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레지오ㅣ성모신심

길 위의 사람들: 성모님의 피앗(Fiat)과 하나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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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6-12 ㅣ No.813

[길 위의 사람들] 성모님의 피앗(Fiát)과 하나 되어

 

 

“레지오 마리애 단원의 영혼은 성모님의 모습과 생각으로 가득히 채워져 두 영혼은 하나의 영혼이 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입니까? 우리가 하느님의 어머니와 하나 되어 지상 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착하심, 성모님의 탁월한 영적 감수성, 성모님의 구원 비사에 대한 침묵의 기도, 성모님의 깊은 신심을 모범 삼아 살아가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은 복됩니다. 교본을 연구하고, 성모님의 덕행을 묵상하고, 묵주기도의 신비를 관상하며 살아가면서 우리는 성모님과 하나의 영혼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성모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머니’라고 부르기만 해도 성모님께서는 “나의 아이야. 내가 여기 있다.” 하시면서 모성적 축복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 주실 것입니다.

 

참된 성모신심은 일상 안에서 성모님과 일치를 이루어 살면서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성모님께 자기를 봉헌하는 것은 놀랄만한 자기 성화를 이룹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성모님께서는 목숨을 내건 사랑을 하느님께 드리셨습니다. 성모님의 피앗(Fiát)은 죽음을 내포합니다. 당시에는 처녀가 잉태하면 돌로 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모든 것에 앞서 하느님의 뜻을 첫 자리에 두신 성모님께서는 결단을 내려 예수님을 낳고 돌보고 섬기셨습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돌보시듯 가족들이나 이웃을 돌본다면. 그들은 나로 인하여 생기를 되찾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영혼 안에서 주님을 뵙고, 섬기는 것이 모든 덕의 시작이며, 영성생활의 기초입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할 때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이 가르쳐준, “저의 모후, 저의 어머니시여! 저는 오직 당신의 것이오며 제가 가진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옵나이다”라는 기도가 살아나게 됩니다.

 

교본을 읽다가 토마스 아 캠피스(Thomas a Kempis)의 강론을 마주하면서 영혼의 길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살게 되도록 힘차게 성모님과 일치합시다!

 

“성모님과 더불어 즐겁게 살고, 성모님과 더불어 모든 시련을 견디어 내며, 성모님과 더불어 일하고, 성모님과 더불어 기도하고, 성모님과 더불어 여가를 즐기고, 성모님과 더불어 쉬어라. 성모님과 더불어 예수님을 찾아 나서서 그대의 팔에 예수님을 감싸 안고, 예수님 성모님과 더불어 나자렛에서 살 집을 마련하라. 성모님과 더불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십자가 곁에 머무르며, 그때 자신을 예수님과 함께 묻어라. 예수님 성모님과 더불어 부활하고, 예수님 성모님과 더불어 하늘나라에 올라, 예수님 성모님과 더불어 살고 죽으라.”(교본 49쪽)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돌보시듯 가족, 이웃 돌봐야

 

작년에 김천에서 만난 임마누엘 자매는 저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느님 가난하게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녀님, 이것이 제 기도의 골자입니다. 제가 만일 학식이 높고 가진 것이 많았다면, 교만해서 하느님을 찾지도 않았을 거예요.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철저히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을 허락하셨어요. 그리고 한 계단 한 계단씩 가난의 삶, 고통의 삶이 주는 은혜로 제 마음을 열어 주셨어요.

 

아직 젊은 저에게는 제 앞의 생이 크고 무거운 짐이어서 고달프게만 느껴졌지요. 어린 나이에 운명의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유대인이었어요. 저는 그분과의 결혼을 위해 먼 나라로 갔어요. 하지만 낯선 나라의 삶과 문화는 사랑 하나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워 고국으로 돌아올 결단을 내렸어요.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부모님 곁으로 돌아왔을 때 저는 임신 3개월이었어요. 혼자 아이를 낳고, 길렀어요. 그러던 중, 세 살배기 아기는 심한 고열에 시달리더니 중이염이 왔어요. 이로 인해 아기는 불행하게도 청각을 잃었어요. 저는 청각장애가 있는 딸을 키우며 살아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어요. 다행히도 제겐 착한 부모님이 계셔서 그분들의 도움과 사랑으로 어렵지만 기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었습니다.

 

청각장애가 있는 혼혈아를 키우면서 주위의 따가운 시선, 호기심 어린 눈빛과 부담스러운 질문들이 저를 짓눌렀어요. 제 등판에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것 같았어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있던 어느 날, 혼자서 성당을 찾아가 바로 교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세례받기 전, 신부님과 면담 중에 딸아이의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이바도 함께 세례를 받을 수 있게 해 보자고 하셨어요. 세례를 받은 후 저는 이바를 데리고 매일 미사에 참례했어요. 하느님은 제 삶의 빛이며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셨지요. 아무리 힘들어도 하느님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일까요. 필요한 때에 항상 적절한 도움을 주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라(마태 6,34)’고 하신 말씀대로 제가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도록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는 분이 제가 믿는 하느님이셨어요.

 

달랑 여행 가방 하나 들고 아이와 함께 캐나다 행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은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였어요.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아이를 위해 저는 엄마로서의 과감한 결단을 내려 낯선 땅에 발을 내딛었어요. 캐나다는 한국에서보다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가 훨씬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해서 내린 결단이었어요. 이바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엄마가 된 후, 달라진 제 모습이에요.

 

낯선 땅 캐나다에서는 영어 수화를 아주 잘 구사하는 생면부지의 한국인을 만났어요. 그분은 성모님처럼 다가와서 이바에게 매주 한 번씩 영어 수화를 가르쳤어요. 그분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 선생님은 천사 같은 모습을 지닌 하느님을 사랑하는 분이었어요. 그분의 도움으로 이바는 컬리지를 졸업할 수 있었지요. 그 후 이바는 빵과 케이크 그리고 커피를 아주 맛있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몇 해 전에는 ‘어린이들이 본 메주고리예’라는 책을 읽더니 자기도 토마 사도처럼 직접 가서 보고야 믿을 수 있겠다고 하더라고요. 아이의 청을 통해 성모님께서 저를 부르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져서 순례길을 나섰어요.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에 위치한 메주고리예에서는 지금까지 40년간 성모님께서 발현하신다고 해요. 이바가 그곳을 다녀와서는 “엄마, 메주고리예에 갔더니 마음이 참 편하고 좋았어요. 성모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평화로 채워졌어요.”라고 하며 미소를 머금었어요.

 

그 후 이바는 가톨릭 신자인 독일인 남자친구를 만났어요. 예의 바르고 수줍음이 많은 청년이었어요. 그 모습이 제 마음에 꼭 들었어요. 이 또한 성모님의 돌보심이지요. 지금 그 아이들은 결혼해서 성실한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에서 항상 하느님께서는 제 곁에 계셨어요. 제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끊이지 않은 것은 이웃을 통해 성모님께서 모성적 돌봄을 해주시는 덕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도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면서 살고 있어요. 이젠 고통이 기쁨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니까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6월호, 이은주 마리 헬렌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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