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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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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2-11 ㅣ No.1027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60)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며칠 전 교구는 다르지만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어르신 신부님을 뵈었다. 따뜻하고 온화한 성품이실 뿐 아니라 신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리스도의 향기로 물씬 풍기는 분이었다. 신부님께서는 본당 사목과 교포 사목, 그리고 다문화 가족과 장애인을 위해 헌신하면서 다양한 신자들을 만나오셨다. 게다가 조직운영과 사무행정 능력도 출중하고 교구 사제들 사이에서도 신망이 두터운 분이셨다. 이런 이유로 세 번이나 교구청에 들어가 중책을 수행하셨고 현재에도 사무처장으로 주교님을 보필하고 계신다.

 

신부님은 신자들을 어떻게 더 잘 도와줄 수 있는지를 항상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분이었다. 다양한 사목 경험에서 우러나온 사목자로서의 통찰을 나누어주시면서 오늘날 신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함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신앙인을 필요로 한다고 하셨다. 그 말씀에 깊이 공감하였다. 어디에 호소할 데가 없고 세상의 도움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영혼의 고통을 안고 찾아오는 신자들을 많이 만나왔기 때문이다.

 

신부님은 어려움에 처한 신자들과 만난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다. 특히 어르신 신자분들은 대부분 어려운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분들이었기에 신앙인으로서 겪은 삶의 고통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했다. 이분들에게 신앙인이란 세상 것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고 자신보다는 이웃을 먼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세상은 덧없이 사라지는 허상이고, 자신의 욕망은 죄로 인도하는 사탄의 유혹일 뿐이다. 따라서 신앙인은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했다.

 

신부님 자신도 할머니로부터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현실의 어려움을 세속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신앙인들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하셨다. 어린 시절 생일에 어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을 먹고 있노라면 할머니께서는 “어차피 구더기 밥이 될 육신한테 뭘 그리 애써서 챙겨 먹이려고 하느냐?”는 핀잔 섞인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게다가 할머니는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서 울음을 터뜨리는 이유가 “이 고통의 세상에 던져진 자신의 신세가 너무 한탄스러워 통곡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신부님은 어린 시절부터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어디에 가면 어떤 맛집이 있다” “이 재료는 어떻게 요리해야 맛이 더 좋다” 등의 말을 하지만, 신부님은 그런 말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듣고 속으로 혼자 웃음을 지었다. “신부님은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 바로 ‘미식가’ 일 거야!”

 

신부님의 할머니는 순교자 집안에서 정통 교리를 수호하며 살아오셨다. 할머니의 영향으로 신부님도 어린 시절 이 세상과 자신에 맞서서 영혼의 구원을 위한 삶의 가치관을 내면화하였고 사제가 되셨다. 하지만 신부님은 사목생활을 하면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in mundo, sed non mundi)” 신앙인들이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법이 없을까 하고 늘 고민하셨다. 현대의 신앙인은 세상을 벗어나 완전히 결별할 수 없고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한다는 영성을 어떻게 신자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신 것이다.

 

신부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시대에 아픈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따뜻한 노사제의 자부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심리정서적인 아픔을 함께 치유하면서도 영혼을 돌볼 수 있는 사목적 돌봄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대라는 사실도 느낄 수 있었다.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군중을 가엾이 여기시며” 말씀하신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5)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2월 7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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