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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문화사에 따른 전례: 그레고리오성가의 발전(9-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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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9-20 ㅣ No.2151

[문화사에 따른 전례] 그레고리오성가의 발전(9-12세기)

 

 

그레고리오성가는 가톨릭의 전례음악이지만 넓게는 서양음악의 원천으로 최초의 고전음악이다. 중세 교회음악의 정착은 그레고리오성가의 제정으로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중세 유럽 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종교로 자리 잡으면서 그레고리오 1세 교황(590-604년 재위)은 지역별 예배와 그에 따른 음악을 정비하여 로마의 표준화된 전례 예식에 사용되는 음악을 제정하였는데, 그것이 그레고리오성가다.

 

600년 무렵부터 각 지역의 다양한 성가를 수집하고 창작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지만 완전한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은 800년 이후부터이다. 그레고리오성가의 정착 과정에서 얻어진 기보법, 교회선법, 성가의 형식, 연주 방법 등은 중세 교회음악의 토대가 되었다.

 

 

기보법과 다성음악의 탄생

 

그레고리오성가는 베네딕토수도원의 노력으로 유럽 전역의 수도원에 보급되었다. 이들 수도원 가운데에서도, 특히 성 갈렌(St. Gallen) 수도원은 그레고리오성가의사본을 소장한 수도원으로 유명하다. 이곳이 소장한 사본에 따르면 그레고리오성가는 800년 무렵 프랑크 지역에서 형태가 완성되었던 것 같다.

 

이 시기에 이르면서 서양음악에는 기보법과 다성음악이 나타났고, 음악 형식도 서서히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전례 거행에서 단선율로만 연주되던 그레고리오 성가는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다성부음악으로 연주되었다. 이에 따라 그레고리오성가는 점차 변화를 맞이하였다.

 

초기의 다성부음악은 그레고리오성가를 기초로 만들어졌으나 점차 새로이 창작된 선율과 심지어 세속 선율을 이용하면서 그레고리오성가가 지녔던 순수한 종교적 특성이 쇠퇴하는 경향도

보였다.

 

 

악보 전수로의 전환

 

음악의 기보법이 등장한 9세기 이전만 해도 그레고리오성가는 일정한 악보 없이 구전에 따른 가창 방법으로 전수되었다. 구체적으로는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 설립한 스콜라 칸토룸(Schola Cantorum)이라는 가창 학교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실베스테르 1세 교황(314-335년 재위과 힐라리오 교황(461-468년 재위) 때 스콜라 칸토룸과 흡사한 교육기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레고리오 1세 교황 때처럼 체계적, 발전적 교육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9세기가 되면서 구전에 따른 가창 방법은 점차 음악의 기보대로 부르는 가창 방법으로 바뀌었다. 초기의 기보 방식은 가사 억양에 따라 단순한 기호를 붙이는 것이었다. 이러한 단순한 기호를 ‘손짓’, ‘몸짓’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네우마’(neuma)라고 불렀다. 네우마는 음표의 내용을 표시하는 선, 점 등을 말한다.

 

네우마는 노래의 가사 위에 붙여졌는데, 단순히 선율의 음높이가 진행하는 방향만을 제시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네우마의 음높이를 정하는 데 선을 사용했다. 가장 초기에는 1-2개의 선이 사용되다가 점차 7-8개까지 증가하였으나 아레초의 귀도(980?-1050년?)에 의하여 4개의 선으로 정착되었다. 귀도는 4선보뿐만 아니라 ‘성 요한의 찬가’의 첫 음절을 따서 6음 음계를 창안하였고 이를 통하여 시창 방법도 고안했다. 현대의 계명도 귀도의 6음 음계 구성음인 (ut[do]), 레(re), 미(mi), 파(fa), 솔(sol), 라(la)에서 오늘 모습에 이르게 된다.

 

 

세속적 요소의 유입

 

중세 교회음악은 대부분 성경에 기초하지만 9세기 무렵부터는 성경과 무관한 세속적인 요소들이 유입되면서 여러 변화가 나타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배타적이던 비성서적 요소들이 서서히 전례 예식에 들어왔고, 지역에 따라서는 심지어 비성서적 또는 세속적인 요소들이 장려될 만큼 유입 속도가 빨랐다.

 

그러면서 북유럽 국가들은 점차 지역 특성에 맞는 음악을 추구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경향은 권위와 전통의 상징이던 로마 성가에도 변화를 주었다. 이러한 교회음악 창작 표현의 확대가 가져온 부산물은 트로푸스(tropus), 세쿠엔찌아(sequentia), 전례극, 콘둑투스(conductus) 등이다.

 

그동안 중세의 교회음악은 성직자들이나 교회에서 종사하는 음악가들이 주도하고 창작했지만 이 시기에는 교회에 속하지 않은 시인들과 음악가들의 가사와 음악이 교회음악에 활용되었다. 이들의 음악은 반드시 성경에 기초하지 않았고 자유롭게 창작되어서, 비성서적인 부분도 많았지만 음악적으로는 뛰어나고 기존 성가보다 인기가 더 있었다. 물론 이러한 곡들은 대중적이고 세속적인 요소가 많아서 교회음악으로서 문제점을 가져오기도 했다.

 

 

새로운 기보법

 

세쿠엔찌아와 트로푸스는 새로운 음악 형식이 아니라 새로운 기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세쿠엔찌아는 이후 하나의 음악 형식으로 자리 잡아 수적으로 많지는 않아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트로푸스는 13세기에 이르러 완전히 사라졌다. 세쿠엔찌아를 트로푸스의 일종으로 보지만 실제로 그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발생했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트로푸스는 기존 성가에 새로운 가사나 선율을 삽입하는 것을 말하는데, 초기에는 성가의 앞부분이나 끝부분에만 붙였지만 점차 성가의 중간 부분에도 덧붙여졌다. 성가에 삽입되는 방식을 보면, 하나는 기존하는 선율에 산문 형식의 새로운 가사를 붙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사에 사용되는 성가 안에 새로운 선율을, 때로 가사와 함께 끼워 넣는 것이다.

 

처음에는 미사의 성가 가운데 고유 기도문에만 트로푸스를 사용하였으나 나중에는 통상문에도 사용하면서 범위가 확대되었다. 트로프스는 성 갈렌수도원의 투오틸로(Tuotilo, 850-915년)가 처음 실제적으로 활용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근거는 없다.

 

세쿠엔찌아란 ‘알렐루야에 부속되어 따라오는 노래’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알렐루야’(alleluia)는 ‘하느님(ia)을 찬미하라(allelu)’라는 말인데, 하느님을 의미하는 ‘야’(ia)를 음악적 용어로는 ‘유빌루스’(jubilus, 환희)라고 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유빌루스인 ‘야’라는 하나의 음절에 많은 음을 사용하여 길고 화려하게 불렀다. 새로운 가사도 삽입되었는데 나중에는 알렐루야에서 떨어져 나와 음악과 가사를 독자적으로 가지는 별도의 노래로 발전하였다. 현재 부속가는 주님 부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에는 의무이고,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에는 선택이다.

 

* 윤종식 티모테오 - 의정부교구 신부.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이며,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전례학 교수이다. 교황청립 성안셀모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로 「꼭 알아야 할 새 미사통상문 안내서」가 있다.

 

[경향잡지, 2021년 7월호, 윤종식 티모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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