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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신년 특집: 미소 짓게 하는 미소 - 영원 · 사랑 · 깨달음 품은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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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1-10 ㅣ No.827

신년 특집 - 미소 짓게 하는 미소


영원 · 사랑 · 깨달음 품은 미소… 미소 짓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모든 이가 서로를 축복하며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세상 분위기도 활기차다. 황금빛 전망을 제시하고 평화와 희망을 노래한다.

 

인간 모두에게는 자신뿐 아니라 상대에게 행복과 기쁨, 활력을 주는 것이 있다. 바로 ‘미소’이다. 프랑스 소설가 소피 쇼보는 저서 「미소」에서 “미소 없이는 사랑도 없다”고 했다. 그는 또 “미소는 ‘베풂’이고 고집스럽게 혹은 순박하게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새해 모든 이가 서로에게 미소 짓고 배려할 줄 알며 사랑하고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살길 희망하며 ‘미소’에 관해 알아본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의 예수는 당신 생명과 맞바꿔 완성하신 인간 구원에 미소를 지으신다. 이 미소는 영원의 미소이며 그 속성은 자비이다.

 

 

영원의 미소 - 피에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성미술 작품이 ‘피에타’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의 주검을 품고 비통해 하는 성모 마리아를 형상화한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피에타와 정면으로 마주한 이들은 볼 수 없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예수님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있다. ‘영원의 미소’이다. 하느님께서 당신 생명과 인간 생명을 맞바꿔 완성하신 구원 사업에 흡족해 지으신 미소이다. 이 미소는 인간과 세상 만물을 창조할 때 ‘보시니 참 좋았다’며 지으신 바로 그 미소이다. 그래서 피에타의 예수님 미소는 ‘영원’를 표징한다. 이 미소의 속성은 바로 ‘자비’이다. 자비는 ‘베풂’이고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이 영원의 미소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만이 교감하는 미소이다. 아들을 품에 안은 성모님조차, 예수님의 주검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순례자조차 예수님의 이 미소를 보지 못한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서로에게 미소 지으신다. 환한 웃음이 아니라 미소이다. 미소와 웃음은 분명 다르다. 미소는 웃음의 흔적이 아니라 독자적인 영역에 속한다. 미소는 영혼 깊은 데서 생성된 기쁨이다. 아울러 미소는 거룩하고 선한 본성에서 뻗쳐나오는 빛이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의 하느님만이 창조와 인간 구원의 역사 안에서 주님의 선한 미소를 교감하신다.

 

주님께서 지으신 영원의 미소는 그분을 닮은 선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신비롭게 드러난다. 이들은 사랑으로 하느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들이다.(에페 1,4) 이들은 무한한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가정을 부양하고자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남녀, 병자들, 한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노 수도자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들을 ‘교회의 중산층’이라고 한다. 이들의 미소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영원의 미소이다. 이들은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다.

 

스페인 톨레도대성당의 성모자상은 아기 예수에 대한 성모님의 무한한 사랑을 드러낸다. 이 사랑의 미소는 보는 이를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안내한다.

 

 

사랑의 미소 - 톨레도대성당 성모상

 

스페인 톨레도대성당에는 ‘스페인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14세기 성모자상이 있다. 성모님께서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고 있는 아기 예수를 자애로운 눈길로 쳐다보며 미소 짓고 있다.

 

이 미소는 사랑스러운 아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피어난 미소이다. 본다는 것은 인간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사유도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에 신학자 칼 라너 신부는 “우리는 사람의 눈을 보고 그 두려움과 그리움, 오만, 자비와 선함, 악함과 시기, 경멸과 질투, 거짓을 모두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보는 것은 단지 사물을 인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본성을 관통한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 교감한다.

 

이 교감은 ‘만남’을 통해 ‘사랑’으로 드러난다. 성모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의 발현을 보고, 그의 말을 들음으로써 하느님을 당신 아들로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태중에서 하느님과의 첫 만남을 통해, 그리고 탄생하신 아기 예수와의 첫 대면을 통해 사랑을 고백했다. 성모님의 이 사랑의 미소는 너를 사랑하겠다는 아기 예수께 대한 무언의 약속이며, 너를 위해 모든 걸 내어 주겠다는 다짐이다.

 

사랑의 미소는 자비의 미소와 깨달음의 미소와 더불어 영원으로 인간을 이끈다. 아기 예수께 짓는 성모님의 무한한 사랑의 미소는 이를 보는 이로 하여금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안내한다.

 

한국미를 대표하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미소는 그 어떤 설법보다 웅변적인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의 미소’라 평한다. 소장처 및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깨달음의 미소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한국미를 대표하는 미소가 있다. 바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지난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기되기 전까지 국보 제78호와 제83호로 불렸던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 삼국시대 불상이다. 이름 그대로 미륵보살이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에 올린 채 깊은 사색에 빠져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한쪽 발을 올려놓았다고 해서 ‘반가’(半跏), 깊이 생각하고 있다고 해서 ‘사유’(思惟)라고 이름 붙였다. 미륵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하기 위해 미래에 도래하는 부처이다. 그는 56억 7000만 년의 윤회 끝에 그 마지막 단계인 도솔천에서 수행하며 어떻게 하면 이 땅의 중생들을 모두 불교의 가르침으로 이끌 것인지, 그들에게 어떻게 불국토를 보여줄 것인지 명상에 빠져 있다고 한다. 이를 표현한 것이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앉아 있는 것은 ‘머묾’을 뜻한다. 하염없이 헤매는 움직임을 순간 멈추게 하고 생각에 빠지게 하는 행위가 바로 ‘앉음’이다. 앉을 때 비로소 사유하게 된다. 이 머묾은 ‘복된 쉼’이다. 그래서 고대 삼국시대 사람들은 도솔천의 미륵보살은 앉아서 사유하는 모습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미소는 한없이 깊다. 입꼬리가 살포시 올라간 것이 오묘하고, 입술의 옅은 움직임이 성스럽고 자비롭다. 이 미소에 마주한 사람들은 종교와 사상, 철학,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편안함을 느낀다. ‘염화시중’(拈華示衆). 가히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미소는 그 어떤 설법보다 웅변적인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에 사람들은 ‘진리와 영생을 깨친 깨달음의 미소’라고 평한다. 바로 ‘해탈’의 경지이다.

 

소설가 소비 쇼보는 “미소의 고귀함은 종교의 덕성이 지닌 숭고함에 비견할 만하다”고 강조한다. 미소는 상대를 향한 것이자 자기 내면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쇼보는 “미소가 없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내 몸과 영혼을 맡겨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한다.

 

새해를 맞아 하느님의 자비와 부처님의 정심(正心), 성모님의 사랑이 담긴 미소에 관해 묵상해 보았다. 미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드러낸다. 그것이 부처님의 불심이든, 하느님의 본성이든 따질 이유는 없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미소와 피에타의 미소, 톨레도대성당의 성모자상의 미소가 똑같다 할 만큼 닮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소가 사람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이가 올 한해 한시도 미소를 잃지 말길 소망한다. 미소 짓는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반영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1월 9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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