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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읽기: 코로나19 이후 뉴노멀 시대의 신학대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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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2-02 ㅣ No.604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읽기] 코로나19 이후 ‘뉴노멀 시대’의 「신학대전」 읽기


연재를 마치며

 

 

2020년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가 유례없는 혼란을 겪었다. 의료 위기는 정치 위기와 경제 위기로 치달았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와 봉쇄 정책은 우리 일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코로나19는 근대 이후 오랫동안 지속해 온 문명과 발전의 이데올로기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야말로 근대화 이후 인류가 직면한 가장 끔찍한 재난이자, “글로벌 위험 사회”(울리히 벡)를 직감적으로 느끼게 해 준 최초의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해외여행, 축제, 대규모 종교 행사, 시위와 집회 등이 모두 어려워지면서 기존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된다. 당연하게 여기면서 습관적으로 해 왔던 모든 일이 똑같이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이었을까? 새로운 길을 찾고자 ‘뉴노멀’이라는 말이 회자하였고, 이후 도래할 새로운 질서에 대한 궁금증과 바람이 커져만 간다. 이 주제를 다루는 책 「오늘부터의 세계」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과거로 돌아가는 문은 닫혔다. 오늘부터의 세계는 지금 우리가 내리는 선택과 그 결과에 따라 형성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우리에게 소중한 충고를 해 주었던 멘토 토마스 아퀴나스는 오늘의 세계에 무엇이라 말할까?

 

 

돈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

 

코로나19가 기존에 퍼진 편견과 선입관을 깰 기회도 만들어 주었다.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유행)의 원인으로 지목된 생태계 파괴를 추동하는 거대한 질서, 자본주의의 민낯을 제대로 드러나게 한 것이다. 자본주의와 그 변형인 신자유주의 체제는 노동자들을 생산 과정의 한 부품으로 취급했다. 코로나19가 야기한 위기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큰 피해를 끼쳤다. 이럴 때일수록 신이 모든 사람을 위해 창조하신 재화가, 정의에 근거해서 그리고 사랑의 도움으로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아퀴나스의 가르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아퀴나스는 “인격은 이성적 본성을 지닌 개별적 실체”라는 보에티우스의 정의를 받아들여 대체 불가능성, 전체성, 관계성, 자기 초월성 등을 포괄하는 놀라우리만큼 풍부한 인격 개념을 선사해 주었다.

 

그중에서도 각 인격체가 진정한 고유성을 지니며, 어떤 것으로도 치환될 수 없는 대체 불가능성을 가진 존재임을 강조한 부분은 뉴노멀 시대에도 주목해야 할 가르침이다. 뉴노멀 시대에는 인간에 관하여 진지하게 사유한 현대의 다양한 철학이 제기한 문제들을 역동적으로 포괄함으로써 인간의 영적 본성에 바탕을 두고 인격적 존엄성의 근거를 확립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인격의 존중이 과도한 이기주의를 정당화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종교의 자유’를 내걸고 이웃과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지게 만든 종교인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자유를 잘못 사용했을 때 결정을 내린 당사자뿐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엄청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코로나19를 통해 사회 전체가 체험한다. 아퀴나스가 강조한 정의에는 권위를 지닌 국가가 전체의 공동선을 위해 개인을 규제하는 것이 포함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화는 정의의 결과이며 사랑의 결실이다’(사목 헌장, 78항 참조).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근대적 망상

 

코로나19가 “자연을 무시해 인간이 자초한 일”이라는 제인 구달의 비판은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근대적 망상에서 벗어나야 함을 일깨워 주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인류에게 경고했음에도 인간은 자신이 여전히 자연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뒤늦은 팬데믹 선포에도 이런 자만심이 숨겨져 있었다. 바이러스의 변이는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위험하게 일어날 수 있음에도 기존의 추이에만 의존했을 뿐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더욱이 황우석 교수 사건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마치 자연과학이 모든 인간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식의 과도한 과학주의는 단순히 ‘신화’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러한 태도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신앙인은 건방지지 않으며, 오히려 진리는 겸손으로 이끈다.’(「신앙의 빛」, 34항 참조)는 사실을 보여 준 아퀴나스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그는 평생에 걸쳐, 토론 중에는 늘 평온하고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상대방의 견해를 경청했다. 이런 자세는 심지어 그와 다른 의견을 가진 토론자들에게서도 찬탄과 칭송을 받을 정도였다.

 

나아가 그가 정립한 ‘존재의 철학’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인간은 결코 ‘존재 자체’인 절대 필연유의 지위에 오를 수 없고, 우연유에 불과하다는 가르침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지닌 지성과 자유 때문에 ‘신의 모습’으로서 모든 물질적인 피조물을 능가한다. 그렇지만 결코 자연 위에 군림해서 제멋대로 파괴하고 수탈해도 되는 권한까지 지니지는 않았다. 인간의 탐욕이 야기한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가 이제 코로나19를 통해 온 인류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제 아퀴나스의 가르침에 따라 인간의 한계를 자각하면서도 창조 질서를 보존하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 더욱 절실한 사명으로 다가온다.

 

 

진정한 행복을 찾는 일의 중요성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에 놓인 인간은 자칫 지나치게 염세주의에 빠지거나 모는 진리를 부정하는 회의주의에 빠져들기 쉽다. 이런 부정적인 분위기는 윤리적으로도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다. 그래서 사람들이 궁극적인 행복을 쉽게 포기하고 현세적 행복만을 추구하는 폐쇄성에 갇혀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신학대전」 제 II부를 시작하면서 아퀴나스는 인간들이 행복하고자 추구하는 돈[富], 권력, 명예, 쾌락 같은 것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행복은 다만 우주의 근거이며 스스로가 최고의 무한한 선인 신의 본질을 직관함(至福直觀)에서 이루어진다.

 

나아가 아퀴나스는 영혼과 육체의 합일, 영혼의 불멸성과 육체의 부활을 조화시킬 수 있는 설명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의 궁극 목적과 도덕적 원리 전체를 아우르는 체계를 마련해 주었다. 물론 신 이외의 선도 내세의 삶에서 완전한 행복을 누리기 위한 준비로 작용할 수 있다.

 

인류를 위협하는 코로나19를 비롯한 다양한 위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한다.’라는 아퀴나스의 일반적인 원리에 따라 전문가들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신앙과 이성의 조화

 

아퀴나스가 신학대전에서 다룬 많은 내용은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주 그의 철학을 ‘영원의 철학’(Philosophia perennis)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명칭은 현대인이 중세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요청이 아니라, 그의 작품 안에 담긴 영원한 진리를 새로운 형식으로, 그리고 변화된 환경에 맞게, 계속해서 다시 해석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아퀴나스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주장한 것만이 아니라, 이를 「신학대전」과 같은 훌륭한 결과물이나 학문 활동의 자세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그는 당시 강한 의심을 받던 아리스토텔레스를 그리스도교의 계시와 일치하는 의미에서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오류의 근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진리를 표현하기 위한 훌륭한 도구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체계 안에서 발견해 냈다. 아퀴나스가 영원한 지혜인 ‘계시된 진리’와 당대의 가장 뛰어난 이성의 진리를 담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훌륭하게 종합했듯이, 우리도 ‘계시’와 현대의 다양한 사상에 담긴 ‘보화’를 조화시켜 나가야 한다. 아퀴나스의 이런 노력이 코로나19 이후 ‘뉴노멀’을 찾는 많은 이에게 매우 중요한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신학대전」이 한국성토마스연구소(소장: 이재룡 신부)에 함께하는 번역자들을 통해 꾸준히 우리말로 번역되고 있다. 올해 말까지 번역된 분량이 아퀴나스가 직접 저술한 부분의 대략 절반인 30권 분량에 달한다. 한국 가톨릭 학계에서 이루어진 최대 프로젝트의 하나인 이 번역 작업이 잘 진행되어 라틴어나 다른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신학대전에서 자신이 원하는 주제를 자유롭게 찾아볼 수 있을 날을 꿈꾸어 본다.

 

* 박승찬 엘리야 - 가톨릭대학교 철학 전공 교수. 김수환추기경연구소장을 맡으며 한국가톨릭철학회 회장으로 활동한다. 라틴어 중세 철학 원전에 담긴 보화를 번역과 연구를 통해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다양한 강연과 방송을 통해 그리스도교 문화의 소중함을 널리 알린다. 한국중세철학회 회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20년 12월호, 박승찬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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