觀想)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보다 풍성한 사랑의 결실을 맺어야 할 것이다.”(Eucharisticum Mysterium, 교황청 예부성성 1967. 5. 2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8 재판 [1968 초판], 38항)

 

더불어 훈령은 신자들에게 미사에 참례해서 적극적으로 영성체 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잦은 영성체와 매일 영성체는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깊게 하고, 영적 생명을 더욱 풍만히 양육하고, 영혼을 덕행으로 아름답게 꾸미며, 영원한 행복의 보다 확고한 보증이 되는 것이 사실이므로, 본당신부, 고백신부, 강론신부들은 자주 열성을 다해서 그리스도의 백성을 교훈하여 이렇게 신심 많고 유익한 습관을 기르도록 격려해야 한다.”(37항)

 

훈령은 또한 영성체는 우리를 일상의 허물과 범죄에서 지켜주는데, 영성체를 위한 준비로 합당한 통회가, 경우에 따라서는 고해성사가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각 미사는 중죄가 아닌 가벼운 죄들을 사해 주는 하나의 작은 고해성사와 같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사의 도입 부분엔 참회의 예절이 있는데, 이때 사제가 고해성사에서와 같이 사죄경을 외우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미사통상문) 물론 미사 자체가 고해성사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말씀 드린 것처럼 대죄가 아닌 소죄의 경우에 죄를 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법

 

1983년에 반포된 교회법의 성체에 관한 규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성체를 개인적으로 보존하고 휴대하는 관습을 금한다.(935조)

 

– 성체가 보존되는 성당은 중대한 이유가 없는 한, 매일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신자들의 성체조배를 위해 개방되어야 한다.(937조)

 

– 성당과 경당들에서는 매년 적당한 기간 동안 비록 연속적이 아니라도 장엄한 성체현시(現示)가 권장된다.(942조)

 

– 교구장의 판단에 따라, 가능한 곳에서는 특히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에 성체께 대한 공경의 공적 증거로 공공 도로에서 성체 거동 행렬을 하여야 한다.(944조)

 

– 사제들이 자주, 더 나아가 매일 성찬을 거행하길 권장한다. 사제들은 사목적인 필요 외에는 하루에 한 번 성찬을 합당한 기도로 준비하여 거행함을 원칙으로 한다. 이 경우, 사제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는 신자들이 함께 하지 않은 채 홀로 성찬을 거행해서는 안 된다.(904-909조)

 

이제 공의회의 개혁작업을 바탕으로 바야흐로 성체 신심은 그 균형을 찾아가는 듯합니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세계성체대회는 교황을 비롯한 주교단, 성직자와 평신도 전체의 일치를 드러내는 공동체적인 사랑의 만찬인 성체성사를 기념하는 모임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교회 안에서

 

가톨릭교회는 이천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 역사는 여느 인간사(人間事)처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교회는 ‘거룩한 교회’이지만 동시에 ‘죄 중에 있는 교회’이고, ‘성인들의 교회’이면서도 ‘죄인들의 교회’인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교회는 ‘죄인들의 거룩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교회 공동체가 ‘거룩한 하느님’을 믿는 ‘나약한 인간’의 모임임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러기에 교회는 역사 속에서 많은 잘못을 범하기도 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이러한 교회의 역사적 과오를 공식적으로 처음 인정하고 그에 대한 인류의 용서를 구하였지요.

 

이렇게 파란만장한 교회의 역사 속에서 성체성사의 거행과 그에 대한 이해와 공경도 많은 변천을 겪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속엔 긍정적인 면과 함께 부정적인 면도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역사가 과오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발전하여 왔듯이, 성체에 대한 공경의 역사도 이상적인 방향으로 발전되어 온 듯합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현재우리 교회가 실천하고 있는 성체성사에 대한 거행과 그에 대한 공경의 모습이 결코 다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결코 완성되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발전 중에 있는 것이고, 발전 중에 있는 것이기에 변화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변화는 본질과 정통성을 잃고 퇴보하지 않으면서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중세와 근대를 거치면서 행해 왔던 식민지 주입 방식의 선교 활동을 반성하면서 복음전래에 대한 토착화 작업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교회는 전례에 있어서도 토착화 작업을 비롯한 쇄신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며, 이에는 미사전례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미사성제는 공동체의 사랑의 만찬으로서의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자리이며, 공동체는 끊임없는 자기 개혁을 필요로 하는 인간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의 원천이 되는 사랑의 성사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크게 성사생활과 기도생활로 나눌 수 있는데, 이러한 신앙생활의 원천은 성체성사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양식과 음료로 내어 주심으로써 우리와 신비로운 일치를 성령의 활동 안에서 이루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신뢰하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 성의 있게 준비된 상태에서 성체를 영하고 성체성사적인 삶, 곧 서로 나누는 사랑의 삶을 가꾸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어느 연로한 수녀님께서 첫 서원 금경축일을 지내며, 오십여 년 수도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뻤고 고마웠던 일은 매일 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매일의 성체성사에서 당신 삶의 활력을 길어낼 수 있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렇듯 성체성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증거하는 사랑의 성사라 할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또는 매주 마다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또 그분의 사랑을 그렇게 가까이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로 여기에 천주교 신자가 된 남다른 보람이 있지 않을까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6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목국장, 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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