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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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건축칼럼: 어떤 자리에서 세례를 받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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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1-09 ㅣ No.825

[건축칼럼] 어떤 자리에서 세례를 받으셨나요?

 

 

어떤 자리에서 세례성사를 받으셨나요?

 

초대교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요르단강에서 받으신 세례를 본받아 강가나 샘 등 자연적으로 흐르는 물에 몸을 담그게 해 세례를 주었습니다. 흐르는 물은 죄에서 벗어나 다시 사는 생명을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던 것이 2세기에는 도시의 주택을 성당으로 사용했고, 로마 제국의 박해를 피해 숨어서 예배를 드렸으므로 건물 안에서 세례반에 몸을 담그게 해 세례를 주었습니다.

 

세례를 주는 자리에는 몇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많은 어른 세례 지원자에게 세례성사를 거행하기 위해 따로 마련된 건물이나 성당의 한 부분을 세례당(堂) 또는 세례소(所)라고 합니다. 죽음으로 내려가는 것을 상징해 땅 밑으로 바닥을 낮추어 세례를 주는 곳은 세례반(盤)이고, 편리한 높이의 받침대에 세례수를 담는 그릇을 올려놓은 것은 세례대(臺)입니다. 세례반이나 세례대는 돌로 만들어졌고, 그 안은 금속을 덮은 다음 뚜껑을 잘 덮어 자물쇠를 채워놓았습니다.

 

초대교회의 비교적 큰 세례반에는 침수 세례를 위해 물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과 물에서 나오는 계단이 붙어있는데, 이는 각각 죽음과 부활을 나타냅니다. 세례반은 사방 2m이고,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이 서 있으면 넓적다리까지 잠기고, 무릎을 꿇고 앉으면 가슴까지 잠기도록 바닥이 70cm 정도 내려가 있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세례소는 유프라테스강 상류 지역 시리아의 두라에우로포스(Dura-Europos)에 위치한 232년쯤 개인 주택을 성당으로 바꾼 ‘주택 교회’에 있습니다. 50~70명이 모이는 작은 성당인데도 작은 세례소가 따로 마련되었고, 게다가 세례반 위 천장에는 푸른 하늘과 별이, 벽에는 ‘선한 목자’ 등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7세기 무렵 유럽에는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자 어른 영세자가 줄어들어 독립한 건물인 세례당이 사라졌습니다. 대신에 어린이 세례가 일반화되면서 세례반도 어린이 한 명이 담길 정도로 작아졌습니다. 여기에 받침대를 둔 세례대가 생겨 어린이는 세례대 위로 들어올려 물을 부었고, 어른은 세례대 위로 허리를 굽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성당에는 세례당도 없고 세례반, 세례대도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한정된 면적에 일 년에 몇 차례 사용하지 않는데 자리를 많이 차지하여 실용적이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의 물을 지나 제대에 이르는 구원의 여정을 생각하면, 성당에서 세례대와 제대는 같은 축 위에 놓여야 합니다. 물이 흘러나오는 샘 모양의 세례대까지는 아닐지라도 어떻게든 새로운 모습의 세례대나 세례반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2022년 1월 9일 주님 세례 축일 서울주보 7면,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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