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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황 회칙 모든 형제들로 배우는 사회교리: 제1장 닫힌 세상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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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5-20 ㅣ No.1867

[교황 회칙으로 배우는 사회교리] 제1장 닫힌 세상의 그림자

 

 

네가 잘 되어야 나도 잘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배운 것 중 하나는 ‘네가 잘 되어야 나도 잘된다.’는 사실입니다. 나 홀로 백신을 맞고 마스크를 쓰고 소독을 해도 어디선가 방역의 둑이 터지면 내 일상도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내가 만날 사람이 감염이 됐거나 가려던 카페나 식당이 문을 닫으면 원치 않은 독거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남의 사정은 아랑곳 않고 경쟁하듯 자기를 앞세우던 삶은 그렇게 파국을 맞았습니다.

 

교황님은 사회 회칙 「모든 형제들」의 제1장에서 ‘너와 내가 함께 잘 되는 삶’에 걸림돌이 되는 현대 세계의 경향을 짚어주십니다. 보편적인 형제애를 배반하고 너를 없애야 내가 잘된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닫힌 세상의 그림자를 살펴봅시다.

 

 

부서진 꿈들

 

「모든 형제들」 회칙은 먼저 구시대적 분쟁과 극우 민족주의가 되살아나는 한편 조절되지 않는 경제 권력이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문화를 획일화시키고 개인과 나라를 갈라놓는 ‘분할 통치’의 현실을 지적합니다. 민족이나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세대 간의 연대, 다양한 공동체를 통한 수평적인 연대가 시장의 전횡 앞에 꼬리를 내립니다. 누구도 뿌리 없는 사람은 없는데 오늘의 이데올로기는 ‘역사를 경시하고 세대를 넘어 전수된 영적 인간적 풍요로움을 거부’(13항)하게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수평적 수직적 연대가 허물어지는 가운데 ‘시장은 늘어나지만 개인은 소비자나 구경꾼’(12항)으로 전락하면서 고독에 내몰립니다.

 

 

모든 이를 위한 계획의 부족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과장과 극단화와 양극화의 정치 메커니즘이 동원되면서 모든 이의 발전과 공동선을 위한 장기 계획에 관한 건강한 토론으로서의 정치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최근 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정치는 그저 이기려고 다투는 저열한 싸움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길 수만 있다면 어떤 수단이나 과정이라도 상관없다는 듯 모략과 흑색선전을 퍼뜨리고 무책임한 말을 쏟아내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신앙인들 가운데서도 스스로는 지키지도 않을 명분을 내세우며 폭력적인 언사를 내뱉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요.

 

생태 문제나 사회적 불평등 문제처럼 함께 대처해야 할 문제들도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 간의 세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전쟁, 테러, 인종적 종교적 박해, 인권 침해 같은 문제들은 특정 이해관계에 적합한지에 따라 달리 판단됩니다. 한 권력자에게 편리할 때는 참이던 것이 그의 이득과 무관해 지면 더이상 참이 아닙니다.(25항) 이제 ‘내로남불’은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한 현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눈앞의 이득에 급급하니 사람이든 자원이든 쓰고 버리는 일이 너무 쉽게 일어납니다. 가난한 이들, 장애인, 태아 같이 ‘아직 쓸모없는’ 존재, 노인처럼 ‘더이상 쓸모없는 존재’를 버리고 갑니다. 이윤 때문에 사람의 일자리를 없앱니다. 결과적으로 ‘부는 증대되지만 평등은 없었고’,'새로운 형태의 빈곤이 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21항)

 

 

공동 항로 없는 세계화와 진보

 

현대 세계에서는 한 인류라는 소속감이 약화되고, 정의와 평화를 함께 건설하려는 꿈은 시대에 뒤떨어진 이상향으로 여겨집니다.(30항) 공동 항로 없이 내달리는 세상에서 과학과 기술 혁신의 성장은 평등과 사회적 포용을 뒤로 한 채 고립과 대립의 방법으로 악용됩니다.

 

예컨대 먹거리에서부터 연예인, 심지어 방역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에 ‘K’를 붙여가며 우월감을 즐기던 우리 사회에서 인류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보다 더 비싼 백신을 내놓으라며 아우성치던 성난 사람들은, 아스트라제네카가 이윤을 포기하고 기술을 공개하는 그 의도를 따라 하려는 마음은 품지 못했습니다. 화장실 물 내리는 작은 동작조차 귀찮아서 자동화하는 첨단 산업국가 대한민국 국민은 자신들이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는 환경 재해의 주범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내가 편한 만큼 누군가는 고생해야 한다는 단순하고 확실한 진리 앞에 애써 눈을 감고 귀를 막는 것입니다.

 

 

감염병의 전 세계 확산과 역사상 또 다른 재앙들

 

한편 우리는 ‘가상 현실의 죄수가 되어 현실의 맛과 풍미를 잃었습니다.’(33항) 인간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열광적 소비주의와 이기적 자기 보호’(35항)에만 빠져 감염병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이번 감염병 사태는 앞서 말씀드렸듯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교훈을 줍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교훈을 무시하면서 여전히 소비와 자기애의 쳇바퀴를 돌립니다. ‘각자도생’을 거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변질된 문화는 구체적인 현실과의 접촉을 잃고 그 자리를 가상 현실로 갈음한 우리가 자초한 것이었습니다. 소비적이고 안락한 고립에 안주하면서 대면 접촉에서는 있을 수 없는 공격성을 서로에게 표출하는 오늘의 병리적 현상, 신앙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도를 지나친 비방과 폭언이 난무하며 모든 도덕 기준과 타인의 명예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는’(40항) 현실에 신앙인들 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황님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이렇게 소개 하십니다. ‘뿌리가 없다는 느낌, 아무 데도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보다 더 나쁜 소외의 형태는 없습니다.’, ‘땅이 비옥해지고 민족이 결실을 맺으며 미래를 창출하려면, 구성원들 사이에 소속감을 증진하고, 세대 간 통합의 유대, 그리고 다양한 공동체 간 통합의 유대를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를 서로 멀어지게 하고 무감각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53항)

 

 

희망

 

이렇게 무시할 수 없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짐에도, 교황님은 어두운 경고가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를 보여주려고 하십니다. 감염병 사태 속에서도 세상을 지탱해 온 평범한 사람들, 그 누구도 혼자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계속해서 인류에게 좋은 씨를 뿌려 주셨지요.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내린 열망, 삶을 더욱 아름답고 품위 있게 해 주는 위대한 이상을 추구하는 열망이 인간에게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개인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좁은 시야와 눈앞의 안전이나 이익에만 매달리는 협량한 태도를 넘어서 참되고 옳고 아름다운 것을 갈구하는 인간의 이 근본적인 열망을 교황님은 희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순 시기를 지나 부활 축제를 보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것을 바라고 뭇사람에게 어떤 희망을 보여줄 수 있을지 깊이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월간빛, 2022년 5월호, 박용욱 미카엘 신부(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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