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전례ㅣ미사

[미사] 전례 탐구 생활51: 평화 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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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6-06 ㅣ No.2128

전례 탐구 생활 (51) 평화 예식

 

 

예수님께서는 수난당하시기 전날 최후의 만찬 때 끝에 제자들에게 평화를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 그리고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유다인들이 두려워 함께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23 참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그리스도의 평화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이 세상에 가져다주신 구원의 열매입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 교회에 주시는 선물로, 교회는 이를 증언하기 위하여 날마다 모여 성찬례를 거행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주님의 기도와 그 후속 기도를 바친 다음 평화 예식을 거행하는 가운데, 교회와 온 인류 가족의 평화와 일치를 간청하며, 성체를 모시기 전에 신자들의 상호 친교와 사랑을 드러냅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82항 참조).

 

초기 교회에서는 말씀 봉독과 신자들의 기도 다음에 평화를 기원하고 나누는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3세기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신자들의 기도를 끝맺으며 나누었던 평화의 인사를 ‘기도의 인장’이라고 불렀습니다. 모든 동방 예법은 이 전통을 이어받아 성찬 전례를 시작하면서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데, 그것은 봉헌 예식부터 영성체에 이르는 성찬 전례 전체가 전례에 모인 모든 이가 합당한 준비를 갖추고 거행해야 하는 하나의 전례 행위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로마 전례는 5세기 즈음부터 영성체 직전에 평화의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4세기에 접어들면 서 로마 제국의 지원을 받은 로마 전례는 점점 성대하고 복잡해졌고, 예식 요소들도 조정되었습니다. 영성체 직전에 바치던 주님의 기도가 감사기도 직후로 옮겨지면서 평화의 인사도 주님의 기도와 영성체 사이에 놓이게 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이전에 평화 예식이 ‘신자들의 기도’의 인장이었다면, 이제는 ‘주님의 기도’의 인장이 된 것입니다.

 

현재 로마 전례에서 평화의 인사는 주님의 기도와 빵을 쪼개는 예식 사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리 배치로 영성체 준비 예식들 전체 안에 교회의 일치와 형제들의 화해를 요청하는 일치된 맥락이 만들어졌습니다. 하느님의 용서와 형제들 간의 용서를 구하는 주님의 기도 뒤에 평화의 인사를 준비하는 후속 기도가 이어지고, 평화 예식 다음에 이어지는 빵을 쪼개는 예식 동안에 우리는 하느님의 어린양께 그분의 평화를 달라고 간청하니 말입니다.

 

두려움과 갈등으로 가득한 우리 시대에 교회가 자신과 온 인류 가족을 위하여 평화와 일치의 선물을 간구하며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웃는 얼굴로 평화의 인시를 나눈다 해도 상처 입은 우리 삶을 가로지르는 어떤 분열도 실제로 없애 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평화라는 말이 평화와는 한참 거리가 먼 현실과 이루는 뚜렷한 대비 때문에 우리 양심을 더 예민하게 건드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화의 인사로 일종의 예언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 소박한 평화의 몸짓은 우리 의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현실이 된 하느님의 약속 안에 충실히 머물 때 인간 사회의 모든 분열이 지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건네신 예수님은 여전히 손과 발에 선명한 못 자국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삶과 역사의 주재료인 상처와 고통을 건너야만 영광의 빛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분열로 얼룩진 이 세상에 주님의 평화를 용감하게 청합시다.

 

[2021년 6월 6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서귀복자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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