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도서 지역의 외국인 선교사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4-13 ㅣ No.1361

[빛과 소금] 도서(島嶼) 지역의 외국인 선교사 (1)

 

 

유학 생활을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돈독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사제가 있다. 그는 한국외방선교회의 유가별 예레미야 신부이다. 사제가 되자마자 유학 생활을 시작했고, 10년간의 유학을 마치자마자, 그는 아프리카 모잠비크로 선교를 떠날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터졌고, 1년간이나 그 나라에 들어갈 방법을 찾다가 드디어 다음 달에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떠나기 전 아쉬운 마음을 담아 신부님을 만났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신부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 “신부님, 선교도 좋지만, 코로나-19가 심한 이 순간이 지나고 난 뒤에 가시는 건 어때요?” 나의 질문에 신부님은 눈빛을 반짝이며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신부님, 저는 사제이자, 선교사예요. 먼 타지에는 하느님의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하느님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셔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느님으로 마음이 가득 찬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사제들의 마음에 불씨가 되어주는 선교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인천이라는 땅에 들어와 하느님을 전한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들이었다. 1961년 인천대목구를 메리놀 외방전교회가 담당하기로 결정된 뒤에, 많은 선교사들이 인천 지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일제 식민지의 아픔과 동족끼리 전쟁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진정한 위로와 사랑이 필요함을 알고 있었다.

 

특히 메리놀 선교사들 중에는 육지와 떨어져 문명의 혜택을 접하기 힘든 도서 지방 사람들에게 파견되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번 주와 다음 주에는 ‘도서 지역의 외국인 선교사’로 큰 획을 그으신 세 분의 선교 사제이신 백령도 부영발 신부, 덕적도 최분도 신부, 강화도 전미카엘 신부를 만나보고자 한다.

 

먼저 살펴볼 사제는 백령도 복음화에 힘쓴 부영발 신부이다. 본명은 에드워드 모펫(Edaward Moffet)이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에 거주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대거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서해 각 섬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특히 백령도는 북한과 가깝고 언제든 통일이 되면 돌아가기를 원하는 실향민들로 가득했다. 부영발 신부도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중국이 공산화되자 추방되어 언젠가 중국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백령도와 연을 맺고 있었다. 오산기지 군종신부로 재직하며 백령도 미 공군기지를 왕래하던 부영발 신부는 1958년 메리놀 외방전교회가 인천 지역을 담당하자마자 백령도로 공식적인 파견을 청한다. 1959년 3월 공식적인 부임 초기에 성당 건물이 없어 이호연의 창고를 고쳐 임시 성당으로 사용했다. 그는 1959년 5월 9일 백령 본당으로 설정하며 복음화의 발걸음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영발 신부는 가난으로 인해 불안한 삶이 신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 있는 가톨릭 구제회(N.C.W.C)의 도움을 받아, 모금한 돈으로 백령도 사람들에게 양곡을 지원해 주었고, 농사를 짓는 법을 알려주며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돌려받을 것을 생각하고 베푼 사랑이 아닌 무조건적인 사랑이었기에 백령도와 그 주위의 섬에서 그의 도움을 안 받은 사람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런 사제의 마음을 알게 된 많은 수의 백령도민이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신자라면 누구라도 세상 끝 날까지 하느님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마음으로 내려 행동한다는 것은 쉽지 않음을 안다. 부영발 신부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삶을 태워 그리스도의 빛을 만들고, 그 빛을 통해 하느님을 정확하게 바라보게 만든 흔적들을 기억해 본다. 그리고 우리도 선교사의 삶을 본받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증거 하기를 바라 본다. [2021년 4월 11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인천주보 3면, 이용현 베드로 신부(역사위원회 위원, 인천교회사연구소)]

 


[빛과 소금] 도서(島嶼) 지역의 외국인 선교사 (2)

 

 

선교사제 하면 떠오르는 분이 누가 있을까? 나는 고(故) 이태석 신부님(1962-2010)이 생각난다. 아프리카 수단의 남부에 있는 톤즈라는 작은 마을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셨다. 신부님의 이력은 독특하다. 부산에서 태어나 의대를 졸업하시고, 뛰어난 의사로서 살아가도 되셨을 텐데, 성소의 부르심을 받고 살레시오 수도회에 들어가 사제가 되셨다. 신부님은 사제로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간직한 말씀이 있었다. 마태오 복음 25장 40절의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란 말씀이다. 그 말씀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살아간 신부님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인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로 날아가셨다. 그곳에서 의사로서 사람들의 몸을 치료해 주시고, 사제로서 마음을 치료해 주셨다. 그리고 나라의 미래는 어린이들의 교육인 것을 아신 신부님은 학교를 지으시고, 직접 악기를 배워가며 학교에 브라스밴드를 만들어 내전(內戰)으로 갈라진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셨다. 그런 신부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톤즈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신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고백하게 되었다. 신부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 빛이 되었고, 그 빛을 바라본 사람들이 빛을 향해 걸어오게 만들었다. 급작스런 병마에 쓰러져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그분의 모습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어 많은 사제들, 수도자들이 선교를 위한 헌신을 하도록 이끌었다.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이 있다면 그 보다 먼저 인천교구 내에서 선교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한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가 있다. 그분의 이름은 고(故) 최분도(Zweber, Benedict) 신부이다. 1932년 미국 미네소타 랙빌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신부님은 둘째 형 메달도 즈베버에게 많이 의지했는데, 미8군에서 복무하다 1956년 8월, 한강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두 소년을 구출하고 자신의 생명을 내던진 둘째 형의 희생 모습을 보고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1959년 6월 사제가 된 최분도 신부님은 둘째 형의 헌신이 남아있는 한국으로의 선교를 지원했고, 1962년 연평도가 첫 부임지가 되었다. 신부님은 연평도에 도착하자마자 가난과 병고와 무지함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보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하느님 아버지! 무엇을 어떻게 하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신부님은 연평도의 보좌 신부로 있으면서 덕적도의 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선교를 해 나가면서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질병’과 ‘가난’이었다.

 

먼저 질병에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 주고 싶었던 신부님은 낡은 미군 함정을 인수하여 병원선으로 개조해 인천교구 주보성인이신 바다의 별 성모님을 따라 ‘바다의 별’이라 명명하고 진료를 나섰다. 또 ‘복자 유 베드로 병원’을 개설하여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주셨다. 다음으로는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려, 간척 사업, 김 양식 사업, 치수 사업을 통해 생활을 개선해 주었고, 발전기를 들여와 섬에 빛을 선사해 주셨다.

 

최분도 신부님의 헌신은 덕적도 사람들의 마음에 돌처럼 새겨져 잊히지 않고 기억되고 있으며, 그분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경험한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 선교사로 제자리에 멈추지 않고 신부님은 미국으로 돌아가 러시아로 선교를 청하고 ‘제2의 한국 프로젝트’를 시행하시던 도중 암선고를 받으시고 2001년 선종하셨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사람들은 그 사랑받는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최분도 신부님의 모습은 선교가 하느님을 억지로 심는 게 아니라 녹아들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최분도 신부님 선종 20주년을 맞는 올해 이 작은 글이 그분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선물이 되기를 바라본다. [2021년 4월 18일 부활 제3주일 인천주보 3면, 이용현 베드로 신부(천주교 인천교구역사관 관장)] 



1,01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