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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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칼럼: 오베라는 남자 - 아름다운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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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4-18 ㅣ No.1286

[영화칼럼] 영화 ‘오베라는 남자’ - 2015년 감독 하네스 홀름


아름다운 부활

 

 

‘오베’라는 스웨덴 남자가 있습니다. 59세로 까칠하기가 그지없어 뭐 하나 맘에 드는 것이 없습니다. 자기만 옳고, 자기 빼고는 다 바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눈에는 이상한 동네, 멍청한 이웃, 망가진 세상만 보입니다. 옛 물건의 유용성만 고집하고, 고쳐서 쓸 생각은 않고 새 것을 사는 젊은이들을 경멸합니다. 컴퓨터도 당연히 멀리합니다.

 

사소한 것 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그에게 ‘조금만 마음 편하게’, ‘조금만 느긋하게’는 무책임일 뿐입니다. 혼자일 수밖에 없겠지요. 43년 동안 근무한 철도회사에서 해고되었습니다. 함께 떠난 여행길에서 버스 전복 사고로 임신한 아이를 잃은 것은 물론 하반신까지 마비되는 ‘최고의 순간에 닥친 최악의 비극’ 속에서도 밝게 살아간 아내, 유일하게 자신을 감싸주고 이해했던 아내 소냐(이다 엥볼 분)도 6개월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을 흑백으로만 보는 그에게 유일한 색깔이었던 아내의 죽음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멈추게 했고, 완전한 어둠에 갇히게 했습니다. 더 이상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그는 죽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그게(자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옆집에 새로 이사 온, 그것도 이민자인 이란 출신의 여자 파르바네(바하르 파르스 분)와 그녀의 여섯 살 난 딸부터 방해를 합니다. 절묘하게도 시도를 하는 순간 트레일러로 벽을 긁고, 아이가 음식을 들고 와서는 문을 두드립니다.

 

그들만이 아닙니다. 기차역에서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죽으려다 한발 앞서 철로로 넘어져 죽을 뻔한 남자를 구해줍니다. 차고에서 몰래 자동차 배기가스를 이용하려 했지만, 때마침 기차역에서의 그의 용감한 선행을 취재하러 찾아온 여기자에게 발각되고 맙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아내에게 “어떻게든 당신에게 갈게.”라고 하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그때마다 실패합니다. 자꾸만 할 일도 생깁니다. 창문을 고치려다 사다리에서 떨어진 파르바네의 남편을 병원에 데려가고, 파르바네에게 운전도 가르치고, 이웃 소년의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도 넣어주고, 의절한 이웃 친구의 아내가 부탁한 난방기도 고쳐줍니다. 이웃들과 합심해 친구가 아내와 헤어져 혼자서 요양원으로 가는 것도 막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둘 생깁니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너그러움,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기면서 깜깜했던 그의 세상도 빛깔을 띠기 시작합니다. 그의 아내는 “모든 어둠을 쫓아버리는 데는 한 줄기 빛이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 빛으로 오베(롤프 라스가드 분)는 새로운 삶을 맞이합니다. 살아가는 것을 멈추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법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이 모든 일들이 우연일까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결코 아닙니다. 이방인인 파르바네 가족을 통해 그에게 비춘 한 줄기 빛이야말로 주님의 손길일 것입니다. 그분은 보이시지는 않지만 “있는 나”(탈출 3,14)로 늘 우리 곁에 계시니까요. 휠체어에 의지해 살면서도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을 도왔던 아내가 그에게 진정으로 바란 것도 멈춤보다는 이렇게 살아있는 세상에서 누군가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는 아름다운 ‘부활’이 아닐까요.

 

[2022년 4월 17일 주님 부활 대축일 서울주보 8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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