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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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길 위의 사람들: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님 마음으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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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5-11 ㅣ No.808

[길 위의 사람들]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님 마음으로 살기

 

 

- 카나 혼인잔치, 브라디 바르트 작.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은 온 우주에 흘러넘칩니다. 누구에게도 제외됨 없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비를 내려 주시는(마태 5,45) 하느님의 자비는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님의 중재를 통해 우리에게 더 확연히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마테르 데이(Mater Dei)’는 하느님을 뜻하는 ‘테오(Θεός)’와 출산이라는 뜻의 ‘토코스(τόκος)’라는 말이 합쳐진 고대 그리스어 테오토코스(Theotokos)에서 유래됩니다. 이는 성모님을 부르는 또 하나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성모님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를 방문하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 1,43)라고 고백한 것에서 이미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고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이십니다. 이 신앙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이심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고백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사도 요한에게 성모님을 그의 어머니라고 일러 주십니다. 영광스럽게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도 되게 하신 것입니다.

 

어머니의 중재는 모성애로 자녀들을 돌봄을 통해 더 섬세하게 표현됩니다. 이 돌봄의 모델로 요한 복음사가는 성모님을 제시합니다. 카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은 예수님께 잔칫집에 술이 떨어졌음을 알리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직 당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청을 거절하십니다. 그런데도 성모님은 과방장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요한 2,5)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첫 표징은 성모님의 모성적 돌봄이 바탕이 되어 우리에게 드러납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당신의 아드님과 우리 사이에 계십니다. 제가 속한 수녀원 회헌에도 ‘타인에 대한 주의 깊고 섬세한 봉사’라는 문구로 성모님의 모성적 돌봄을 표현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고통을 위로하시면서 어디서나 모성적 축복으로 마음의 평화를 내려주시니 감사드릴 뿐입니다. 또한 성모님께서는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충실한 믿음으로 당신께 주어진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셨기에 우리 인생 여정에 모범이 되십니다. 특별히, 한 가정의 어머니들은 성모님의 모성적 사랑을 훨씬 더 잘 공감하리라 생각됩니다.

 

사람들에게 품위를 되찾아 주는 우리의 애덕은 ‘성모님의 마음’을 토대로 한 모성적 사랑에서 비롯될 때 하느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우리 수녀원에 계시는 김정희 에프렘 수녀님은 96세의 고령이시지만 여전히 사무실에 나가십니다. 수녀님은 새벽 4시40분이면 방문을 열고 성당으로 향하십니다. 수녀님의 하루는 청하는 사람들에게 축복기도를 해주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9시가 되면 출근 가방을 들고 수녀원 옆에 있는 ‘평화쉼터’로 출근하십니다. 거기서 온종일 전화로 혹은 직접 찾아오는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오후 4시가 되면 영락없이 퇴근하십니다. 돌아와서는 책상에 모신 성모상 앞에 앉아 ‘성모님, 제 마음이 성모님의 마음이 되고, 제 모습이 성모님의 모습을 닮을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시고, 다시 하느님께 조배 드리기 위해 성당으로 발길을 옮기십니다. 수녀님의 하루는 기도입니다.

 

수녀님은 충남 합덕공소 출신입니다. 아버지 김창배 베네딕도와 어머니 이 아녜스 사이에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아버지는 매일 밤 긴 시간 기도하셔서 수녀님은 어려서부터 기도에 익숙했습니다. 20세가 되던 1945년 가을, 수녀님은 수녀원에 입회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수녀원에 홀로 찾아오셔서 “수도자는 기도하는 사람이다”라는 한마디 말씀을 남기고 선종하셨습니다. 수녀님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끝기도를 마치면 언제나 수녀원 내부에 있는 성모 동굴에 가서 좋은 수녀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는 헛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하느님 사람의 삶이 그렇듯 에프렘 수녀님에게 치유 은사가 함께하기 전에 거쳐야 할 의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고통’입니다. 고통은 하느님께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문입니다. 수도 생활 초기, 몸이 약했던 수녀님은 첫 서원전부터 신장결핵을 앓았습니다. 그런데 종신서원 준비 피정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이 온전해졌습니다. 종신서원 후, 본당 소임을 거쳐 청량리 성 바오로 병원 원목 소임을 시작한 것이 54세였습니다.

 

 

기도하는 수녀님의 마음은 성모님의 마음을 닮아

 

에프렘 수녀님은 제일 먼저 작은 사무실에 성모상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환자를 만나러 가기 전에 성모님께 전구를 청했습니다. “성모님, 오늘은 5월 첫날 성모성월이니 무슨 일이 있으면 성모님께서 도와주셔야 해요.”하고는 병실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다섯 살쯤 되는 여아가 거의 살 가망성이 없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수녀님은 난감해하며 울고 있는 아이 엄마한테 다가가서 “어머니, 이 아이를 살려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니까 믿고 기도하면 응답이 있을 것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성모님, 제가 조금 전에 부탁했으니, 이 아이를 살려 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 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아이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아이 엄마에게는 신자가 아니지만 ‘성모님, 우리 아이 살려 주세요.’하는 것이 기도이니, 그렇게 말씀드리라고 일러주고는 다른 환자를 찾아갔습니다.

 

한 시간 후, 다시 병실에 들렀더니 다 죽어가던 아이가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기쁨에 찬 수녀님은 차분하게 “아이가 뭐라도 먹어야 정상이니 기도를 더 하세요.”라고 아이 엄마에게 당부했습니다. 다시 병실에 가보니 아이가 음식을 먹고 있어 감사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마리아는 삼 일 후 퇴원했습니다. 이 일이 에프렘 수녀님이 하느님께 은혜를 받은 첫 번째 치유 이야기입니다.

 

그 후 에프렘 수녀님은 치유 은사를 받으신 분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집니다. 수녀님의 기도를 통해 수없이 많은 은혜가 쏟아져 내리는데 그 바탕에는 모성적 사랑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 억울하게 고통 받는 이들, 악령에 시달리는 사람을 위해 연민 어린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그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본래의 품위를 되찾도록 도와주십니다. 전국에서뿐만 아니라 먼 이국에서 남녀노소,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를 불문하고 아쉬움이 있을 때 수녀님의 기도를 받은 후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회복되어갑니다.

 

수녀님의 기도는 간결합니다. 아기처럼 단순하게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그 사람이 온전해지기를 청하는 중재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수녀님의 마음이 성모님의 마음을 닮았다고 하는 표현이 적절합니다. 수녀님의 내외적 치유, 구마, 주의 깊게 들음에는 우리에 대한 성모님의 모성이 잘 드러납니다. 모성은 모든 것을 품고, 모든 것을 알아차립니다. 연민에 찬 어머니의 마음으로 단순하게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주는 에프렘 수녀님이 오래도록 우리 곁에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5월호, 이은주 마리 헬렌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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