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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선교하는 신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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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6-12 ㅣ No.1824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선교하는 신앙인

 

 

신앙인은 선교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의 정체성은 세례와 성사 생활을 통해 형성되고 성장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신앙인의 정체성은 복음화의 사명 수행 속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신앙인은 복음을 선포하고 선교의 사명을 수행할 때 자신의 정체성을 더 확연하게 나타내고 정립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교회의 정체성은 교회의 본질과 사명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이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궁전이라면 교회의 사명은 복음화와 선교에 있습니다. ‘교회’라는 말을 ‘신앙인’이라는 말로 바꿔 생각해도 된다고 지난번에 말씀드렸습니다. 세례와 성사 생활을 통해 신앙인은 본질적 차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지만, 복음 선포에 대한 헌신을 통해 신앙인은 일종의 사명적 차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교회의 목적과 사명이 선교에 있는 것처럼, 신앙인의 목적과 사명 역시 선교에 있습니다. 복음화와 선교 사명을 수행할 때 신앙인, 진정한 신앙인이 되어간다는 뜻입니다. 사실, 오늘날 어떤 존재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그 존재적 본질에 강조점을 두기보다는 그 존재가 수행하는 사명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신앙인은 세례와 성사 생활을 통해 그 존재적 본질 차원에서 신앙인의 정체성을 획득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이승의 삶 속에서 종말론적 완성을 향한 과정의 존재, 즉 되어감의 존재입니다. 어떤 신앙인이 진정한 신앙인이 되어갈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선교 사명 수행에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선교의 본질과 수행 방식

 

신앙인의 사명은 선교에 있습니다. 선교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복음 선포는 단순히 “수많은 교리를 두서없이 전달하고 이를 끈질기게 강요하려고 집착”하는 일이 아닙니다. 복음 선포는 “본질적인 것에, 곧 가장 아름답고 가장 크고 가장 매력적이면서 가장 필요한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복음의 기쁨’, 35항). 선교는 교리와 종교적 관습을 전하는 일이라기보다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리와 종교적 관습을 가르치고 지키는 일은 복음과 복음 선포를 위해 있는 일입니다. 교리와 종교적 관습이 복음보다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인은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이 수행하는 선포의 핵심은 언제나 복음의 핵심에 기초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 선포에 있어서 가끔 핵심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의 구별과 순서를 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은총보다는 법을, 그리스도보다는 교회를, 그리고 하느님 말씀보다는 교황에 대하여 더 많은 말을 할 때,”(38항) 우리는 그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이념적 선택에 바탕을 둔 어떤 교리나 도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면,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 신선함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 ‘복음의 향기’가 나지 않을 위험이 있습니다.”(39항)

 

복음을 선포하는 방식과 태도는, 즉 선교의 방식과 태도는 무엇보다 사랑과 자비의 방식과 태도여야 합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의 활동은 성령의 내적 은총을 가장 완벽하게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며, “자비가 모든 덕 가운데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37항) 사실, 현대인들은 선포되는 것의 내용보다 선포되는 방식에 더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즉, 아무리 좋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의 태도와 방식이 복음적 방식이 아니면, 즉 사랑과 자비의 태도와 방식이 아니면, 메시지는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종교적 가르침이 복음 선포자의 생활 방식에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42항)

 

 

현실 문화 속에서의 선교

 

복음화 사명 수행은 언제나 인간의 언어와 인간이 살아가는 구체적 문화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45항 참조) “오늘날 거대하고 급격한 문화적 변화는, 영원한 진리의 새로움을 끊임없이 깨닫게 해 주는 언어 안에서 우리가 진리 표현 방법을 계속해서 찾으라고 요청합니다.”(41항) 언어와 문화의 변화 속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새로운 표현의 방식을 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현대의 복음 선포에 있어서, 신앙 진리의 그 본질적 내용의 변화가 아니라 그 표현 방식의 변화와 쇄신은 필수적입니다. 즉, 정통 교리의 언어는 서로 다른 시대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되고 쇄신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교리 조문에 집착한 나머지 본질을 전하지 못”(41항) 할 수도 있습니다.

 

종교적 관습과 규범 역시 바뀐 문화 속에서 늘 변화되고 쇄신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어떤 관습은 비록 오랜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이제는 예전과 똑같이 이해되지 않으며, 그 메시지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습니다. 일부 관습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복음을 전하는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두려움 없이 이러한 것들을 재고하여야 합니다.”(43항)

 

종교적 관습과 더불어 교회의 규칙과 규범 역시 시대와 문화의 상황 속에서 재고되고 쇄신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규칙과 규범은 구원의 해방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규칙과 규범이 신앙인의 삶에 짐이 되고 구속과 옥죔으로 작동된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을 종살이로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43항 참조) 현실 문화 속에서의 복음 선포와 선교를 위해 우리는 관습과 규칙과 규범을 복음에 비추어 늘 식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관습과 규칙과 규범을 전하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열린 마음과 태도를 지닌 신앙인

 

출발하는 신앙인, 복음을 선포하는 신앙인, 선교하는 신앙인은 언제나 열린 마음과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선교의 자리에서 교회와 신앙인에게 절실히 필요한 마음과 태도는 개방성입니다. “우리는 자주 은총의 촉진자보다는 은총의 세리처럼 행동합니다.”(47항) 선교하는 신앙인은 언제나 마음을 열고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있고 또 모든 사람에게 가닿아야 합니다.(48항 참조)

 

선교하는 신앙인은 자기 보존에 힘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신앙인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 받고 더럽혀진 신앙인을 저는 더 좋아합니다. 저는 중심이 되려고 노심초사하다가 집착과 절차의 거미줄에 사로잡히고 마는 신앙인을 원하지 않습니다.”(49항. 원문에는 ‘신앙인’이 아니라 ‘교회’라는 용어로 되어 있습니다)

 

선교하는 신앙인은 “우리에게 거짓 안도감을 주는 조직들 안에, 우리를 가혹한 심판관으로 만드는 규칙들 안에, 그리고 우리를 안심시키는 습관들 안에 갇혀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며”(49항) 용기 있게 열린 마음과 태도로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6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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