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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내리신앙, 깊어가는 믿음: 손자 유아세례 주기 망설이는 아들 부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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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7-19 ㅣ No.1633

[내리신앙, 깊어가는 믿음] (9) 손자 유아세례 주기 망설이는 아들 부부에게


수호성인에게 자녀 맡기게 돼 냉혹한 세상에서 보호할 수 있어

 

 

“손자의 유아세례 건으로 신부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손자가 태어난 지 9개월에 접어들었음에도 아들과 며느리가 아직 손자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이유를 묻자, 아기가 성장해 제 의지로 종교를 선택하게 하고 싶다고 합니다. 두 사람 모두 3대째 가톨릭 신앙을 이어가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꼬마 때부터 주일학교에 나가고 혼배성사로 혼인했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동주는 별안간 엄마 곁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러더니 엄마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엄마의 머리 냄새를 킁킁거리며 한참을 맡더니 만족한 얼굴로 다시 친구들에게 돌아가 신나게 어울려 놀았습니다. 아이에게 이 ‘엄마 냄새’는 세상을 향해 가는 두려움을 이겨내게 해 주고, 친구들과의 작은 투닥거림에 위로를 주는, 그야말로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는 특별한 표지인 것이지요.

 

오스트리아의 발달심리학자 로렌츠(Konrad Lorenz)는 인공부화로 갓 태어난 새끼오리들이 태어나자마자 처음 보는 연구자를 어미 오리로 여기며 졸졸 따르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로렌츠는 이 현상을 보며 양육자와 아이가 심리적인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양육자와 맺은 관계가 이후 아이가 자아를 발달시켜나가고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결정적인 힘이라는 것도 밝힙니다. 이 관계를 ‘애착’이라고 합니다. 학자들은 갓 태어나서부터 세 살까지 부모와 건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한 아이는 자아존중감, 자아정체성, 가족정체성을 찾아갈 힘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 신앙인의 어린 시절에도 ‘하느님 냄새’와 같은 표지가 필요합니다. 하느님과의 ‘영적 애착’을 가진 아이는 세상의 어떤 냉엄함 속에서도 꿋꿋이 헤쳐 나가면서 다친 마음을 하느님 품 안에서 침묵 중에 위로받고 힘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심리적 애착이 3세 이전에 형성되듯이 제 경험으로는 영적 애착 또한 빨리 맺을수록 더욱 단단하게 맺어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유아세례는 한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때에 하느님과의 단단한 영적 애착의 고리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유아세례를 통해 하느님과의 단단한 고리를 갖게 된 아이는 어려움과 마주하는 순간 하느님의 냄새를 기억하고 곧장 그분 품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또한 그 안에서 무한한 사랑을 충전하고 다시 하느님 자녀로서 삶을 살아가겠지요.

 

교육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이 세상에 강제소환했으니, 스스로 세상을 헤치고 살아갈 수 있는 기술, 즉 의식주를 해결하는 법,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법 등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인생의 여정 중에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위기, 허탈감, 상실감, 좌절감 등을 헤칠 기술을 연마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홀로 머뭄이고, 침묵이고, 영적훈련입니다. 그 첫 단추가 ‘엄마 냄새’ 같은 ‘하느님 냄새’를 갖게 해주는 것입니다.

 

자녀가 어릴 때 유아세례를 베푸는 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저는 두 가지 의미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세상의 냉엄함 속에서 자녀가 천사의 보호 속에 놓이도록 맡겨드리려는 것입니다. 부모는 어린이집에서, 학교에서, 또 아이가 마주할 다양한 상황 속에서 언제나 자녀의 보호자로 현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시편 90)하신 말씀처럼 세례명을 줌으로써 수호성인에게 아이의 삶을 맡기고 의탁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부모가 어찌할 수 없는 위험의 순간, 세상의 죄에 노출되는 그 순간 악이 감히 접근할 수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세례 때 사제는 물로 세례를 베푼 후 이마 위에 크리스마 성유를 십자 모양으로 바름으로써 성령의 인호를 새깁니다. 이것을 과거에는 불도장을 새긴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악의 존재가 감히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느님의 것’이라는 표식을 남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유아세례는 부모의 부재에서도 자녀들의 현재와 미래를 하느님의 보호 속에 놓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더 나아가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자라서 신앙을 이해하고 스스로 세례를 청하기를 바라야 할까요? 하지만 이것은 성령에 대한 믿음이 없음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한 아기에게 세례를 주면 성령이 그 아기 안에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성령께서는 아기가 훗날 꽃피우게 될 그리스도인의 덕성들을 키우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모두에게 특히 모든 아기들에게 기회를 주어야만 합니다. 이들의 삶 전체를 인도해주실 성령을 맞아들일 이 기회를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세례 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손자에게 하루빨리 세례를 주고 싶으신 마음을 자녀 내외에게 잘 전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신자의 의무를 강조하기보다 수호천사를 붙여주고 성령의 인호를 새겨주고 싶었던, 자녀를 키우면서 느꼈던 그 마음을 전달하면 어떨까요? 자녀 내외가 손자에게 세상의 무엇보다 가장 귀한 것, 바로 신앙을 이어줄 마음을 갖도록 부모님 자신의 나눔을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님께서 자녀들에게 세례를 주고 신앙 안에서 키우려고 했던 그 이유와 그 안에서 발견했던 성령의 도우심을 말입니다. 결국 자녀들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의 자녀에게도 가장 먼저 해 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 자녀, 손자녀들의 신앙 이어주기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 조부모들은 이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지면을 통해서 답하겠습니다. 이메일 : hatsal94@hanmail.net

 

[가톨릭신문, 2021년 7월 18일, 조재연 신부(햇살사목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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