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전례ㅣ교회음악

서울주보 음악칼럼: 사순 시기에 듣는 두 곡의 미제레레(Miserere)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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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3-16 ㅣ No.2825

[온라인 서울주보 음악칼럼] 사순 시기에 듣는 두 곡의 미제레레(Miserere)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3월,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바흐의 <마태수난곡>과 <요한수난곡>을 많이 듣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알레그리(Gregorio Allegri 1582~1652, 이탈리아)라는 작곡가의 <미제레레 Miserere>를 들으면서 마음을 경건하게 다잡기도 합니다. <미제레레>의 노랫말은 성경의 시편 51편 Miserere mei, Deus(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로 시작하는 부분입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죄를 참회하며 주님께 죄를 깨끗이 씻어달라고 간청하는 내용입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 전의 성주간에 사용하기 위해 작곡되었다는 이 곡은, 교회 밖으로 유출되는 것이 금지되어 소문으로만 알려진 곡이었으나 음악 천재 모차르트가 성당 안에서 단 한 번 듣고 나와 악보로 옮겨 전해졌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유명한 일화가 있는 곡입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이 곡을 유서 깊은 성당에서 듣고 있다고 상상하노라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다 못해 바닥에 엎드리고 싶은 심경이 됩니다. 그러다 마침내 내 ‘부서지고 꺾인 마음’이 주님의 은총으로 눈같이 희어지고 새로워져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끼게 됩니다.

 

한 곡의 <미제레레 Miserere>를 더 소개합니다.

 

이 곡의 가사는 성경과는 무관합니다. 속세에서 적당히 살아온 한 사내의 회한에 넘치는 자기 고백입니다. 어쩌면 우리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인생 후반에 느낄법한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곡의 작곡가는 주케로(Zucchero)라는 예명의 이탈리아 대중음악가입니다. 그는 ‘이탈리안 블루스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유럽에서 흔치 않은 블루스 음악가이고, 발라드, R&B, 락 음악을 하는 사람입니다. 주케로는 ‘설탕’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외모는 언뜻 터프해 보이지만 설탕처럼 스위트하고 귀여운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음악 감상: 13면 QR 스캔).

 

그가 우리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것은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와 함께 한 무대 덕분입니다. 클래식 음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 이름을 다 아는 파바로티는 57세이던 1992년부터 12년간 자기 고향인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파바로티와 친구들’(Pavarotti & Friends)이라는 이름으로 스팅, 보노, 밥 겔도프, 브라이언 메이 같은 유명 팝스타들과 함께하는 자선공연을 여러 번 열었습니다. 과테말라, 코소보, 리베리아, 보스니아 등 전쟁, 분쟁지역의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이었습니다.

 

많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팝뮤직이나 월드뮤직으로 크로스오버 활동을 할 때도 파바로티는 주로 클래식 음악에만 전념해왔기에 그가 팝스타들과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클래식 애호가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환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이가 그의 이런 행보에 대해서 연주기량이 떨어져서 그런 거라고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며 실망했죠. 제 주변에서도 ‘파바로티와 친구들’ 공연이 도무지 맘에 안 들었던 친구는 이렇게 투덜거렸습니다. ‘파바로티가 더 이상 친구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요.

 

아무튼 이 ‘파바로티와 친구들’의 첫 공연이었던 1992년 9월 27일 무대에서 파바로티는 주케로와 함께 이 <미제레레>를 불렀습니다. 그 공연 실황 음반이 발매됐을 때 저는 많은 노래 중에서 이 노래에 특히 마음이 끌렸습니다. 절절하게 호소하듯 부르는 두 남자의 노래가 어쩌면 그렇게 매력적이었을까요? 그들의 자기고백이 제 마음에 들어온 듯했습니다.

 

이 사순 시기에 드리는 우리의 진정한 참회와 고백도 이처럼 주님, 그분께 깊숙이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2021년 3월 14일 사순 제4주일 서울주보 8-9면, 임주빈 모니카(KBS프로듀서,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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